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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pr 16. 2016

20140416 그날을 기억하며

온 국민이 슬퍼하고 분개했던 그날...

속봅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기자실 TV에서 긴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진도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였다. 탑승객은 300명 가량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따르르릉

캡의 전화다. 난 침몰하는 배를 띄운 해운회사가 있는 인천으로 당장 출발하라는 지시였다. 우리 팀은 안산과 진도 등으로 급파됐다.

청해진해운

인천에 도착했다. 터미널이다. 청해진해운 사무실은 아수라장이었다. 현장에서 첩보가 들어왔다. 당일 새벽 날씨가 좋지 않아 배를 띄우면 안된다고 했고 일부 탑승객은 배에 타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배를 타지 않아 생존한 이도 있었다.

여행사

학교를 대신해 배를 예약해준 여행사에 대해 알아봤다. 안산에서 꽤 큰 규모의 여행사였다. 하나투어, 모두투어 만큼은 아니어도 지역에서는 꽤 큰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곳이라고 했다. 해당 여행사에 전화를 걸었다. 날이 궂은데 여행사 차원에서 출발 예약을 취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일부 승객은 환불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나온 사실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했다. 이들은 진도로 이동중이었고, 내 답에는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안했다기보다는 경황이 없는 듯했다. 이후 연락은 되지 않았다.


다음 날 오후까지 인천 상황을 커버했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고, 마치 양파처럼 까면 깔수록 무언가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국정원과의 커넥션에 대한 의혹 등이 그것이다.

진도로

사고 발생 후 이튿날 저녁 진도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내에게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야 할 것같다고 작별을 고하고 진도로 향했다. 진도에는 특별취재팀이 꾸려져 대규모로 인력이 파견돼 있었다.


난 혼자서 내려가야 했다. 목포로 가는 밤 중 기차 안에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내려가는 이들이 꽤 있었다.

고마운 분

목포에서 진도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다. 다행히도 기차역 앞에서 진도로 가는 분이 있어서 진도항까지 태워주셨다. 그분의 도움으로 편히 올 수 있었다.

체육관

다음 날 새벽에 체육관으로 향했다. 세월호를 탄 것을 확인한 가족들로 체육관은 가득찼다. 침통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해경은 이런 큰 일을 처음 치러봤는지 굉장히 아마추어 식으로 대응했다. 전혀 매뉴얼이란 없어보였다.

공무원들도 정신을 못차린 듯했다.


진도에서 2주 가량 머물렀다. 대한민국의 무능함을 현장에서 보며 분개했다.

안산으로

서울로 복귀해 안산으로 향했다. 안산에 정부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도착하자마자 희생자들의 영정사진 앞에서 헌화하고 분향했다. 평상시 느껴보지 못한 분노가 치솟았다. 한 아이를 둔 아빠로서 너무 침통했고 대한민국의 수준에 대한 원망이 솟구쳤다.


현장에서 유족 취재는 최대한 자제했다. 그래야만 했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생존자분과의 인터뷰

서울로 돌아와 생존자분과 연락이 닿았다.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들을 수 있었다.

유가족들의 분노는 청와대로

국가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을 외면했다.

사람들은 울부짓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후...

야당에게 힘을 실어준 지 이제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늘 제1야당의 공식일정은 없다...


변한 게 없다...

이게 대한민국이란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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