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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Jan 19. 2019

#76. 피아노 조율과 내 마음

방치되어 홀로 버텨냈을 시간에 마음이 아팠다

토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피아노조율사 선생님께서 오시는 날이다.


1993년도에 구입해서 부모님 집에 묵혀있던 피아노를 지난 주말 우리집으로 가져왔다.


세월 앞에 장사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속이 많이 상한 듯하다. 어쩌면 기나긴 세월동안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해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10년 이상 조율을 안하신 것 같네요
우리집에 온 피아노

조율사 선생님의 진단을 듣고 부끄러웠다. 피아노 상태가 정말 말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건 조율비를 더 많이 받기 위해 하는 그런 말이 아니었다. 그건 그동안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 혼자 세월을 견뎌낸 피아노의 속 상태를 그대로 나열해준 것 뿐이었다. 아주 적나라하게 말이다.


내 마음이 만신창이였던 불과 며칠 전이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얼마가 들던 피아노를 고쳐주고 싶었다. '요동치는 내 마음을 고칠 수만있다면'이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던 나날들 속 내 모습이 떠올라서다.


사실 최근 난 열병을 앓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 속 불안함에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을 겪었다. 관심받고 싶다는 갈망,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이 내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뽑아내려 했다. 하루하루 사는 게 곤통스러웠을 정도였다. 때론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할 만큼 마음이 혼란스럽기도 했다. 방안에 홀로 누워있을 때면 울다 잠들기도 했다. 수많은 날들을 말이다.

내 결핍은 그 누구도 채워주지 않는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아니 이제 사춘기의 끝자락에 있다는 확신이 든다. 가시나무 떨듯 흔들리던 마음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듯하다.


마흔을 앞두고 내게 찾아온 사춘기를 통해 많이 성숙해졌다. 그리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나의 애정결핍은 타인을 통해 채울 수 없고 채우려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건 오롯이 내 스스로 감당하고 이겨내야 할 내 몫일 뿐이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다는 감정을 뿜어내야 한다. 내가 스스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으며 마음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 나의 불행을, 나의 애정결핍을 타인에게 갈구해서는 안 된다. 그건 집착만 키울 뿐이다. 집착이 나를 집어삼켜 괴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으니 늘 경계해야 한다.

행복찾기

지금 내 목표는 행복찾기다. 하루하루 아니 매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살려고 애쓰고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기 보다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행복한 감정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피아노조율사님께서 주신 영감을 놓치고 싶지 않아 지금은 집 근처 커피숍에 와서 말이다. 내일부터는 주3회 운동도 시작한다. 많이 설렌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벌크업을 위한 운동이 아니다. 이른 아침 행복한 감정을 느끼고 싶어 하는 내겐 도전과도 같은 운동이다. 총각때 정장에 즐겨 신었던 흰색 나이키 에어맥스90도 주문했다. 오늘은 염색도 할 거다. 더 멋진 나로 만들기 위해서.


아저씨가 아닌 트렌디한 나로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꾸미는데에 큰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살도 많이 찌고 많은 부분이 아저씨화 되었다. 자기 관리에 소홀히 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10년 이상 방치된 피아노를 보며 마치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전 서른살의 나는 트렌디하고 나름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내 스스로 너무 겉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보통 피아노 조율은 20~30분 정도, 아무리 관리가 잘 안된 피아노도 1시간이면 된다고 했는데.... 2시간 정도가 걸렸다. 꼼꼼하게 봐주신 덕택이기도 하겠지만, 난 피아노가 조율이 되는 동안 마음이 너무 아팠다. 피아노 역시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하며 긴 시간을 괴로워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하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최근 겪은 사춘기 덕택으로 지금은 석달 전보다 8킬로그램 정도가 빠진 상태다. 뱃살도 줄어들었고, 턱선도 살아났다. 65kg을 다시는 못찾을 것만 같았는데 드디어 65kg까지 내려왔다. 이제는 관리만 잘 하면 될 것 같다.


나 자신을 위해서, 멋진 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과 투자를 하며 행복하게 살 것이다.

거의다 되어갑니다

조율사 선생님이 건반을 눌러 나간다. 때론 섬세하고 때론 웅장하게 소리들이 내 마음 속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이내 마음이 동요되며 감성에 젖는다. 너무도 아름다운 선율에 행복하다는 감정이 온몸을 휘감는 것 같았다. '이렇게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구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 이것 또한 삶의 소소한 행복, 아니 감동이 아닐까.


연주를 마친 조율사 선생님도 흡족해하신다. 내가 방금 들은 연주는 그 어떤 피아니스트보다 멋지고 감동적이었다. 장장 2시간 여 동안의  조율 작업은 내 피아노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다. 예전 모습을 되찾은 듯했다.


오랜 세월을 견디고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해서인지 피아노의 선율이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라고 생각됐다.


이제 내차례야

마음이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이제 더이상 슬퍼하지 말자. 이제 더이상 아파하지 말자. 이제 더이상 집착하지 말자. 이제 더이상 불행하지 말자. 이제 더이상 상처받지 말자. 이제 더이상... 이제 더이상...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시작됐다. 내 마음의 조율을.


난 이제 행복할거다. 이젠...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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