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속 '오기'로 버틴 2년...석사 논문 끝자락에서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석사 과정 논문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책상 모니터 앞에 놓인 pdf로 된 논문을 바라보며 문득 입학 첫날이 떠올랐다. 그땐 모든 것이 막연했다. 그랬던 내가, 이렇게 끝까지 왔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고도 낯설기만 하다.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논문 주제를 정하는 것조차 막막했으니, 시작이 얼마나 서툴렀는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입학을 결심했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 더욱 기적처럼 느껴진다.
우연에서 시작된 여정
2022년 10월 4일로 기억한다. 하늘은 유난히 높았고, 바람은 여름의 뜨거움을 조금씩 벗어나 차갑게 변해가던 계절이었다. 우연히 스쳐 지나던 인터넷 창에 ‘서강대 메타버스 전문대학원 모집 요강’을 보게 됐다.
정말 우연이었다.
'메타버스, 블록체인, NFT… 화려하고 낯선 단어들 사이에서 나는 무엇에 끌렸던 것일까?'
그것은 마치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낡은 책장 한 구석에서 반짝 빛나는 먼지 쌓인 열쇠를 발견한 것 같았다.
확신은 없었다.
다만 이 길이 내게 주어진 기회라면, 잡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10만 원, 그것은 합격을 위한 지원금이자 나 자신에게 건 작은 도박이었다.
내 앞에 놓인 열쇠를 향해, 나는 그것이 무엇을 열게 될지 모른 채 손을 뻗었다. 열쇠를 손에 쥔 나는 로또를 사듯 10만 원을 내밀었다.
결과는 합격.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지만, 내 마음은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이 길이 정말 내 길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이 던져준 착각일까?'
고민 끝에 나는 문을 열었다. 그렇게 메타버스라는 미지의 숲으로 들어갔다.
입학을 결심하며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내 길이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러나 막상 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혼란 속에 빠졌다. 막연했던 자신감은 흩어졌고, 불확실함만이 남았다.
부족함의 그림자, 초라함
막연한 열정은 부끄러움으로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첫날, 나는 이미 방향을 잃었다.
내 머릿속은 안개처럼 희뿌옇고, 아이디어들은 가느다란 나뭇가지처럼 방향을 잃은 채 흔들리고 있었다. 어렴풋이 생각했던 아이디어는 공허한 메아리처럼 사라졌고, 지도교수님을 찾아뵌 자리에서 나는 철저히 무너졌다.
“주제가 너무 커요. 너무 막연합니다. 다시 고민해 보세요.”
교수님의 첫 코멘트는 칼처럼 날카로웠다. 나무를 비추는 햇빛처럼 내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자존심에 상처가 났지만 인정해야 했다. 그게 내 현실이었다. 부족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 나는 벌거벗겨진 듯 부끄러웠다.
심지어 나는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막연한 열정은 한순간에 부끄러움으로 바뀌었고, 좌절감은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녔다. 초라해진 나를 보며 슬픔이 일었다.
'난 이정도 밖에 안되는 구나...'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은 항상 길고 고독했다. 창문 밖 풍경은 변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안개만이 자욱했다.
그 후로의 여정은 험난했다.
수정된 초고를 들고 교수님을 찾아갈 때마다, 나는 마치 자신의 부족함을 한 꺼풀씩 드러내는 도공 같았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도 나는 조금씩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끊없는 수정의 늪
논문 초고를 작성하면서 나는 또 다른 벽에 부딪혔다.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 벽이 점점 더 높아지는 기분이었다. 문제를 고치면 새로운 문제가 드러났고,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를 헤매는 듯했다.
매일같이 맞닥뜨린 좌절은 나를 시험했고, 어떤 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때로는 밤늦게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지친 손가락으로 문장을 고쳐 쓰며 눈물이 났다. 오기가 생겼다. 주말 잠자는 시간 6시간을 빼고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육아를 포기하고 하루 18시간 씩 고치고 다시 쓰고 하며 주말 이틀 동안 36시간을 고쳤다. 다음주에는 다를 것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을 땐 너무도 속상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여기서 멈춘다면, 지금까지의 시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논문을 쓰는 과정은 숲속을 헤매는 것과 같았다. 길이 있는 것 같다가도 사라지고, 갈림길에서는 올바른 방향을 찾기도 어려웠다. 지도교수님의 피드백은 마치 숲속의 나침반 같았다. 하지만 그 나침반조차 내게는 너무 어려운 지도로 보였다.
밤늦은 시간, 빈 강의실에서 컴퓨터 화면만이 희미하게 빛났다. 지도교수님 앞에서 발표가 끝나고 덩그러니 나 홀로 강의실에 남아있다. 초고는 엉성했고,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달빛이 마치 내 마음을 비웃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매번 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서 나는 좌절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오기’였다
순전히 ‘오기’로 버텼다. 내 안에서 불타오르던 작고 단단한 오기. 한순간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던 수많은 밤을 버텨낸 힘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오기에서 나왔다.
인정받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인정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스스로를 속이며 살아온 적은 없었다. 여기서 이렇게 무너질 만큼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다는 믿음이 내 자존심에 불을 붙였다.
지도교수님께 칭찬받고 싶었다. “잘했어요”라는 단 한마디를 듣기 위해 내 모든 두려움과 부족함을 마주하며 버텼다. 때로는 그 열망이 너무 간절해 내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것은 내 유일한 나침반이었다. 아무리 어둠 속을 헤매더라도, 그 방향만은 잃고 싶지 않았다.
‘오기’. 그것이 내 유일한 원동력이었다. 그것은 내 발을 다시 앞으로 내딛게 했다. 그렇게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어가며 미로 속에서, 온통 똑같은 나무로 채워진 숲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 애썼다.
희미하지만 분명 빛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며 논문 주제는 조금씩 구체화됐다. 가상경제 시스템, 블록체인, NFT… 처음에는 단지 복잡해 보이기만 했던 이 개념들이 점차 하나의 그림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래 연구는 답을 찾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거다'
이런 깨달음이 내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논문은 단순히 학문적 성취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던지는 첫 번째 질문이자 작은 기여다.
논문의 방향이 잡힐수록 나는 연구가 단순한 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지도교수님은 내가 놓치고 있던 문제의 본질을 짚어주셨다. 매번 지도교수님 '석근좌'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할 따름이었다. 마치 오래된 나무 밑동 속 숨겨진 생명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처럼, 나는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1년 6개월이 지나고
나는 마침내 논문을 완성했다.
책상 모니터 앞에 보여지는 논문 최종 pdf 파일이 단지 종이 몇 장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넘어섰던 벽들과 이겨낸 좌절의 흔적, 그리고 성장의 기록, 단순한 글자 이상의 것이 담겨 있다. 밤낮으로 고민하며 썼던 문장들, 헤매던 방향 속에서 발견했던 작은 깨달음들, 그리고 내 모든 노력과 눈물이 함께 스며 있다.
지도교수 '석근좌'님이 함께 해주셨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석근 교수님과의 2년 간의 동행의 시간은 고요하지만 강렬했다.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이 여정은 끝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다. 나는 이제 또 다른 길, 박사 과정이라는 도전을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나는 안다. 좌절은 멈춤이 아니라 성장의 과정임을, 길을 잃는 것은 더 나은 길을 찾는 시작임을.
"안개는 결국 걷힌다. 길을 잃을 때마다 멈추지 않고 걸어라. 가르침이 등불이다"
이 문장이 앞으로의 내 여정을 비출 것이다. 안개 속에서도, 나는 이제 길을 찾을 것이다.
2024년 12월 8일 오후 5시 55분
서강대 메타버스전문대학원 석사 과정
논문과 프로젝트보고서를 마무리하며
광화문덕
▼ 지도교수님 '석근좌' 소개는 아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