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아들에게 인사하며 아들 곁에 가서 떼쓰듯 두 팔을 벌리고 손을 흔들며 말하곤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포옹, 퇴근해서 반갑다고 포옹. 그게 아들에게 내가 하는 아침과 저녁 인사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들과 스킨십은 동성이다 보니 어색하고 민망하고 낯 뜨겁고 왠지 거부감이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선물과도 같은 아들을 마주하니 그런 감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아들과 함께 하는 반신욕은 즐거움이 되었고, 우린 코로나19 전에 매주 같이 목욕탕이나 찜질방을 다니는 게 취미이기도 했다.
또한 아침 저녁 인사로 하는 포옹은 꼭 해야 하는 우리만의 언어가 되었고 야구복을 입고 서로 얼싸안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내게 아들이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아들은 내게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부모에게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냥 내게 소중한 아이일 뿐이다.
오늘은 아들이 시큰둥하다
전쟁터 같은 회사에서 쓸데없는 감정 소모가 심한 날이다. 요새 부쩍 감정 소모를 일으키는 일들이 많아 지친다. 월급쟁이들이 다 그렇듯이 내게도 업무 외 스트레스는 고달픈 일이다.
"아들, 아빠 왔는데 안아줘야지~"
"나 숙제하느라 바빠"
"아니 포옹하는데 뭐 얼마나 걸린다고! 너 자꾸 그러면 아빠 서운하다"
그제야 마지못해 두 팔을 벌리고 곁으로 다가온 나를 안아준다. 쿨내가 진동한다. 이 눔!
점수를 만회해보려 자기 전에 아들과 몸으로 놀아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이 요새 좋아하는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하니 아들이 안방을 두고 자기 방에 누워있는 내 옆으로 온다.
무릎을 구부리고 아들을 정강이 위에 태운다. 그리고 리프트 하듯 허벅지를 세우면 비행기가 이륙이다. 그런데 뭔가 심심하다. 다이내믹하지 않고 너무 평범하다.
"하하하하하 아빠의 비행기는 제트기다~!!!"
이불을 내 다리 위로 올려놓고 아들을 같은 방법으로 태운다. 그리고 아들의 양 팔을 잡고 리프트!!! 그럼 이불 위에 아들이 비행기 자세로 있고 운행을 시작한다.
이불을 뒤흔들며 아들에게긴급하다는 듯 외친다.
"난기류가 나타났다"
"아빠 난기류가 아니라 제트기류야"
"그래? 그래 그럼 제트기류다~!!"
"아빠 이번엔 제트기 말고 우주선으로 해줘~!"
'흠... 우주선이라....'
아들을 동일한 방법으로 태우고 우주선이니 일단 지면과 90도 각도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정강이에 타 있는 아들의 두 팔을 단단히 잡고 내 무릎을 곧게 편다. 그럼 아들은 뒤집어진 채로 머리는 내 배 쪽으로 엉덩이와 다리는 하늘로 향하게 된다. 그때 발사체처럼 아들의 골반을 잘 잡아주고 카운트다운한다.
"아들 다리를 물구나무서듯 쭉 펴야지 출발하지! 텐 나인 에잇 세븐 식스 파이브 포 쓰리 투 원 제로~ 부우 우 우웅~!!!"
'앗 이 우주선 게임을 끝내야 하는데... 그렇지! ㅋㅋㅋ'
"아들! 대기층을 뚫고 우주로 진입했다! 앗 운석이다~!!! 슝슝슝"
공교롭게도 운석이 되어버린 내 손이 아들을 똥침 하듯 짓궂게 움직이자 아들의 우주선 여행은 마무리됐다.
"아빠 우주선! 우주선!! 이번에 운석은 없도록 설정해줘"
아들은 상황극을 좋아한다. 한창 상상력이 풍부할 시기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오늘 저녁엔 아들은 비행기와 우주선이 되고, 나는 이륙 장치와 운석이 되어 한바탕 웃음꽃을 활짝 피우고 잠자리에 들었다.
턱턱 툭툭
아들의 잠 기운에 잠깐 잠이 들었지만 역시나 아들의 화려한 발길질에 이미 저 멀리 날아가버린 이불을 덮어주려 일어나길 반복했다. 사실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 그런 감정들을 물리치고 호기심이 찾아왔다.
아들의 발기술을 보니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아니라 'ㅅ' 모양으로 무언가를 걸려고 하는 모습 이어서다.
'아들이 꿈나라 속에서 어떤 재미난 일들을 벌이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하지만 피곤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오늘 밤은 아들의 'ㅅ'자 발길질에 밀려난 이불을 수시로 덮어주려 일어났다 잠들기를 반복하다 아침을 맞았다.
'아윽 피곤해...'
역시 아침이 피곤하다. 하지만 너무 궁금했다. 아들이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아들 어제 꿈속에서 씨름했어?"
"응"
"에이 그냥 대충 답하지 말고 진짜 씨름했어? 씨름 뭔지 알아?"
나는 무릎을 약간 구부린 기마자세를 하며 양팔로 내 앞에 투명인간이라도 있는 듯 상대의 어깨를 잡는 시늉을 하며 씨름 자세를 보여주며 물었다.
"응 씨름하는 꿈 꿨어! 근데 아빠가 어떻게 알아?"
"아들! 혹시 그럼 상대 넘어뜨리려고 다리 걸려고 막 시도했어?"
"응"
"혹시 다리 안쪽으로 하려고 했어? 다리 바깥쪽으로 걸어 넘기려고 했어?"
내가 밤사이 본 아들의 발길질은 안다리 기술이었다. 왼쪽 다리를 'ㅅ'자를 만들어 안에서 바깥으로 움직였다.
"다리 안쪽으로 다리를 넣어 넘어뜨리려고 했어"
"아들 그럼 왼쪽 다리로 걸려고 한 것 맞아?"
"응 맞아"
아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봤다. 마치 내가 꿈속 이야기를 다 알고 있는 듯하니 말이다.
"아들 경기는 어디서 했어?"
"씨름장에서 했어"
"상대는 누구였어? 이겼어?"
"아빠랑 씨름했어. 당연히 이겼지"
"잘했네~!!"
현실 속 아빠보다는 꿈속 아빠가 더 다정한 듯하다. 현실 속 아빠라면 절대 쉽게 져주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ㅎㅎㅎ
밤새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여 피곤이 산더미처럼 쌓인듯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즐겁게 아빠랑 꿈속에서 놀았다니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아들의 손을 꼬옥 잡고 아들과 학교까지 같이 걸어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들이 지난해랑 또 다르다. 점점 시크해져 간다. 나는 점점 더 애틋해지는 데 말이다.
'아이는 거울 같다. 밤에 잠깐 몸으로 놀아줬다고 그 마음을 가지고 꿈나라로 향했다. 그리고 꿈나라에서도 아빠와 신나게 논다.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해 미안하지만 그래도 잠깐의 노력과 시간이었지만 꿈속에서 오랫동안 놀아줬으니 오늘은 아들이 내 인사를 반갑게 맞아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