39주 1일,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아기가 태어났다.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통한 아기를 낳았다. 당연히 자연 분만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의 난산이었다. 몇 시간 진통 끝에 자궁 수축이 최고치를 찍고 아이는 밀고 내려오는데 자궁 입구가 열리지 않았다. 갑자기 산소호흡기가 씌여졌고, 아이가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옥불에 떨어진 것 같았다. 몸의 고통에 마음의 충격이 더해져 온몸이 덜덜 떨렸다.
다행히. 아기는 무사히 태어났다. 수술이 시작되고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자기도 갑갑했던지 머리만 겨우 나온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긴장감이 감돌던 수술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정신은 있었지만 수술 진행 상황은 보이지 않던 내가 의아해하자 의사가 아이는 무사하다고 얘기를 해줬다. 긴장이 풀리고 이내 눈물이 났다. 마냥 감사했다.
하지만 그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긴 어려웠다. 오랜 진통에 수술까지 더해져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진통 때문에 몸 여기저기에 담이 걸렸지만 수술부위 통증과 몸에 주렁주렁 매달린 각종 장치들 때문에 자세를 고쳐 누울 수도 없었다. 몸이 힘드니 기본적인 욕구도 사라졌다. 이틀간 10분 이상 잠들지 못했고, 24시간 동안 금식이었지만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금식기간이 끝나고 미음이 나왔을 때도 도저히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물렸다. 다음 끼니로 미음보다 조금 더 걸쭉한 죽이 나왔지만 역시 먹고 싶지 않았다.
죽을 눈 앞에 두고는 고사를 지냈다. 또다시 안 먹으면 여기저기서 잔소리를 들을까 봐 물릴 수도 없었다. 보니 죽 옆에 미역국이 놓여 있었다. 출산한 한 선배의 말이 생각났다. 애 낳으면 병원, 조리원, 집에 가서 까지 주야장천 미역국만 먹게 될 거라던. 이제부터 미역국 라이프가 시작됐구나 싶었다. 평소라면 먹기도 전에 질렸을 텐데 오히려 먹을 생각이 들었다. 산모라는 실감이 났고 먹어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한 숟갈 한 숟갈 억지로 먹어냈다. 힘들면 쉬었다가 또 먹고 또 먹고 하면서 절반이나 먹어냈다. 이제 엄마였다. 얼른 회복해서 아기를 보고 젖도 물려야 했다.
정말 정말 힘이 든다. 절개한 부위는 어디 심하게 부딪힌 듯 아프고, 자궁도 심한 생리통이 온 듯 아프다. 진통 이후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데 요령도 없이 어설프게 아이를 안고 있자니 수시로 담이 걸린다. 눈이 부셔서 핸드폰을 볼 수 없었고 치질까지 생겼다. 여기저기가 계속 아프니 가만있다가도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아이만 보면 어떻게든 기운을 낸다. 처음 몸을 움직인 것도 아이가 병실에 왔을 때다. 온몸이 아프고 기운이 없어 팔도 제대로 못 들었는데 아이에게 젖을 물려보겠다고 몸을 일으켰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가 울면 벌떡 일어나고, 아이가 젖을 보채면 주삿바늘을 꽂은 채로 아이를 안아 들 수도 있다. 한 번 이렇게 억지로 힘을 내고 나면 힘들어서 또 눈물이 주룩주룩 나지만.
애를 낳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앞으로 더 힘들어진다고 얘기한다. 어떻게 지금보다 더 힘들 수 있는지 상상도 안된다. 하지만 점점, 어떻게든 버티긴 하겠단 생각이 든다. 아이를 보면 어떻게든 힘을 내는 나를 보면 그리 될 것 같다. 너무 힘들어 눈물 바람이 될지언정 어떻게든.
그래서 먹는다. 버티기 위해 먹는다. 먹지 않으면 버텨낼 수 없다. 이젠 버티지 않으면 안 되는, 엄마다. 엄마가 돼야 하는 나는 오늘도 물리지도 않고 삼시세끼 미역국을 먹는다. 마늘을 먹은 곰이 사람이 되었듯 나도 이렇게 꾸역꾸역 미역국을 먹다 보면 엄마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