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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18. 2020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를 넘어서서

교육과 커뮤니케이션(4)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커뮤니케이션의 양과 질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해볼까요. 먼저 커뮤니케이션의 양을 높이기 위해선 아동기에 최대한 많은 자극이 주어져야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아이들의 반응을 부모님들은 관찰하고, 다시 새로운 자극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촉진해야 해야겠지요.


 아이와의 대화에서 유의하실 점, 나 자신은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잘 인지하고, 아이에게 부여할 메세지가 어떤 것인지를 잘 이해하고, 아이와 나누는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에 대한 이해를 튼실히 하고, 아이의 상태, 성장발달 단계를 잘 이해하고, 그리고 원하는 자극 반응이 나왔는지, 그것을 잘 살피시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리고 아이의 내면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기 위해서 충분히 많은 학습매체를 제공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율성이 초기의 학습에서 발휘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이가 무언가 호기심을 갖고 탐구를 해나가는 과정이 막혀서는 안됩니다.


 교육학에 "형식도야이론"이란 것이 있는데요, 아동기의 성장 발달을 나름 잘 설명해주는 접근법입니다. 아이의 지적 성장을 어떻게 우린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아이가 하는 행위를 관찰하고, 그 행위릐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을 추구하자는 이론입니다. 웅변학원을 다녀서 웅변을 잘 하면 논리력, 국어능력이 발달될 것이라는 기대는 형식도야이론에 근접합니다.


 실제로 아이의 행동 발달상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서 다양한 피드백을 주는 것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도 그렇게 하니까요. 인형뽑기할 때 이리 머리 굴리고 저리 머리 굴리는 경험은 누구나 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의 발달단계에서 우린 아이의 다양한 역량을 길러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끼고 하루 종일 대화를 해주던 단계를 지나고, 그리고 집에서 혼자 이리저리 레고를 만지고 그림을 그리고 가위질을 하면서 기초학습을 거치는 단계를 지나고, 슬~슬 어린이집을 가고 이제 한문, 영어,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하죠. 학령기 아동의 자발성은 여전히 효과를 발휘합니다. 그러나 언제쯤 아이는 더 이상 교사의 질문에 손을 들지 않게 될까요? 언제쯤 아이는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될까요?


 초등학교에 입학해 대략 적응을 할 무렵부터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거대한 교육과정의 흐름에 몸을 실어, 10년 이상을 싸워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그 다음 단계는 어떤 가르침을 주어야 할까, 말입니다.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이를 테면 영어교육의 경우, 우리 나라의 정규교육과정은 모두 태반이 읽기, 그리고 듣기 조금. 희박하게 쓰기, 그리고 아주 아주 희박하게 듣기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언어는 네가지 능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영어 교육이 그렇게 짜여져 있는 것도 아주 당연한 이유가 있습니다. "다루는 학습 지식의 양"에서, 읽기가 가장 많이, 듣기가 그 다음, 쓰기가 그 다음, 그리고 말하기는 가장 적기 때문이지요.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특별히 잘못된 것이라기보다는, 제2외국어로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육당국의 입장에서 "많은 지식을 다루도록 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두었을 뿐입니다. 그 밖에는 학습자의 문제일 뿐이죠. 우리나라 영어 정규수업 과정을 거치면서, 적당히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말하기와 쓰기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러고 싶을 만큼 영어를 재밌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비교적 적을 뿐이죠.


 그리고 과거제도와 유교의 영향으로 전통적으로 지식 축적을 중시했던 우리의 교육 문화에서 이 원리는 아주 충실하게 현대의 우리 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최선이고(동시에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초-중-고-대학의 모든 시험과 평가는 결국 얼마나 많은 지식을 축적했는가를 검증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고려합니다.


 특히나 이런 교육철학은 최대한 많은 국민에게 최대 효율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국가교육기관의 입장에 부합하기도 하죠. 말하기 쓰기보다 읽기와 듣기가 중시되어온 것은 이런 알기 쉬운 이유가 있고, 아이가 아무리 줄어도 적어도 이 글을 읽고 계신 학부모님들의 교육 고민이 끝날 때까지는 이 교육 조건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하기 역량, 듣기 역량, 쓰기 역량, 읽기 역량

 

 문제는 학령기 무렵까지 아이의 말하기 역량, 듣기 역량, 쓰기 역량, 읽기 역량은 실제로 고르게 발달되고 있는 상태였다는 점입니다. 다시 형식도야이론 빠밤. 부모님들이 교육적 열정이 많을 수록, 아이는 잘 쓰고, 잘 말하고, 잘 읽고, 잘 듣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읽기만 강요하는 교육 환경의 변화를 경험하고, 아이의 학습관이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지요.


 자, 첫번째 문제. 그리고 해결책. 아이의 4가지 언어능력과 읽기에 편중되어 있는 교육 조건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쓰기와 말하기를 통한 학습의 기회를 끊임없이 부여해야 합니다. 아직 학습양이 폭증하기 전인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에서는 사교육으로 충분히 해결이 가능한 영역이겠네요. 그러나 아이의 성장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서 가정에서 쉴 틈 없이 아이의 말하기 학습 쓰기 학습을 시키셔야 합니다. 말하기 능력은 특별히 관리하실 필요는 없지만 일기 쓰기, 그리고 감상문 쓰기 정도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해주셔야 하겠네요.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웅변학원을 보냈었나 싶기도 합니다만.


 두번째 문제. 그러나 결국 우리 교육환경은 읽기를 통한 지식축적으로 완전히 통합되어버리기 때문에, 아이의 읽기 능력을 고도화시켜야 합니다. 듣기 능력과 함께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읽기"에 극단적으로 편중되어 있는 아동이었습니다. 집이 서점이었고 부모님이 맞벌이 하시느라 저는 하루 종일 책읽기 말고는 할 일이 없었거든요. 오히려 요즘 아이들과 반대지요. 그래서 지금 성인이 되어 이렇게 숨쉬듯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초등학교 땐 글쓰기를 참 귀찮아했어요. 일기 쓰기 조차 대단히 귀찮아했습니다. 그런 반면 하루에도 단행본 한두권은 가볍게 읽고 치웠죠. 초-중-고 내내 사교육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하던대로 "읽기"만 열심히 하면 지식은 축적되고, 학력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읽기 능력을 기른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지요. 우리는 그저 아이가 책을 읽는 것을 관찰하고, 아이가 읽고 싶어하는 것과 아이가 읽어야 하는 것 사이에서 어렵사리 갈피를 잡아갈 뿐입니다. 그러다가 어느새 아이의 성적이 자꾸 투자한 것에 비하여 만족스러운 결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을 감지하면서 천천히 불안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이제, 색다른 관점에서 조금 이야기를 풀어볼 차례입니다.


능동적 듣기, 주체적 읽기로 향하는 길은?


 우리는 객관적으로 언어능력을 잘 평가하지 못합니다. 보통은 말하기를 잘 하면 언어능력이 좋은 사람인 줄로 알죠. 주변을 보시면 아주 활발하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10명이 모인 회의실에 데려다놓고,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 충분히 숙고를 할 시간을 준 뒤에 토론을 해보라고 하면, 그 사람은 말솜씨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면대면으로 편안하게 대화를 할 때랑은 많이 다를 것입니다. 면대면 커뮤니케이션, 소규모커뮤니케이션과 중대규모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숙의토론은 다른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면대면 커뮤니케이션도 매우 중요합니다만 재미있게 농담을 잘하는 아이와 토론을 잘하는 아이 중에 어느 쪽으로 아이를 기르고 싶은가? 라고 묻는다면 말할 것도 없이 후자를 택하실 것입니다. 토론능력이 학습능력과 연관이 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이죠.


 즉, 언어를 습득해 나가는 학령기 이전 시기까지의 커뮤니케이션의 양과 질과는 다른 관점에서 언어능력을 재검토할 시기가, 아동의 성장발달 시기에 따라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책을 읽고 암기를 잘 하는 시기를 넘어서서 정보를 다각적으로 취득하고 검토할 수 있는 능력, 동시에 다양한 의견을 듣고 그 사이에 상충하는 견해를 찾아내고, 그들을 중재할 수 있는 능력을 발달시킴으로써 아이의 성장을 촉진할 때인 것이죠. 구체적으로는, 본격적으로 역량 중심의 교육과정이 아이에게 제공되는 중학생 시기가 아이의 네가지 언어능력을 새롭게 재구성할 시기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다시 초등학교 고학년 동안 편중되게 읽기에 치우쳐 있던 언어능력이 모두 고르게 다시 발달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지 언어능력이 학습을 매개로 통합되죠. 고등사고력이 발달하면서 읽은 것과 쓰는 것,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을 통합할 기회가 아이에게 찾아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때 여전히 아이들의 학습 조건은, 읽기에 과도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아이의 언어능력과 교육조건의 불일치가 발생합니다. 아이는 다양한 언어능력을 구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막상 학교 교실은 그런 기회의 창을 열어두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문제가 하나 더 발생합니다. 읽기 중심으로 발달된 아이의 학습관은 크게 수동적인 경향을 띤다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교사의 말에 충실하지만, 스스로 무언가를 생각할 능력은 부족합니다. 그로 인해 말하거나 쓰기에 자신감을 보이지 못합니다. 읽기에 편중된 수동성이 언어의 다른 기능의 발달을 저해하면서, 자연스럽게 고등사고력을 발달시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읽기 중심의 교육 환경에서 아이의 읽기 능력을 발달시킬 것을 주저할 순 없지요. 초등학교 고학년 기간, 총력을 다하여 읽기 능력을 발전시켜주는 것은 필수입니다. 다만 여기서 발생하는 딜레마로서 아이의 수동성이 크게 늘어나는 점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문제일 수 있습니다.


 자, 어떻게 해아 할까요. 이번에도 분량이 지나치게 길어졌네요. 어쩔 수 없이, 정말로 다음 편에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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