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수달이의 반달살이 / 여수
대체 어쩌다가 이런 저질스러운 몸이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답은 너무나 명확하지만.
향일암에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생각보다 높고 높고 멀고 멀었다. 바깥양반을 먼저 매표소에 내려준 뒤에 바로 옆에 차를 댔는데, 그 사이에 계단을 50개 넘게 올라가 있는 걸 따라잡겠다고 후다닥 뛰어올라간 고작 그 정도 운동만으로도 이내 숨이 차오르고 다리가 저릿하게 저려오기 시작했다. 너무 놀았다. 너무 운동을 안했다. 내일모래면 마흔살인 내 몸이 15년 전 GOP에 대한 기억에 아직 파묻혀 얼토당토 않은 기준선을 잡고 있긴 하지만, 겨우 이걸로 내가 지금 힘들어할 노릇인 걸까. 그런 나의 한탄과는 무관하게 정문을 지나서 등용문, 등용문을 지나서 그 유명한 해탈길, 그런데 해탈길을 지나고 나니 대웅전으로 향하는 몇개의 계단이 또 나온다. 그 길을 나와 바깥양반 모두 서둘러 뛰어오르고 있다. 일출 시간을 넘겨버린 탓이다.
어제 일출시간부터 저녁 시간까지 지나치게 긴 일정을 보냈다. 그리고 간밤엔 바깥양반이 악몽과 잠꼬대로 우리 둘 모두의 잠을 방해했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잠자리가 자주 바뀌는 통에 이런 날이 있는법이지. 그렇다고는 해도, 새벽에 깨어서 한 시간 가까이 다시 잠들지 못한 내 문제도 있다. 어젯밤을 보낸 숙소가 그 놀라운 시설에 비해 정작 숙소가 작고 잠자리가 영 쓸만하지 못했다. 일곱시에 바깥양반은 조심스럽게 날 깨우며 향일암에 갈지 말지 의견을 물었고 나는 바딱 일어나 서둘러 차를 몰았다. 오늘도 날씨가 너무나 화창했기에. 그리고, 이런 날씨의 향일암은 처음이기에.
"크하아아- 허억 허억."
그렇게 미친듯이 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에 도착해, 나는 완전히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퍼져버렸다. 원래는 7시쯤부터는 나와서 붉게 달아오르는 여명부터 봤어야 하는데. 오늘처럼 일출이 아름다운 날에 이미 지평선에서 도동실 떠올라버린
"오빠 아까 매표소에서 아저씨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하아...후우..."
"왜 그렇게 급하게 가요? 그러길래 내가 아 일출 때문에요 했거든. 그러니까."
"응."
"해 이미 떴어! 그러더라고."
맞다. 일출시간이 지났다. 적어도 30분, 최소한 10분전에만 왔더라면 더욱 아름다운 일출을 보았을 텐데. 그랬으면, 이토록 산길을 뛰어올라올 필요도 없이 천천히 천년고찰의 고즈넉함을 즐겼을 텐데.
한참만에 안정을 찾은 나는 그제서야 티끌 한점 없이 망망한 향일암의 지평선과 일출의 해무리를 바라보았다. 조금 더 춥지 않은 시기에, 코로나 걱정 없이 올 수 있다면, 생각을 해보자. 돌산도의 좁은 길을 어둠을 뚫고 조용히 지나와, 눈과 귀와 입을 가린 세 동자승을 지나, 아 그때쯤이면 새 소리도 충만할 것이고, 해탈길을 지나면서 바위틈 사이로 비쳐드는 여명과 함께- 마지막 계단을 지나며 마음을 비워내면서 일출을 맞이했을 것인데. 그랬다면, 그날은 얼마나 완벽한 하루가 되었을 것인지.
장난끼가 발동해 동문회 톡방에 일출 사진을 올렸다. 한 10살 위의 선배께서 자기가 마침 책을 읽고 있는데 향일암 대목이라며 신기하다며 그 구절을 바로 적어 올리셨다. 이런 것이 인연이려니. 나는 고흥과 소록도도 여유가 되시면 가보시라는 말로 받았다.
아구 반가워라...마침 읽고 있는 책에 나온 그곳의 사진이네요~~~가고픈 마음을 담아 공유해 봅니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중에서... :
오르는 사이에 날이 밝았다. 눈앞의 바다에 펼쳐진 임포의 풍경. 흡사 바다로 헤엄쳐 나가는 거북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향일암을 영구암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유이다. 대웅전 바로 옆 용왕전의 약수 한 사발을 마신다. 석간수. 깊은 바위 틈새를 뚫고 나오는 저 청정한 물들의 인내. 달다.
대웅전에서 깊은 바위 동굴 속 길을 따라 올라가면 관음전이다. 대낮에도 전등을 켜놓는 이 돌계단 길은 원효대사가 처음 절을 짓고 수도를 한 자리라고 한다. 약사여래상이 서있고 작은 아기 동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이 자리는, 향일암에서도 가장 일출을 보기에 좋은 자리다. 그렇지 아니할 것인가. 원효대사가 이 자리에 앉아 무수한 일출을 배관했으니……. 대부분의 해맞이 객들이 대웅전 쪽에서 머무는 반면 눈썰미 있는 해맞이 객 몇몇은 이곳 관음전까지 올라온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침으로 라면을 먹기로 했다. 향일암이 돌산도 끝이니 시간은 벌써 9시. 편의점이 숙소를 지나 차로 5분 정도 더 가면 있는데 그걸 굳이 또 차로 다녀오기가 구차해 걸어서 다녀왔다. 그러고 나니 왕복 30분. 아침부터 운동을 화끈하게 했다. 바깥양반 주문대로 아이스크림 콘까지 사왔는데, 염분 범벅인 라면에 설탕범벅인 아이스크림까지 먹어도 조금도 후회나 미련이 남지 않을만한 스타트다. 그것을 향일암 못지 않은 바다뷰를 보며 야외에서 먹었다. 괜찮은, 하루의 시작이랄까. 제주도에서도 매일 이렇게 하루하루 부지런하게 보내면 좋을 것 같지만 도착하는 다음날부터 4,5일은 비 예보다.
"오빠, 바깥양반이라고 하지마."
"엉?"
나는 별 생각없이 "어이 바깥양반"이라고 말했다가 생각도 못했던 말에 멍하니 바깥양...아니 아내르...아니...수달이를 바라보았다. 멀리 테라스 바깥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아...니고 수달이는 말했다.
"내가 어딜 봐서 바깥양반이야 이제. 이제 바깥 안해. 그러니까 바깥양반이라고 부르지마."
"어엉..."
지난해 꽤 긴 사건을 겪고 바깥ㅇ...아니 수달이의 성품이 많이 변했다. 바깥활동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가정에 충실하고 계시다. 나는 본래의 아내의 성품을 존중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 바깥양반이라고 부르고 또 그렇게 대했다. 무엇이 올바르고 옳은 것이든 간에,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야지, 어려운 일을 잠시 겪었다고 해 본래 하던 것을 쑥 하고 없앨 수 있나. 나는 놀기 좋아하고 펑펑 지르는 것도 잘하는 아내의 원래의 성품을 존중해 왔고 그 대신 나의 뜻한 바 역시 존중받아왔다.
그런데 확고하게 수달이는 마음을 굳힌듯 했다.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은 버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정에, 그리고 나와 보내는데 쓰겠다고. 실제로 몇달째 그리 사는 중이다. 나도 술 약속 등이 거의 줄고 꼭 필요한 업무 외엔 거의 칼퇴해서 집에서 머무르는 편이다. 물론 이쪽이 명백하게 흔한 부부생활이긴 하다.
"아 애매한데. 브런치엔 어떻게 하지. 내 부부에세이의 정체성이 바뀌는구나."
"몰라. 알아서 해."
"아...일단 수달이라고 써야지."
"응."
나는 농담을 해서 분위기를 좀 가볍게 했다. 완전히 자의로 이루어진 것은 아닌 아내의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완전히 정리가 되지 않아 여전히 머리와 마음은 무겁다.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처녀 시절의 습속을 버리지 못해 반쯤은 비꼬는 의미로 붙여준 별명인데 그것을 버리고 평범한 아내처럼 살려는 모습에 느끼는 안타까움이라니. 그러나 이 사람이 나에게 무엇을 해주느냐만큼이나, 이 사람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인가가 나에겐 중요한 문제다. 부부라는 지위 혹은 입장에 따라 본래의 성격이 바뀌는 것에도 분명한 한계선은 필요하다. 그것이 나와 수달이가 3년간 안달복달 서로를 할퀴고 괴롭혀 오며 정리된 선이었다. 수백마디의 말보다 하나의 사건이 사람을 바꿨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그 일을 실제로 옆에서 바라본 나는 그 결과에 대해선 여러가지로 복잡한 심경.
그렇게, 여수에서의, 육지에서의 마지막 노을을 바라보았다. 여수에서 가장 젊은 관광객이 찾는 중앙동 벽화거리는 오션뷰를 차지하기 위한 카페들의 경쟁으로 더 더 높은 곳으로 카페가 올라가고 있었다. 마치 바벨탑 같구만. 우린 아침에 화끈하게 운동을 해뒀기 때문에 꼭대기 카페까지 걸어올라갔다가, 다시 걸어내려와 점심을 먹고는 다시 꼭대기의 다른 카페까지 걸어올라가서 하루를 보냈다. 꼭대기의 한 카페의 여사장님은 20년 경력의 한국화 작가시다. 훤칠한 인테리어의 카페에 어울리지 않게도 곳곳에 한국화가 배치되어 있었다.
자정 무렵 여수 엑스포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해 차를 먼저 선적했다. 1등객실 두사람에 차량까지 선적한 가격이 25만여원이니 비행기와 하루 숙박을 모두 해결하는 가격치고는 꽤나 쏠쏠하다. 배 역시 객실이 단 두 층에 불과한 작은 배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깔끔하고 내부가 청결했다. 다만, 방이 너무 덥게 달구어져 있어서 조금 걱정은 되었다. 우리는 배를 한바퀴 구경한 다음 매점에서 과자와 맥주를 사 마지막 여수밤바다를 즐기는 짧은 여유를 보냈다. 여섯시간 남짓이면 제주도에 도착한다. 맥주도 마셨겠다 나는 양치도 잊어버리고 벌렁 2층 침대에 올라가 누워버렸다.
5일간의 육지여행은 날씨가 흐렸던 3일째를 뺴고 하루하루 분주하고 저마다 길었다. 다행히 과욕을 부린 광주에서의 첫날밤 딱 하루 과식을 하고 나서 알뜰살뜰 절제하며 먹은 편이다. 하루에 만보씩은 꼬박 걸었고 일출과 노을을 거의 챙겨보았다. 안전하게 여수까지 와서 마침내 배를 탔으니, 괜찮은 시작의 마무리다. 게다가 수달이의 충격선언까지 있었구나. 생각을 정리하며 나는 잠에 들기 시작했다. 우선 내일은 제주도에 도착해서 해장국부터-
"으으으 배 움직인다! 움직여!"
...아 좀 자라 한시 넘었는데 시끄럽게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