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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Dec 25. 2024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인간관계의 아이러니

나를 믿고 함께하던 동료를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

"선배님, 저 여기까지만 하고 싶어요. 너무 저 혼자만 애쓰는 것 같아 그만하고 싶어요."


그의 전화는 평소와 다르게 무겁고 낮았다. 그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목소리 너머로 그의 지친 마음이 느껴졌다.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동안 침묵만이 이어졌다.


"정말 미안해요. 더는 못 하겠어요."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나를 떠나는 이의 진심 어린 고백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왜 그는 이렇게까지 지쳐버렸을까? 그가 떠나며 남긴 그 짧은 말속에는 얼마나 많은 고민과 무게가 담겨 있었을까?'


전화를 끊은 뒤, 나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은 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세상에는 어째서인지 그레셤의 법칙이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듯한 순간들이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이 단순한 원리는 금속 화폐의 무게나 가치를 넘어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묘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의 뻔뻔함과, 묵묵히 책임을 지는 자들의 묘한 부끄러움. 이 둘이 충돌할 때 생겨나는 부조리는 나를 오래도록 곱씹게 한다.


나는 그런 풍경을 몇 번이고 보아왔다.


부지런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자신이 속한 조직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시선에서 빛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노력하는 사람이 도리어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들의 열정은 천천히 마모된다. 그들의 노력은 칭찬받기보다 당연시되거나, 때로는 무시당하기까지 한다.


반면,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마치 스스로를 고정된 존재로 여기며, 움직이지 않는 돌처럼 그 자리를 버티고 있다. 그들은 어느새 조직의 기준점이 되어버린다. 누구도 그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누리는 안락함 속에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이윽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떠나가고, 능력이 부족한 이들이나 뻔뻔함을 가진 이들만 남게 된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법칙처럼 느껴질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움직이는 걸까? 왜 노력과 책임이 보답받지 못하는 환경은 그렇게 흔할까?'


어쩌면, 우리가 책임과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부끄러움을 아는 이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이 때로는 다른 이들의 무책임과 뻔뻔함을 감당하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순간, 나는 한 발 물러서서 이 현상을 바라보았다. 


비난하고픈 마음보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그런 마음조차 사치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그건 그들의 삶이니 내가 왈가왈부할 건이 아니니 말이다. 다만 난 내 옆에서 함께 부지런히 열정을 품었던 이가 그런 이들 때문에 떠나게 되니 속상할 뿐이다.


그들은 책임이라는 무게를 내려놓고, 자신이 더 빛날 수 있는 공간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자신들의 선택의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이것이 마치 자연스러운 선순환과 역순환의 반복처럼 보인다.


우리는 때로 자신이 떠나는 자리에 무엇을 남기는지 고민하게 된다. 떠남이 도망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사실은 다른 길을 열어주는 선택이 아닐까. 양심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들이 머물러야만 한다는 당위는 없다. 그들의 떠남은, 남겨진 이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은 씁쓸한 진실을 담고 있지만, 모든 곳에 적용되는 건 아니다. 떠나간 자리가 언젠가 양질의 토대가 되어, 새로운 선순환을 만드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부끄러움을 아는 이들은 어디에 있든 자신만의 빛을 낼 것이며, 어쩌면 그들은 이미 이 세상의 또 다른 구석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그 희망을 품으며, 이 현상을 다시 바라본다. 단순한 비난이 아닌, 이해와 통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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