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오일 : 화창한, 집 가는 길

나와 수달이의 반달살이

by 공존

나는 초등학교 때 3,4,5학년에 세번을, 수달이 역시 초등학교 때 3,4,5학년에 세번을 전학과 이사를 다녔다. 동네를 떠나는 일을 어린 시절에 여러번 경험을 하면, 짧은 기간이라고 해도 금새 그곳에 정을 붙이고, 떠남을 아쉬워하게 되는 걸까. 아침에 조용히 밥을 차려먹으며 괜스리 창문 밖 파란 하늘, 그 아래 돌담을 또 몇번이고 쓸어다 봤다. 날씨는 왜 이렇게 또 좋담. 아침에 성산 일출봉에 가서 해맞이를 하고 떠날까 하다가 완도에서 집까지 여섯시간이나 운전을 해야할 처지라 알람을 맞추지 않고 잔 것이 후회가 조금 되었다. 떠나기 전 하루는 미세먼지, 하루는 강풍으로 외출을 뜯어말리더니, 하필 떠나는 날 이렇게 또 완벽한 날씨일 줄이야.

배는 4시. 2시에 동문시장에 가기로 하고 11시가 안되어 짐을 챙겨 돌담집을 떠났다. 정처없이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아무 카페나 가자 하고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다가 미뤄뒀던 카페를 발견해서 그곳에 잠시 들렀다. 관광과 머무름 사이의 반달살이가 아니었다면 숙소와도 가까운 이 카페에서 밤마다 책을 읽었어도 좋으련만. 여러모로 우리에게 이번 제주살이는 처음의 시행착오가 많았다. 숙소를 고르는 것, 식단을 짜는 것, 한달살이 일정을 짜는 것. 그리고 이곳 저곳을 들르지 않아도 하루 종일 지루해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사실 제주도에 온 둘째날에 들렀던 성미미술관도 숙소에서 아주 가깝다. 일주일에 한번씩 날 거기에 넣어주면 하루 알뜰 살뜰하게 보내고 올 텐데, 아직은 수달이에게는 혼자놀기 연습이 필요하다. 필사라든지, 독서계획을 짜고 온다든지, 글을 세밀하게 쓴다든지, 뜨개질을 해본다던지 하는.


카페를 나와서 차를 타는데 고양이가 졸린 눈으로 나를 본다. 예쁜 길고양이도 많았지만, 시커머죽죽하게 먼지를 뒤집어쓴 비루한 외양의 길고양이도 많았다. 더러는 꼬리도 짧고 비쩍 말라있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수달이는 내게 왜 이렇게 고양이가 많냐 물었고, 나는 길고양이에 대한 요즈음의 사람들의 태도를 말해주었다.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캣맘이라는 문화에 대해 아직은 그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사회적 합의가 내려지지 않았다. 덕분에 쓰레기봉지를 뒤지는 일은 일단 없어졌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길고양이 보살핌 문화는 어쨌든 좋은 일. 그러나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이해 못할 일. 평균적으로 2년을 채 살아내지 못하는 길고양이가 단 한번의 겨울만 견뎌내더라도 개체수는 획기적으로 증가한다. 수달이는 언제쯤 고양이를 좀 편하게 대할 수 있을까 하며, 스르르 담장 너머로 몸을 숨기는 고양이의 짧은 꼬랑지를 바라본다.

한참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꺾어서 시골 카페로 들어갔다. 마지막 제주도 카페다. 카페를 나올 때쯤에 강산에 씨를 똑 닮은 사람을 봤는데 감히 말을 붙이지 못했다. 궁금한데, 똑 닮았는데, 휘리릭 2층으로 올라가버린다.


별의 별 카페가 계속 생긴다. 제주살이의 낭만이 치열한 현실임을 인지하게 한다. 어지간한 카페들은 모두 인스타그램으로 열심히 홍보를 한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카페를 고르는 사람들은 커피보다는 "뷰"를 즐긴다. "뷰"는 지극히 경제의 문제로 수렴된다. 돈이 돈을 버는 현상에 모두가 동참하며, 그들의 미적 감각과 자존감, 그리고 동질감을 형성해나간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비판의식을 발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인스타그램은, 글쎄 페이스북의 쇠락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을까? 나는 카페에서 클럽하우스에 대한 글을 읽고 계정을 만들었다. 두어시간 쯤 뒤에 계정 개설 알림이 떴다.

동문시장에서 다시 사랑분식으로 마지막 제주도 맛도락을 즐기고, 우리집과 어른들에게 드릴 귤을 약간 사서 그곳을 떠났다. 제주항으로 막 들어서려는데 수달이가 아쉽다며 잠깐만 한바퀴 돌자고 한다. 그렇게 막 시간이 남아있진 않다. 바로 옆 탑동광장에 차를 세우고 슬쩍 한바퀴 돌았다. 그러나, 이 투명한 하늘, 이 시원한 바람, 이 고요한 바다. 지난 이틀간의 아쉬움이 넉넉히 덜어내진다. 또 오면 되지 뭐. 다음 겨울 방학 때는 일정을 첨예하게 짜서 최대한 한달살이의 기간을 살리기로 했다. 올해는 긴 한 해가 될 것이므로. 1년 뒤의 우리는 이번 겨울과 봄의 우리를 거울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성장했을까? 나아졌을까? 마흔이 되어도 말이다.

제주와 완도를 오가는 쾌속선은 한시간반만에 쏜살같이 바다를 건넜다. 출항 불과 30분만에 남해의 다도해가 수평선 너머에 떠오르더니, 시시각각 추자도며 보길도 청산도, 이름난 섬들이며 명사십리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자리를 잘 잡았다. 잠깐 잠에 들어 체력을 보충한 뒤엔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바라본다. 완도에는 언제 또 와볼 수 있을까. 그땐 또 꼼짝없이 대여섯시간을 운전을 하고 내려와야 할 텐데. 운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길의 끝에서 만나는 풍광에는 언제나 마음을 빼앗긴다. 그것이 흐린 날이든 맑은 날이든, 모든 날들에 저마다의 표정이 묻어있으니까 말이다.


날씨가 워낙 좋아 노을이 아름답게 질 것을 예상하며 주의깊게 백미러로 하늘을 관찰하며 차를 달렸다. 아차차. 뱃머리에 차가 실려서 온 터라 바닷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가뜩이나 먼 길 달려야할 처지인데 세차부터. 수달이는 자정 전에 도착할 수 있겠냐며 눈치를 준다. 바로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는데 빨리 가달라니, 아니 운전하는 사람이 우선 아닌가. 나는 그런 눈치코치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완도대교를 건너기 직전에 교차로에서 차를 옆길로 빼 노을 보기 좋은 자리를 찾아냈다. 진짜 안녕, 우리의 반달살이 안녕. 이제 무작정 여섯시간, 집까지 달리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런데 안녕까지 한 뒤에 올라온 길에 생긴 충격사건.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지 하고 여행 첫날에 먹은 나주곰탕집에 다시 들렀다. 첫날 저녁도 곰탕, 마지막날 저녁도 곰탕인 아리따운 수미상관에, 여행에 지친 위장을 푹 쉬게 해주기엔 안성맞춤인 메뉴이기도 하다. 마침 딱 나주를 찍고 집으로 올라가면 30분 정도만 운행시간이 추가된다. 딱 좋은 선택인데,


"밥도 더줄까?"

"네에? 아 아뇨 국물만 더주세요. 괜찮아요."


곰탕을 먼저 뚝딱 비우고 국물만 조금 더 달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서빙하시는 할머님께서 밥도 더 줄까 물으신다. 손을 휘저으며 나는 국물만 더 달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휘리릭 달려가서 국물을 떠오시더니 할머니께서 다시 묻는다.


"고기도 더줘? 잘 먹게 생겼어."

"네에? 아 고기는...네 주세요 감사합니다."


세상마상 잘 먹게 생긴 내 덩치야. 할머니께서 이번엔 처음 딸려나온 소껍데기살보다 두배는 많이 담아서 가져오신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사하다고 고개를 숙였는데, 국물도 한그릇 가득, 고기도 한그릇 가득 내오신 할머니께서 또 말씀을 하신다.


"밥도 더 먹어 잘먹게 생겼어."

"네? 아아...네 그러면..."


맛집이란 이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곰탕을 너무 호로록 빨아잡숴서 그런 것일까. 떡을 드시며 가까운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쉬시며 우릴 바라보시던 할머니께서, 국물과 고기에 이어서 밥도 한공기 새것을 가져다주셨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잘먹게 생겼어."라는 확인사격까지.

덕분에, 수달이가 배부르다며 내 그릇으로 반납한 고기까지, 완전히 새 곰탕이 하나 생겼다. 이...이야...오길 잘했다...우...우와...내일부터 다이어트하기로 했는데...와 나주라...김치도 짱 맛있고...나주곰탕 육수가 정말...최고구나...


곰탕...을 두그릇이나 연신 잘 먹고 온 덕분에...나는 정말로 열심히 운전을 해서, 처음 네비게이션에 찍힌 시간보다 상당히 앞당겨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출근 때문에 날 재촉하던 수달이는 드라마를 틀더니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한시쯤에 잠에 들었고, 나도 쓰러질 것 같은 피로를 느끼면서도, 학교 업무를 뒤늦게 하느라 두시에나 잠에 들었다. 돌아온 집에서 다시 삶은 이어지고, 내일은 내일의 내 연말정산과 아버지의 연말정산이 남아있었다. 보일러는 우리가 침대에 들고 나서야 천천히 따끈해지고 있었다.


아. 두번째 곰탕도 밥 반공기와 함께 뚝딱했다. 밥 잘 먹게 생긴 건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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