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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ul 25. 2016

#59. 인연의 시작, 끝

인연이란 늘 그렇게 우연에서 시작된다

인천공항 3층 출국장

오전 7시 50분에 집결인데 일찌감치 도착했다. 2시간 50분이나 먼저 도착했다. 평일 새벽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공항이라 그런지 외국인도 많았다.


7년 전 첫 출장 때가 떠올랐다. 입사 후 첫 해외출국이자, 난생처음 타본 비행기였다. 당시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는 전시회 참석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마냥 설렜다. 인천공항의 모든 것이 신기했다. "선배 선배"하며 연신 재잘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추억이란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시원한 공기가 콧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한 아이가 눈에 띄었다. 앳돼 보이는 얼굴이 기껏해야 초등학교 1학년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끌며 가족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해외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 같았다.


'너무 어린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접었다. 그들도 다 자기 나름대로 계획과 전략에 따라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고개를 돌리자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한가운데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아시아인인지 한국인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아시아계였다.


'새벽부터 뭐 하는거야...'. 신음하듯 질투 섞인 한 문장이 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설렘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가짐에는 달라진 게 없다. 그때도 그랬고, 어제도 오늘도 그렇듯, 내게 새로운 것은 늘 설렘 그 자체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이들과의 교류, 내가 살아온 곳과 전혀 다른 문화를 체험하며 겪는 문화적 충격 등이 그것이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만큼의 영어 실력은 못되지만, 그런데도 그들과 부딪히면서 얻는 깨달음은 크다.


물론 나의 외형적인 모습은 많이 변했다. 나이도 이제 30대 후반이 됐고, 세월이 흐른 만큼 흰머리도 늘었다. 치열하게 살려고 하다 보니 눈빛에는 독기가 배어 있고, 눈가에 주름도 깊어졌다. 주위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1년 차 신입에서 지금은 7년 차가 됐다. 그동안 대외적인 인지도에도 조금 차이가 생겼다. 뉴미디어 쪽에서 무언가 해보려고 수차례 시도한 덕택에 나를 알아봐 주는 분들이 생겼다. 7년 사이 외형적으로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3차 성징은 아니니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갑자기

십이지장이 쑤셔왔다. 공복을 참다못한 위장이 거세게 항의하는 듯했다. 뭐라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먹을 것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머릿속으로 된장찌개가 떠올랐다. 먼 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한식이 먹고 싶어졌다.


푸드코트로 갔다. 가격이 1만 원이 넘었다. 비쌌다. 메뉴판을 한참을 쳐다보다가 결국 패스트푸드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위장을 달래는 용도로 쓰기엔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다. 난 사실 맥도날드 빅맥을 매우 좋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역시 빅맥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뿌듯하게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창밖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내 상념에 빠졌다.

기다림

6시 반이 넘어서면서 공항은 점점 분주해졌다. 귓가로 굵은 남성 중창단의 아카펠라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맥도날드를 나와 소리를 따라 걸었다. 


젊은 성악가들이 보였다.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음악 감상을 하기 위함이었다. 목소리는 정말 최고였지만, 음정이 많이 불안정했다. 아마추어라는 것을 큰 소리로 말하는 듯했다. 막귀인 내 귀에도 이렇게 들리는 것이니, 연습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얼마 듣지 못했다. 노래가 후반부로 가면서는 듣지 못할 정도였다. 주위를 둘러 사람들의 표정을 살폈다.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은 마냥 즐겁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걸었다. 인천 공항 구경을 이어갔다. 시간이 참 안 간다고 생각했다. 출국장 쪽으로 이동했다. 빈자리에 앉아 일행을 기다렸다. 피곤이 밀려왔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걸어 다닌 탓이다.


가만히 앉아 눈을 감았다. 시각을 통제하니 십이지장이 다시 쑤셨다. '한식을 달라고 했는데 햄버거를 먹어서 항의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지만 무시했다. 눈을 뜨고 다시 시계를 쳐다봤다. 아직도 7시가 안 됐다. 이곳저곳 전화를 걸었다. 목적 없이...

드디어

7시 30분쯤이 됐다. 일행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오가며 본 듯한 이들도 있고, 처음 대면하는 이들도 있다. 동료기자들이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한두 명이면 먼저 다가서서 인사했겠지만, 그거기엔 인원이 많다고 생각했다. 가볍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뻘쭘뻘쭘하며 무언가를 하는 척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20대로 보이는 한 기자가 나를 보고 아는 체를 해줬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요리 검색을 하다가 내가 올려놓았던 블로그를 봤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적은 이야기들도 짬짬이 살펴봤고, 내게 호기심이 생겼다고 했다. 반가우면서도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참 묘한 기분이었다.


반가워요 ^^

이번 출장을 함께할 대화 친구를 찾은 느낌이었다. 아직 여행 경험이 많지 않은 듯했다. 마치 예전 첫 출장 때 내 모습 같다고 생각해 더 정감이 갔다. 천진난만한 모습에서도 무언가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한 선배가 떠올랐다. 우연한 인연으로 만나 가족 이상의 정을 쌓게 된 한 선배. 그 선배를 처음 알게 됐던 바로 그곳이 바로 인천공항이다. 당시 1년 차 기자였던 나는 세월이 흘러 7년 차가 돼 있다. 마치 그때의 선배처럼 말이다. 그리고 난 만 1년 정도 된 후배 기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인연이 돌고 돈다는 느낌이 이런 느낌 아닐까.


그 선배는 당시 나를 인천공항 구석구석을 데리고 다니며 챙겨줬다. 첫 출장을 갈 때 유의할 점부터 여자친구 선물로 좋은 것 등에 대해서 꼼꼼하게 짚어줬다. 출장을 가서도 취재 포인트 등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잡아줬다. 그 덕에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었다. 


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에게 굉장히 애착이 생겼다. 마치 예전 나를 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

인연이란 늘 그렇게 우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연을 인연으로 바꾸는 데는 노력과 시간 그리고 진심이 필요하다. 그 친구와 난 이 우연을 발판 삼아 서로의 진심을 나눈다면 인연이 될 것이다. 


인연은 어쩌면 서서히 녹아들어 가는 치즈 같다. 화력이 너무 강하면 타고, 너무 약하면 녹지 않는다. 적당히 뜨거울 줄 알아야 하고, 녹아들고 있다면 적당히 온기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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