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오피스 리포트: 숫자들의 도시》
회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라지는 이가 있어도, 새 명패가 바뀌어도,
결코 슬퍼하지 않았고, 환영하지도 않았다.
대신 언제나 한 장의 보고서만이 내려왔다.
“인력운용 통합조정안_23Q3_v4.3.xlsx”
그 파일에는 사람의 이름 대신 사번이,
이력 대신 점수가,
동료 대신 퍼센트가 있었다.
누군가 퇴사하면 합계는 자동으로 바뀌었고,
수식은 단 한 번도 에러를 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조직은 숨 쉬었다.
숨을 쉬되, 감정은 숨겼다.
언론에도, 직원들에게도, 공식 발표는 없었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노바코어 컨설팅은 곧 팔린다는 것.
엘리온 캐피탈.
그 이름만으로도 공기는 몇 도쯤 낮아졌다.
그들이 움직인다는 소문이 돌자,
복도는 소리 없는 암호들로 가득 찼다.
“이번 주 보고서는 형식 꼭 맞춰야 해요.”
“점심시간은 짧게… 보이잖아요.”
“엑셀에 남는 숫자가, 진짜 인사평가라던데.”
엘리온은 묻지 않는다.
그들은 데이터로 본다.
그리고 판단한다.
“이 조직에 남을 숫자는 누구인가.”
25층. ‘백오피스 운영전략실’.
그곳은 고객을 마주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된 부서였다.
그들은 프로젝트를 기획하지도, 제품을 만들지도 않았다.
대신, 조직 전체의 효율을 계산하고, 낭비를 찾아내며, 수치를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숫자쟁이'라 불렀다.
좀 더 냉소적인 이들은 ‘계산기 인간’, ‘파일 정령’, ‘의자형 알고리즘’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한 명은 콩 통조림의 잔량을 계산했고,
한 명은 도장을 찍는 것만으로 승진해왔다.
또 다른 이는 하루에도 수십 번 엑셀 매크로를 돌렸고,
마지막 인물은 칼처럼 정확한 언어로 구조조정을 집행했다.
그들은 각자 다르게 불렸다.
빈카운터. 펜슬푸셔. 넘버크런처. 코스트커터.
하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 회사를 살아냈다.
숫자를 믿고, 숫자에 살고, 숫자로 말하는 사람들.
M&A가 시작되면, 사람은 파일이 된다.
경력은 평균 생산성으로 환산되고,
성과는 ROI(투자 수익률) 그래프 위의 점 하나로 대체된다.
관계는 ‘비용’이 되고, 충성은 ‘감정노동 시간’으로 재단된다.
그리고 그 판단은,
이 도시의 백오피스가 먼저 내린다.
그러나 그들조차 몰랐다.
자신이 정리한 문서가
누군가의 ‘마지막 파일’이 될 거라는 걸.
자신이 찍은 도장이
누군가의 경력에 마지막 마침표가 된다는 걸.
숫자 안에서 살아남았던 자들,
셀 안에서 감정을 지워내던 이들.
그들조차 알지 못했다.
언젠가 자기들 또한 계산될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한 회사에서,
어느 날 동시에 호출된 네 명의 실무자들.
서로 알지 못했던 그들은 이제 본사로 향한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아니,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또 다른 ‘나’와 마주한다.
그 만남은 숫자를 다시 셀 수 없게 만들고,
숨겨둔 감정을 다시 계산하게 만들며,
마침내, 보고서 너머 사람을 보기 시작하게 한다.
《백오피스 리포트: 숫자들의 도시》는
셀 안의 인간이, 셀 밖의 인간을 만나
처음으로 셀을 닫는 이야기다.
계산은 시스템이 한다.
기억은, 사람이 남긴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