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화문덕 Nov 15. 2015

#27. 처참했던 하루

2015.11.14. 캡사이신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날...

전국에서 모여든 시위대

2015년 11월 14일 오후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7년만이다.


이날 오후 1시쯤부터 전국에서 농민, 노동자, 학생 등 10만여 명은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대학로, 태평로, 서울역 광장, 시청 광장 등지에서 사전 집회를 열고 광화문 광장으로 행진했다.


기세는 대단했다. 하늘을 찌르는 듯했다. 보고 있노라면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이들을 막아야 하는 경찰

경찰은 이들을 막아야 하는 상황이다. 차벽은 예정된 것이었다. 경찰은 이들이 사전집회를 하는 동안 광화문 광장 일대에 촘촘하게 차벽을 설치했다. 아주 치밀하게 준비한 듯 보였다.


오후 2시쯤 도착한 광화문 광장. 시청 광장에는 시위대가, 광화문에 있는 코리아나 호텔에서부터는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에는 청와대 방면으로 5중 차벽이 완성됐다. 시위대의 청와대 진입 시도를 원천 봉쇄하겠다는 경찰의 의지를 강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영상 출처 : 노컷뉴스
시위대의 진격

사전 집회는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됐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오후 5시가 넘어서면서 시위대는 광화문 광장으로 진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 인근에 촘촘하게 짜인 차벽에 번번이 막혔다.


시위대도 일격이 있었다. 경찰들이 차량이 밀려나는걸 방지하겠다고 바퀴 등에 묶어 놓은 밧줄을 시위대가 역이용했다. 시위대는 줄다리기하듯 모여 차량을 끌어당겼다. 차벽이 속속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경찰

경찰은 다급해졌다.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녁 6시가 되기 전임에도 여기저기에서 물대포가 난사됐다. 캡사이신을 섞어서 뿌리기 시작했다. 교보문고 앞에는 소화기도 등장했다. 경찰은 통제력을 잃은 듯 보였다.


차벽에 올라가려는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차량에 콩기름도 발랐다. 차량에 밧줄을 묶지 못하도록 조치도 취했다.

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성난 시위대

시위대는 분노하기 시작했다. 난사되는 캡사이신 물대포와 소화기에... 일부 시위대는 차벽향해 깨진 보도블록을 던졌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벽돌도 날아다녔다. 에프킬라도 등장했다. 밤이 되자 횃불도 등장했다. 상황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 누구 하나 죽겠다'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통제력을 잃은 물대포

물대포는 이제 더이상 경찰 수뇌부의 지휘를 받지 않는 듯 보였다. 여기저기 시위대를 향해 분노하듯 살포됐다. 아니 난사됐다. 현장엔 자비란 없었다. 전쟁터 같았다.


캡사이신 물대포는 급기야 일흔의 농민을 조준 사격해 쓰러뜨렸다. 농민은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고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물대포의 조준 사격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시위대 여럿이 몸으로 물대포를 막아서며 쓰러진 농민을 구해냈다. 이 과정에서도 물대포 조준 사격은 계속됐다.


영상출처:노컷뉴스
그제야

이 농민은 인근에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는데 생명이 위독하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경찰 수뇌부도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제야 물대포 사격은 잠시 멈췄다.

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다시 떠오르는 악몽

지난 2005년 11월 15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쌀 비준 반대' 시위를 벌이던 농민 전용철 씨가 경찰 진압 과정에서 중상을 입고 병원 치료를 받던 도중 24일 뇌출혈로 사망했다.  같은 날 시위에 참가했던 농민 홍덕표 씨 역시 중상을 입고 치료를 받다 같은 해 12월18일 패혈증으로 숨졌다.


이 사건으로 서울경찰청 기동단장(경무관)이 직위 해제되고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 이기묵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이 잇따라 사표를 제출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위 농민 사망관련 대국민 사과문
(2005.12.27)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시위 도중에 사망한 전용철, 홍덕표 두 분의 사인이 경찰의 과잉행위에 의한 결과라는 인권위원회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은 이 조사결과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두 분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 여러분께 깊은 사죄말씀을 드리고 아울러 위로 말씀을 드립니다.

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서 정부는 책임자를 가려내서 응분의 책임을 지우고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국가가 배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번 더 다짐하고 또 교육을 강화하도록 하겠습니다.

저의 이 사과에 대해서는 시위대가 일상적으로 휘두르는 폭력 앞에서 위험을 감수하면서 힘들게 직무를 수행하는 경찰의 사기와 안전을 걱정하는 분들의 불만과 우려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식을 전경으로 보내 놓고 있는 부모님들 중에 그런 분이 많을 것입니다.

또 공권력도 사람이 행사하는 일이라 자칫 감정이나 혼란에 빠지면 이성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인데, 폭력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원인된 상황을 스스로 조성한 것임에도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직사회 모두에게 다시 한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아울러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쇠파이프를 마구 휘두르는 폭력시위가 없었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는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점에 관해서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부도 이전과는 다른 대책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다시 한번 송구스럽다는 말씀과 함께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다짐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살아나시길

오늘 새벽 5시쯤 농민 백 씨의 소식을 확인했다. 수술은 끝났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의식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꼭 의식을 찾으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생명은 소중하니까...

이미지 출처: 노컷뉴스


처참했다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 내 기억 속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처참하다는 단어가 실감이 났다. 그 이상 어떤 단어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처참하고 처참했다.


캡사이신 범벅이 된 시위대와 촬영감독, PD, 사진기자들의 모습. 몸을 사리지 않고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열정을 불살랐던 강종민 선배, 윤성호 사진기자 선배, 김기현 감독, 김원유PD, 김세준감독께 온 온마음을 담아 존경을 표한다. 그들과 현장에서 함께한 오늘은 내겐 영광스러운 날이다.


오늘의 기록

캡사이신이 소나기처럼 내렸던 오늘...

이날을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적었다.

이런 일이 부디 더는 반복되지 않길 바라면서...


이전 23화 #64. 나는 어떤 선배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