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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ug 23. 2015

#14. '72초TV' 도전기(하)

가슴 먹먹한 인터뷰, 배우들과 첫 호흡

전화위복?

이번 주에는 숙직 근무가 3차례나 배정됐다. 일요일 24시간 근무서고 월요일 쉬고, 수요일 밤샘하고 목요일 쉬고, 토요일에 또 24시간 근무... 선배가 근무를 짠 거라 군소리하지 않고 섰기로 했다.


1주일에 근무가 3번이나 되니 아내는 지난 주말 처가댁으로 아들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이번 주 저녁 시간은 나를 위해 쓸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마침 촬영 면접부터 촬영이 모두 이번 주에 이뤄졌다.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촬영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주 근무표 덕을 톡톡히 봤다. 전화위복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까치집에 다크 서클 작렬

촬영 당일. 오전 7시 아침 종합 뉴스(FM 98.1MHz)를 무사히 마쳤다. 이제 퇴근하려면 2시간 정도가 남았다.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며 거울을 봤다. 오늘따라 몰골이 사나웠다. 머리에는 까치집까지 생겼다. 평상시엔 잘 생기지도 않는 까치집이 하필 이날은 거대했다. 눈은 퀭했고 이날따라 수염도 하루 사이에 많이 자랐다. 게다가 이날 새벽 수습 보고를 받아야 해서 3시간밖에 못 잤다.


오전 10시까지 72초TV 사무실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도저히 이 상태로는 갈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금 늦더라도 머리라도 감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옆에 있는 사우나에 갔다. 간단히 씻었다. 면도도 했다. 다만, 머리에 젤이나 왁스 등은 바르진 않았다. 어릴 적 읽었던 '털보 아저씨'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털보 아저씨의 이야기

내가 기억하는 털보 아저씨 이야기는 이렇다. 한 화가는 수염이 덥수룩한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수염 속에 담긴 세월의 흔적과 평범함 속에 그려진 인간미 등을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모델을 찾기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였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시골의 한 마을에서 수염이 덥수룩한 털보 아저씨를 발견했다. 화가가 애타게 찾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화가는 단숨에 달려가 털보 아저씨에게 모델이 돼 주겠냐고 제의했다. 털보 아저씨는 흔쾌히 수락했다.


화가를 만나기로 한 약속 당일 아침. 털보 아저씨는 화가를 만나러 가기  샤워를 면서 수염을 밀어버렸다. 오랜만에 멋 내기도 하고 멀끔하게 차려입었다. 모델이니 말끔하게 보이고 싶어서였다.


당연히 화가는 털보 아저씨가 아닌 웬 중년 아저씨가 자신을 찾아온 것을 보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가 털보 아저씨가 될지도

왁스를  등의 행위를 하지 못한 것이  때문이다. 머릿속에 털보 아저씨 이야기 불현듯 떠올라 도저히 나 자신을 꾸미는 행위를 하지 못했다. 그게 내게 독이 될까 두려웠다.


면접하러 간 날 나는 티셔츠에 머리엔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면접을 봤다. 날 캐스팅한 감독은 내게 멋 내기에 대해 주문하지 않았다. 그저 흰색 와이셔츠에 정장을 입어줄 수 있느냐고만 했다.


난 당시 면접 봤던 그 모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내 임의대로 내 이미지를 바꾼다면 촬영 당일 나를 캐스팅한 감독이 실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화가가 털보 아저씨에게 실망한 것처럼...


흥미진진

촬영이 시작됐다.  불볕더위특보가 발령된 날이었다.  직 다림질한 와이셔츠 정장을 갖춰 입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도중 할머님 두 분이 노래를 부르시고 싶다고 하셨다. 난 마이크를 가져다 댔고, 할머님들은 흥겹게 노래를 부르셨다.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분명 밝은 노래였는데, 듣다 보니 눈시울이 불거졌다. 마음 한쪽이 시큰했다. 할머님들의 노랫말에서 세월의 야속함이 느껴졌다. 우리 부모님이 떠올랐다. 엄마 아빠에게도 30대가 있었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다.


생각했다. '나도 저분들처럼 언젠가는 젊음을 그리워하는 날이 오겠지'라고... 세월의 허무함을 깨닫자 서글픔이 밀려왔다.


첫날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여운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배우들과 호흡

다음 날 저녁. 회사 일을 마치고 삼성역으로 향했다. 이날은 연기자분들과 호흡을 맞췄다. 너무 떨렸다.


무엇보다 라디오만 녹음했던 내가 카메라 앞에서 스탠딩을 하려고 하니 바보처럼 나올까 두려웠다. 스탠딩을 하기 위해선 짧은 두 문장을 외워야 했다. 그런데 도무지 외워지지 않았다. 너무 긴장했던 탓이었다. 


NG가 났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눈동자까지 떨어 NG가 났다. 말을 씹어서 NG가 났다. 손발이 떨어서 NG가 났다. 10번 이상 NG를 낸 끝에 OK 사인이 났다.


무더위 속에 연기하느라 고생한 배우들에게 미안했다. 스태프들에게도 죄송했다.


배우들 인터뷰 장면으로 넘어갔다. 이번엔 마이크를 잡은 내 손만 출연했다. 그래도 떨렸다. 앞에서 연기자분이 연기하는데 나를 보고 연기를 하니 떨릴 수밖에...


침 뱉어도 되죠?

"네.....?"


연기자분이 나를 보고 대사를 했다. 나한테 묻는 줄 알고 난 자꾸 대답했다. 가만히 있어야 했는데 자꾸 헛소릴 해 댔다. 나의 헛소리에 연기자분이 더 당황했다. 스태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촬영을 마치고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두려웠다. 함께했던 열정 넘치는 이분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까 봐... 그래서 용기 내서 함께 사진 좀 찍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다. 사실 촬영은 일부만 끝난 것이었다. 그들은 아직 찍을 것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연기자와 촬영팀 모두 흔쾌히 응해줬다. 감사했다.


난 그들 한 명 한 명에게 명함을 주며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기자가 뭐 그러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자도 사람이다. 사건·사고 당사자들에게는 저널리즘이란 이유로 마이크와 녹음기를 들이댈 수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그럴 명분이 없다. 오히려 잘난 체를 하는 것으로 보이거나 나의 명함을 주는 행위가 그들에게 사무적이라는 느낌을 줄까 두려웠다.


그래도 용기를 내긴 했다. 촬영 첫날 함께하며 정이 든 분들에게 명함을 건넸다. 실례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서다. 내게 명함을 건넨다는 것은 '당신과 친해지고 싶다'는 하나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명함을 건네면서도 또다시 걱정했다. 누구에겐 명함을 주고 누구에겐 명함을 안 주는 내 모습이 안 좋게 비칠까 봐... 이래저래 참 난 쓸데없는 생각이 많은 것 같지만... 그래도 어쩌랴... 그게 나인 것을...


당연히 집에 오면서 후회했다. 그날 봤던 모든 분에게 명함을 건네지 못한 것에 대해...


하지만 난 잘 안다. 인연이란 억지로 엮을 수 없음을... 그리고 누구보다 잘 안다. 급하게 친해진 인연은 헤어짐도 쉽다는 것을... 난 늘 꿈꾼다. 가랑 옷이 젖는 것처럼 사람과의 인연 역시 그렇게 서서히 무르익어가기를...


그렇게 무사히 내 삶의 첫 드라마 촬영은 끝이 났다.

에필로그

그렇게 72초TV 촬영은 마무리됐습니다. 제가 72초TV에 누가 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영상이 언제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몇 초 나올지도 궁금합니다.

72초TV 영상이 나오기 전에 후기가 먼저 나가도 되는지 걱정돼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최대한 촬영 내용에  대해 언급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저 기자인 제가 경험하고 느낀 것들에 대해서,  그리고 지금이 느끼는 이 감정의 여운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이번 주는 번외편으로 72초TV 촬영 도전기를 적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다시 제 주니어 시절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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