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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Dec 24. 2024

나의 어린 날에게, 그리고 아들에게

공부는 어릴 때 끝나는 게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

내 나이 이제 마흔다섯. 지하철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나는 한숨 섞인 미소를 지었다. 퇴근길, 하루의 무게를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은 고요한 듯 분주했다. 희미하게 내리던 겨울비는 저녁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전조등과 뒤섞여 도시를 흐리게 만들었다. 나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짧은 영상 하나에 눈길을 멈췄다. 그 영상 속 이야기가 내 마음을 깊이 흔들어 놓았다.


어릴 적 공부가 떠올랐다.


'왜 어린 시절에는 공부가 그렇게도 지겨웠을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려고 하긴 했지만 맹목적으로 했던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채우듯...


그땐 그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 몰랐다. 수학의 공식도, 역사 속 인물도, 과학 실험도 내게는 단지 모든 것이 의무처럼 느껴졌다. 벗어나고 싶었고, 놀이와 자유가 공부보다 더 커다란 가치로 보였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그때의 공부는 단지 나를 세상으로 이끄는 입구에 불과했다는 것을.


'어릴 때 공부는 그저 출발이었다. 어른이 된 후의 공부는 생존이다.'


어릴 땐 왜 그토록 불만이 많았는지, 왜 그렇게 무력했는지. 이제 와서야 삶의 난도는 그때보다 훨씬 높아졌고, 배워야 할 것들은 끝없이 늘어난다는 걸 깨닫는다. 업무, 인간관계, 기술의 변화, 세상과의 경쟁.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조차 배우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시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시간이 가장 단순하고 순수한 배움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왜 그땐 알지 못했을까.


그땐 다른 거 고민할 거 없이 공부만 하면 됐었는데... 왜 그토록 쉬운 일을 못했을까...

마흔다섯이 되어가는 나도 여전히 매일 공부한다.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기 위해 배우고 익힌다. 교과서도 없다. 그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이 험난한 삶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서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세상이 나를 앞질러 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쓴다. 경쟁은 끝이 없고, 생존은 날마다 새로운 과제를 던져 준다.


그럼에도 지금 난 즐겁고 행복하다. 그 어린 날의 공부와는 다른 느낌이다. 이제는 절박함만이 있다. 내 삶을 조금 더 낫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 아들이 살아갈 세상에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기 위해.


나는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이 일어나 아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아들도 언젠가 이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겠지'


아들!

지금 너에게 공부란, 아빠가 보던 책들과 다를 것이다. 스마트폰, 태블릿, 그리고 AI까지 네 시대의 도구들이 너를 가르치겠지. 하지만 하나는 같을 거야. 네가 느낄 지겨움과 답답함, 그리고 어쩌면 반항.

하지만 나는 네가 지금 느끼는 그 마음을 존중하고 싶어. 아빠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공부를 단지 점수를 올리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여기지 말길 바라. 너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너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어.


밖은 어느덧 밤이다. 빗줄기가 더 굵어졌고, 지하철 문이 열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스며든다.


지친 몸을 잠시 기대며 생각했다.


'공부는 어릴 때 끝나는 게 아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는 것을, 아들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아들.

지금의 지겨움 속에서도 너의 미래를 위한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기억하길. 언젠가 네가 지친 어깨를 이끌고 퇴근길에 나설 때, 네 어릴 적 공부가 지금의 너를 얼마나 든든히 받쳐주는지 깨닫게 될거야.

아들, 오늘 밤 아빠가 집에 돌아가 너를 보며 미소를 지을 거야.

아들! 아빠는 네가 스스로의 시간을 통해 배워갈 것을 믿는다!


지하철에서 내려 걷고 있다. 비 내리는 도시의 풍경이 흐려진다. 문득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그 공부를 조금만 더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는 없다. 난 지금 최선을 다해 살고 있으니까. 그리고 아들에게 이렇게 기록으로 이야기를 남겨주고 있으니까.


아들.

네가 이 글을 읽을 때쯤에는 너도 어쩌면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지도 모르겠네.

아빠는 네가 즐겁게 배우기를 바라. 하지만 한 가지 진실만은 꼭 알아줬으면 좋겠어.

배움은 늘 즐겁지만은 않지. 때로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지루하고,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어려울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쌓이고 나면, 너는 결국 스스로를 넘어서게 될거야. 그리고 그 순간, 배움이란 단순히 삶의 한 과정이 아니라, 삶 자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야.


나는 종종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다. 그리고 그때의 나에게 말을 건넨다.


"고맙다. 너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시간들을 이겨냈고, 덕분에 내가 지금 여기 있을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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