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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n 01. 2019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 삶의 기록, 아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유산

왜 브런치를 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어떻게 이렇게 구독자가 많으세요?", "왜 브런치를 아직도 하세요" 등등. 모두 다른 듯하지만 내게는 모두 똑같은 질문으로 들린다. 바로 "왜 글을 쓰느냐?"에 대한 물음으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를 찾아와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난 이렇게 말씀드린다. 내게 글쓰기는 내 삶의 일부라고 말이다.


사실 난 수험생 시절부터 내 삶을 적어왔다. 당시에는 '블로그'란 글쓰기 플랫폼이 일반적이었기에 '네이버 블로그'에 비공개 글로 적어놨다. 나의 20대 중후반 수험생 시절 힘들고 괴로웠던 나날들, 어둡고 컴컴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 그에 대한 푸념·원망, 그럼에도 나는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와 의지,  희망 등을 담은 이야기가 쓰여있다. 


그리고 5년 여의 공백이 있었다. 기자가 되고 일중독자로 정신없이 살다 보니 내 삶을 기록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어느새 결혼이란 것도 하게 됐고, 아들도 낳아 육아휴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 삶을 다시 기록해야겠다고. 이를 위해 찾게 된 글쓰기 플랫폼이 브런치다.


브런치에는 나의 2008년 첫 직장(비록 인턴이었지만) 시절부터의 현재까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내가 겪었던 일에 대해서 느끼는 바에 대해서 담담하게 하지만 나만의 감성을 충실히 담아내려고 했다. 비난을 위한 글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자극적인 일화를 소개하기보다는 내 글을 읽는 분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란 위로를 받고 공감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함께 버텨나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내 삶의 기록

이렇게 내 네이버 블로그엔 나의 20대 중 후반 시절의 이야기가, 브런치에는 나의 29세부터 현재까지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있다. 앞으로도 이어나갈 생각이다.


내가 이렇게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은 '아빠'가 되고 나서 나 자신과의 약속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내 삶을 기록하고자 했던 욕구에서 시작했다면, 아빠가 되고 난 이후부터는 아들이 20대가 되고 30대가 되고 40대 그 이상이 되었을 때, 아들도 나와 같은 역경과 시련을 겪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한다. 아들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고 나와 같은 시련을 겪을 것이다. 그때 아빠가 쓴 글을 읽으며 위로받고 삶의 끝자락에서 포기를 하려는 나약한 마음보다 아빠가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이 담긴 글을 읽고 힘을 얻고 상처가 치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내가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은 이렇게 하루하루 삶 속에서 깨달아나가는 것들에 대한 소회, 아픔을 통해 얻은 나름의 교훈 등을 담은 글뿐이다.


사실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아들이 컸을 때 아들과 사이가 좋을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 아들과 친분이 있긴 하지만 아들이 사춘기를 겪고 그리고 여자 친구가 생기고, 결혼을 하고 난 뒤에 아들과 나의 관계는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그건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니. 

40대가 되니 아버지를 이해하고 있다

사실 요즘은 아버지의 20대와 30대 삶이 궁금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젊은 시절 아빠의 사진을 보곤 한다. 그 앞엔 내가 있었다. 보행기를 타고 있는 나를 뒤에서 해맑게 웃으시며 밀어주시는 아버지의 모습. 내 기억 속에 아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은 많지 않지만 사진 안에는 있었다. 당시 아버지의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 더 세련돼 보였다. 멋쟁이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새 80을 바라보시는 나이가 되셨다. 그 사이 뇌졸중으로 2번 쓰러지셨고 지금은 병원을 다니시며 재활하고 계신다. 게다가 월남전 참전 후유증으로 고엽제 환자로 분류돼 치료받으신다. 아버지를 뵐 때면 젊었을 때를 여쭙긴 하지만 쑥스러우신지 무용담을 쉽게 꺼내지 않으신다. 


사실 난 어릴 적 10대와 20대에 아버지를 무척 싫어했다. 때론 증오했다. 아버지는 집에서 잠만 주무셨고, 늘 취해계셨다. 아버지는 늘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셨고, 엄마에게 잘하지 못하셨다. 그게 늘 불만이었다.


엄마는 하청의 하청을 받는 미싱일을 하셨다. 집 옥상에 마련된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에서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쉼 없이 일하셨다. 그런 와중에도 아들 밥은 늘 살뜰히 챙겨주셨다. 당연히 엄마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고 살아보니 아버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나를 낳은 시기는 내가 아들을 낳은 시기와 비슷하다. 하루하루 벌어먹고 살아야 하는 아버지에게 하루하루가 불안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한다는 중압감은 하루하루 아버지의 마음을 짓눌렀을 것이다.


아버지는 늘 취하시면 나에게 말씀하셨다. "아들, 나는 죽으려고 월남전에 다녀왔어. 그런데 살아왔지. 그리고 엄마랑 결혼해 서울에 1만 원 들고 올라왔어. 사람은 쉽게 죽지 않아 죽을 듯이 일했다. 안 해 본일이 없어. 그렇게 살다 보니 지금 이만큼 살고 있는 거야"


예전에는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그런 말들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삶은 무척 고단했을 것이며 매 순간이 불안했을 것이리라... 아버지의 20대와 30대 그리고 40, 50대는 고독과 외로움의 나날들이었을 것이고, 아버지는 외로움을 술에 의지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마음의 감기를 심하게 앓고 계셨던 것 같다. 그걸 이겨내려고 더 독한 술을 드시고 다음날 또다시 돈을 벌러 나가시고 그런 삶을 반복하셨던 것이리라...

언젠가 아들도 내가 궁금해지지 않을까

난 내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 이상, 아들에게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남겨주고 떠날 것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힘과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내 삶을 기록할 것이다.


아들이 아빠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궁금할 때마다 들어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빠는 1980년생이니 브런치에 발행 연원일을 확인하면 아빠의 나이를 알 수 있으니 그걸 참고하면서.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보다 내 글을 읽고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길 바란다. 세상엔 수많은 질문들이 있고 그 안에 정답이란 없다. 그저 선택에 따른 결과만이 있을 뿐이다. 아들이 삶에 고단함으로 인해 힘겹고 지칠 때 같은 나이인 아빠를 찾아 대화를 하는 심정으로 읽어봐 줬으면 한다. 


그것이 이렇게 내가 마음의 울림, 깨달음을 얻을 때마다 글로 남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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