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Jan 23. 2024

“입장 바꿔 생각하는 아이“의 특별한 능력

공감과 통찰로 빅데이터 시대에서 살아남기

“입장을 바꿔 생각해봐.”


아이들이 학교에서 다투고 왔어요, 혹은 끙끙 앓으면서 친구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돼요, 그럴 때 우리는 이 말을 합니다. 아직 사회성을 키워가는 단계에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이나 생각에 대해선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생각에 메어 있을 때 효과적인 조언이죠.


 그런데 입장 바꿔 생각하라는 게, 퍽 어려운 일입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야 할까요? 아이가 경험하고 있는 갈등 상황은, 언제부터 시작되어서 해결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그리고, 다른 주변 사람들은 어떻게 그 상황에 관계되어 있을까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입장 바꾸기”의 수수께끼는 늘어만 갑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퍽 본질적인 요소이기도 하죠. 어른이 되어서도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잘 안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 아닌, 우리의 입장을 아이에게 전달해야 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그럴 때 우리는 얼마나 신중히 아이의 이해도를 파악하면서 말을 할까요? 얼마나 적절히 이야기의 핵심을 전달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할까요? 아이가 고집을 피우며 자기 생각을 내세운다면 또 그땐, 어떻게 해결하죠? 질문이 이어질수록 어렵습니다. 우리에게는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네요.


 한편, 입장 바꿔 생각하기를 아이의 “능력”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것일까요? 조금 고민이 될 수 있는 일이죠. 아이가 키워야 할 능력도 많고 채워야 할 지식도 많은데 입장 바꿔 생각하기 같은, 대인관계에서 써먹는 기술 같은 것을 키워서 뭘 할까요. 그러나 이것이 필요한지 그렇지 않은지 결정하기에 앞서, 이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무엇인지, 그것이 아이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를, 한번 살필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사건과 맥락


 영어의 맥락, context라는 단어는 text, 다시 말해 “글들의 모음”을 뜻합니다. 낱낱의 이야기들이 합쳐져 하나의 큰 줄거리를 이룬다는 것이 맥락이라는 의미죠. 맥락을 안다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는 내가 경험하고 있는 어떤 한 상황이 과거로부터 어떻게 흘러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맥락을 잘 이해한다면 주어진 상황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비교적 적어지지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맥락은 그러한 과거로부터의 흐름을 두 배로 늘려 인식하도록 요구합니다. 나의 맥락과 상대방의 맥락을 모두 파악해야 갈등 상황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조정할 수 있겠죠? 여기에 관계되는 인성 요소들은 인내심과 호기심, 집중력, 배려심 등이 있습니다. 아이가 타인의 맥락을 이해한다는 목적을 잘 수행하기 위해선 자동적으로 저러한 능력들이 배양될 수 있습니다. 우선 이것도 적지 않은 소득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맥락을 파악한 다음에 어떤 실천을 할 것이냐? 하는 질문에도 여러 가지 특성들이 관계됩니다. 어떤 아이는 과민하게 상대방의 의견에 맞추려는 행동을 합니다. 가치 판단이 아직 잘 되고 있지 않은 것이죠. 또 어떤 아이는 상대방과의 관계속에서 우열 관계를 많이 따지며 맥락을 무시한 행동을 택하는데요, 그것은 자존감, 우월감과 열등감이 관계됩니다. 아무리 맥락을 잘 알아도 소용이 없는 경우도 있는 것이죠.

 혹은 아이들이 입장 바꿔 생각하기 다음에 어떤 실천을 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대화 그 자체에 빠지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수다쟁이 아이들입니다. 이것은 이성 영역에 비해 감성 영역이 지나치게 발달되고, 아이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와 동기가 부족한 것이 원인일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사람은 주관적이고 아이들은 그런 성향이 더욱 강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대화에 골몰하는 것은 그만큼 자아의 왜소함이 배경에 깔려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맥락을 파악한 다음에 모두에게 가장 좋은 결론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실천 행동은 전략적 사고, 추론 능력, 책무성 등이 관계되는, 매우 중대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입장 바꿔 생각하기”는 이러한, 아이의 내면의 인식과 관계 능력, 그리고 인식과 실천에 대한 여러 가지 특성들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활동입니다. 이 자체로 앞으로의 삶에서 상당히 중요한 능력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context가 아닌 text에 집중해보고자 합니다. “나”와 “상대방”의 맥락 알기, 여기에 공부를 대입해 볼까요?


 “나”와 “지식” 혹은 “공부”의 맥락 알기, text들의 묶음으로써 지식을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고르게 알며, 인내심, 호기심, 집중력을 키우고, 가치 판단과 자존감이 반영된 인식적인 활동, 그리고 전략적 사고, 추론 능력, 책무성 등이 관계되는, 그런 공부.


 다시 말하여 우리가 공부라는 활동과 배우는 지식 맥락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배경지식의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빅데이터 시대, 맥락을 짚는 통찰로 생존은 시작된다.

 

 아이는 스스로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미 일군 지식을 하나 둘 맥락과 별개로 익히게 됩니다. 알파벳을 배울 때 그것이 고대 이집트에서 페니키아라는 지중해 국가를 거쳐, 그리스에서 로마로 옮겨가며 유럽 각국에 퍼졌다는 것을 배우는 아이는 없죠? 아이에겐 태어나면서 세상이 이미 빅데이터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제시됩니다. 그 안에서 “교육계획” 혹은 “교육과정”이라는 절차에 따라 하나 둘 단계에 맞추어 배워가지만, 그 또한 맥락으로써 전달되는 것보다는 뚝뚝 따로 떨어져 전달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의 단원, 하나의 교과 이런 방식으로 말입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이제 빅데이터라는 현상을 직접 접하고 그 속에서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고 할 때도 역시 맥락을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 존재합니다. 너무나 정보의 양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특정한 정보를 알 수 있는 경로는 다른 사람들이 그 정보를 얼마나 많이 접하고 활용했느냐가 주된 요인이 됩니다. “추천 영상”이라거나 “실시간 검색어 1위”가 빅데이터 상황에서 정보가 우리에게 전달되는 방식이죠.


 이런 지식과 정보에서의 빅데이터 상황과, 그로 인해 맥락을 알기 어렵다는 점은 아이들에게 학습과 활동의 장애물로 존재합니다. 어느쪽이든 수동성을 키우고 지식과 정보를 단지 겉껍데기만 알도록 하죠. 그러나 여기에서 “맥락”을 파악하는 습관, 정보를 하나 하나의 가치 있는 텍스트로써 인식하고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맥락을 더듬을 수 있는 능력은, 아이들에게 미래 시대의 변화에 맞설 유용한 무기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공부의 측면에서 맥락의 중요성은 첫째, 지식을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줄기로써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시를 통해서 당대의 암울한 현실을 역사적 관점에서 함께 배워갑니다. 변절한 시인의 아름다운 언어를 보며, 미학과 윤리의 문제를 따져볼 기회를 갖기도 하죠. 수학과 과학에서는 하나의 개념이 어떻게 학자들의 노력을 통해서 생겨나고, 얼마나 길고 재미있는 논쟁들을 통해 하나의 지식으로 완성되었는지를 통해, 훨씬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가 배워나갈 방대한 양의 지식에 주목하며 이런 맥락 함께 가르치기를 주저하지만, 아이가 처음 공부를 배워나갈 때에도, 성장해서 맞이할 미래상황에서도 맥락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아이와의 “입장 바꿔 생각하기 연습”을 통해서 사회적인 소양을 기르는 가운데 함께 배양될 수 있습니다.

 

 맥락의 두번째 중요성은 과거와 현재를 통시함으로써 미래의 추세까지 예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실천 행동의 효과를 높이며, 가치의 생산을 보조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번뜩이는 예지로 사회변화를 앞장서가는 사람들이 있죠. 과거와 현재를 명료히 파악하니 앞으로 해야 할 일들도 명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맥락이 관계성과 함께 자라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리더십과도 매우 긴요하게 얽혀있습니다. 리더라면 구성원 모두의 개별 맥락을 잘 파악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겠죠. 동시에, 앞으로 우리 공동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앞뒤의 맥락을 따져 신중히 판단해야 합니다. 이것은 별도의 훈련을 요구합니다. 또한, 자존감, 인내력, 집중력 등이 관계되죠. 리더십이 괜히 귀한 특성이 아닌 것입니다. 이런 “입장 바꿔 생각하기” 노력을 사람의 관계에서, 그리고 지식과 정보에서도 유지하며 거두어지는 능력입니다.


 맥락의 세 번째 중요성은 배경지식을 광범위하게 형성하여, 오히려 나중에 가면 지식의 습득과 정보의 처리가 빨라진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공부할 시간과 체력은 한정되어 있는데, 공부할 양은 많지요. 그러니까 아이에게 중요한 것들만 딱딱 떼어내어 가르치는 길을 우리는 선택합니다. 건축에 비유하면 빠르게 높이부터 올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맥락과 함께 공부를 하는 방식으로 한 층 한 층 넓게 터를 잡고 지반을 다지며, 층고를 높이면, 처음엔 속도가 늦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나중이 되면 아이가 형성하고 있는 지식의 맥락, 즉 배경지식을 통해 훨씬 빠르게 공부를 해나갈 수 있습니다.


 맥락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취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동시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는 고차방정식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앞서, 일제강점기의 시를 통해 국어, 역사, 윤리, 미학 등을 비교하며, 한 시인의 삶에 대해 복합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것처럼요. 인간의 삶 자체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가치 판단을 신중히 하고 행동 지침을 스스로 설정하는 이런 연습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차방정식을 푸는 연습을 계속해나가면 어떤 현상을 보고 단편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복합적으로, 연관된 다양한 것들을 고려하는 습관이 형성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특성이죠. 빅데이터 환경에서는 정보의 연관성이 가치를 창출하는 주요한 경로가 되니까요.      


“입장 바꿔 생각하기”와 공부 대화


 본질적으로 공부란 책과의 대화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복잡한 수식과 단어, 논리를 우리의 언어로 녹여내, 인지체계에 통합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들의 내면과 맥락을 추론하며, 그에 맞는 행동을 선택하는 습관을, 공부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자녀교육의 길입니다.


 여기엔 민주적이며 수평적인 대화 방법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방금, 지식을 언어로 녹여낸다고 했잖아요. 우리가 갖고 있는 언어가 많은 것들을 아우를 수 있는 화학약품이라면, 그만큼 많은 것들을 보다 쉽게 녹여낼 것입니다. 그런데, 일부 화학물질에만 반응하는 약품처럼 편협하고 좁은 언어라면 우리가 녹여낼 수 있는 지식, 정보, 경험도 많을 수가 없습니다. 열린 태도로 사람을 바라보듯, 열린 태도로 공부를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인내심은, 기르는 사람의 그것을 아이는 그대로 빼닮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입장 바꾸어 생각하는 훈련이 이토록 공부에, 아이의 생존에 유용하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앞으로의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훨씬 신중해지겠지요. 그 자체로 아이에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새로 열린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별 이야기들은 하나의 맥락 속에서 우리에게 모두 흥미롭게 다가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 꼭지 앞으로 가서 우리가 나누었던 질문들을 다시 살펴보시죠. 아이가 공부할 때 이런 질문들을 품고 공부를 한다고 생각을 해보시죠. 아마도 공부의 의미를 다시 느끼게 될지 모릅니다.

이전 11화 좋은 부모는 아이와 이렇게 놀아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