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용두동 화동갈비
"형형 새로 맛집을 찾았다."
"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열 몇해 전, 마침내 정교사가 되어 인신의 안온함이 일정 부분 보장되자 같은 해에 다른 학교에서 정교사가 된 친한 형과 나는 매일 술을 마시며 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월화술술술술술요일의 시작. 바로 직전까지는 기간제 교사의 추운 겨울을 함께 보낸다고, 같이 먹는 술도 술 같지 않았고, 그보다 더 몇해 전에는, 둘 다 돈이 없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비루하게 술값을 내주었던 형과 나는 이제는 사이 좋게 교대로 술과 안주를 쏘곤 했다.
그중에, 한달에 한번은 소고기나 비싼 횟집 같은 곳엘 갔다. 평소에 집에서 집밥을 넉넉하게 챙겨먹는 나와 달리 형은 10년 넘게 자취를 하는 와중이었으므로 상대적으로 식탐이 조금은 더 있었다. 개중에 값비싼 소고기에 대한 애착으로, 꼭 한번씩은 한우를 먹겠다며 먼저 소고깃값을 턱턱 내곤 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나도 비싼 가게일 경우 술값을 부담하면서 우리의 지출은 비교적 공평해졌다. 그리고 나는, 식탐은 많지는 않지만은 같은 돈이면 더 좋은 식당엘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집념으로, 더 맛있는 식당을 찾아 형에게 제안하곤 했다.
그래서 찾아낸 곳이 화동갈비. 서오릉 뒤켠의 용두동에 위치한 곳으로, 10여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목 좋은 곳이라곤 절대로 말할 수 없는 조금 생뚱한 곳에 자리한 식당이다. 소고기라는 것이, 원래부터 교외에 가든식당으로 발달한 곳이긴 하건만은 화동갈비만은 주변이 거의 시골길이나 마찬가지다. 남자 둘이서 그 시절에 술을 먹겠다고 찾아가려 해도, 택시를 타면 모를까 대중교통으로는 어림이 없는 곳인 데다 주변에 2차로 맥주를 먹으러 갈 곳도 없다. 트럭이 슁슁 달리는 대로를 술에 취해 비척거리며, 여름날 2차를 향해 고생하며 걷던 일이 생생한, 이 집이, 그때에 소고기 주물럭이 참 맛이 좋았다. 철사로 된 얇은 석쇠에 백탄 숯의 높은 화력으로, 가볍게 양념된 주물럭을 올려 먹으면 그야말로 고기가 혀에서 녹는 부드러움.
그래서 그 가는 길의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형과 나는 한달에 한번, 여길 찾아가곤 했다. 그리고, 둘이서 아끼며 주물럭을 먹곤 2차를 위해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다른 걸 시키진 않았다. 그때 딱 한번 화동갈비에서 돼지갈비를 시켜본 적이 있는데 이미 450g 가량의 소고기에 소주를 배불리 먹었으니, 식욕이 돋을 리도 없고 맛을 제대로 볼 재간도 없다. 그냥 2차를 가기 귀찮으니 여기서 한두병 술을 더 먹자고 돼지갈비를 시켜본 것일 뿐이다. 그때는 그 돼지갈비가 맛이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10여년 뒤.
"아 오빠 그럼 화동 가자."
"음-. 어- 응."
장인어른의 생신 식사로, 돼지갈비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리고 처가에서 화동갈비가 차로 15분 여 거리. 그리고 이전에 서오릉의 다른 갈비집들은 두어군데 섭렵한 참이라, 맞춤한 선택이 되었다. 10여년 사이에 술꾼 둘이서 가던 식당을 이제 처가 어른들과 아이를 모시고 가게 되었다. 살림살이란 것이 결혼하기 전처럼 마구 비싼 음식을 사먹을 일은 없게 되었기에, 소고기가 아니라 돼지갈비가 되었다는 점은 조금 죄송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이제- 쪼그려 앉으면 다리가 아파서-."
"아아. 네."
아이도 있고 하니 소음도 덜 나는 안쪽에 좌식 방을 둘러보고 장인어른깨 의중을 여쭈었다. 그러자 장인어른께서는 테이블석의 의자를 당기며 좌식을 넌지시 거절하셨다. 생각이 짧았다. 이제 어른들께서도 좌식보다는 테이블석을 더 반기는 연세들이 되셨다. 우리는 자리를 잡고, 돼지갈비로 5인분. 그리고 술과 밥을 주문했다.
"5인분이요- 껍데기는 서비스."
"오빠 껍데기도 나온 거야 서비스로?"
"응 여기 원래 조금씩 줘."
갈비는 19000원에, 껍데기는 250g에 12000원. 껍데기의 값이 조금 비싸다. 원가를 생각하면 아무리 갈비집이라고 해도 이 값에 사먹어야하나 싶은데 마침 서비스로 준다 하니. 원래는 저녁식사를 뷔페 식당에서 하려 했기 때문에 나와 아내, 아이 모두 배가 제법 고픈 상태였다. 석쇠 위에 고기를 그득히 올리자 이내 고기가 빠르게 익어갔다.
"어어. 대박."
"왜?"
"여기 봐라, 돼지 찌찌다."
"윽. 뭐야."
그런데 껍데기가. 12000원의 값을 할까싶던 의문이. 시작부터 허물어졌다. 줘도 그만 안줘도 그만인 서비스에 뱃살 쪽 껍데기 살이 나왔고, 그중에서도 인기 부위인 유통이 섞여 나왔다.
"여기가 맛있는 거야. 제일 인기있는 부위인데."
"어머 징그러워 설명 안해도 돼."
"흐음."
고기가 빨리 익는다. 껍데기를 자르는 짧은 시간 사이에 고기가 탄 부위가 생기고 있었다. 빠르게 고기와 껍데기를 석쇠 위에서 굴리며 탄 부분은 잘라냈다.
"애기 먹게 더 작게."
"응."
"여기 반찬 좀 더 주세요-."
고기가 구워지는 즐거운 식사시간이다. 아이는 밥을 열심히 먹고 있었고 나는 반찬들로 허기를 달래며 빠르게 고기를 구웠다. 그리고, 벌써 다 익은 갈비 살들을 각자 먹기 편한 위치에 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도 한 입.
돼지든 소든, 양념구이를 잘못 먹으면 고기가 아니라 두꺼운 종이를 씹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값 싼 냉동고기를 사다가 양념에 절이기 때문이다. 이미 고기 속의 수분이 다 빠지고, 그 자리를 양념으로 채웠다가 다시 구워지는 과정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오면서 식각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얼마 전에도 집 근처에 지역 맛집이라고 할만한 곳에 갔다가 된통 당한 일이 있다. 그런 곳에선 돈만 날리는 셈이다.
그에 비해 화동갈비의 경우, 갈비의 육질이 생고기의 식감 그대로 살아있는 양념구이다. 비계도 고기도 각자의 본래 그 식감과 감칠맛을 그대로 뿜어낸다. 육즙도 잘 느껴진다. 10년 전엔 이렇게 맛있는 돼지갈비를 공연히 내가 푸대접을 했었네. 나는 열심히 고기를 구우며 생각했다. 아내도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아이도 젓가락과 숟가락이 쉴 틈이 없다. 특히나, 껍데기를 처음 드셔보신다는 장모님께서 잘 드셨다. 안타깝게도, 누가 유통을 먹었는지는 알 길이 없겠지만. 아마 징그럽다고 했던 아내이거나, 장모님이셨을 것이다. 이 껍데기 역시도 식당을 잘못 고르면 한번 삶아둔 걸 파는 곳도 많다. 그러나 이 식당은 뱃살이 절반 조금 안되게 비율을 차지하고, 양념도 잘 배어있는 생고기다.
일요일이었다. 저녁 6시를 넘기자 식당에 사람이 가득해졌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보니 카운터에서는 대기 순번을 적는 노트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럼 점이, 새삼 반가웠다. 코로나도 꿇고, 경기 한파도 뚫으며 내가 10여년 전 즐겨찾던 식당이 여전히 번성하고 있다니. 하물며. 그 맛이 10년 전보다 더 좋게, 지금 느껴지고 있다니.
"휴 배불러."
고기와 껍데기 각각 1인분씩을 추가 주문했다. 그러나 다른 가족들은 모두 배가 부른 상태였는지 고스란히 거의 다 내가 먹게 되었다. 나도 배가 어지간히 부른 상태였지만, 남길 수도 없으니 열심히 싹 다 해치워버렸다.
그리고 이때쯤 먹어도 맛있으면, 진짜 그건 맛집이다. 10여 년 전엔 이때쯤 먹었기에 맛이 없었게 느껴졌을 테고. 나는 그렇게 바삭바삭 잘 구워진 껍데기, 아직 촉촉함이 남아있는 쫄깃한 돼지갈비를 맛있게 먹었다. 이 맛을, 10년 전쯤에도 잘 알았다면, 그 사이의 시간들이 보다 돼지로웠지 않았을까. 덕분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비롯, 가족 모두 즐겁게 마친 식사가 되었다. 돼지로운 길이든 한우로운 길이든, 뭐어. 또 찾게 되지 않을까. 10년만이 아니라, 1년만에든 그보다 짧은 시간만에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