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아무리 생각해도 바깥양반인 건 팩트지 않니?"
"뭐가?"
"지금 내가 다시 차를 몰고 익산에서 올라가고 있잖아."
"아냐 예전보다 훨씬 자제하고 있잖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다르지."
월요일 밤. 나는 다시 익산에서 차를 몰고 집으로 출발했다. 네비게이션에 찍힌 주행시간은 세시간. 집에 도착하면 아홉시 반쯤 된다. 방금 순대국을 먹어서 배는 든든하고, 어제 그리고 오늘 아침 두번이나 반신욕도 한데다, 저녁을 먹기 전 들른 카페의 안락쿠션에서 눈도 붙여 몸은 가볍다.
왜 나는 익산인 것이냐. 우리 훌륭하신 수달이께서는, 명절 마지막날인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하룻밤을 무려 전라도의 완주에서 보내기로 하고 사전 예약, 사후 통보를 내게 하셨다. 그리하여 명절 연휴 3일간을 푸욱 쉬고 일요일 아침에 다시 의정부에서 전라도까지. 상당~히 먼 길을 운전해 온 것이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은.
"원래 네가 그렇게 주말 내내 놀고, 평일에도 매일 싸돌아다닌 건 그냥 제정신이 좀 아닌 거고."
"음..."
"그건 결혼생활의 문제와는 별개로 너의 건강관리가 완전히 안되는 문제였잖니? 실제로 일도 터졌고."
"응 근데 나 이제 평일엔 쉴거야 주말에만 놀고."
"아니 내 말을 들어보라니까."
각자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고 살기로 한 우리에게 수달이가 집에 붙어있든 말든, 그것은 그리 내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었다. 나도 일주일에 세번은 꼬박 야근을 하고 살았고, 지금도 여전히, 야근은 줄었지만 집에서 빨리 할 일만 해치우고 나면 다시 내 할일에 바쁘다. 몸이 집 안에 있든 밖에 있든 각자 바쁘다. 다만 수달이는, 허약체질인 주제에 워낙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고 그러다가 기어코 건강을 그르쳤다. 한동안 병원을 오가다가 몸을 일으키고 다시 열심히 놀러다니기까지 4~5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그렇게 한번 몸이 고장나서 조금 회복된 이후로도, 나는 딱히 수달이가 놀러다니는 것을 크게 간섭을 하고 있진 않았다. 하고픈 건 하고 살아야 탈이 안나지. 다만 사건은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구석에서 튀어나왔고, 작년 여름 이후 수달이는 외출을 확 줄이고 내내 집순이로 살았다. 12월이 되어서야 다시 몸을 일으켜 그동안 움츠리던 마음의 짐을 털어내고 부지런히 다시 놀러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제주도에 오기 전, 나름 생각을 정리하곤 "탈 바깥양반" 선언을 한 것이다. 예전의 자기 모습과 같지 않으니, 이젠 자길 바깥양반이라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그러나,
"나는 밖이든 안이든 상관없어. 놀러다니는 것도 좋지. 근데 집에 있는 것도 좋아. 넌? 넌 바깥이 훨씬 좋잖아."
"집에 있으면 자꾸 우울하지. 밖에 나오려고 하는 거고."
"어어어 씨 망했다. 아 길을..."
이때쯤 나는 바깥양반과의 대화에 집중을 하다가 교차로에서 빠져나갈 타이밍을 놓쳤다. 다행히 바로 앞에 다른 출구가 있어서 우회전을 할 수 있었다.
"봐봐. 너는 바깥이 훨씬 좋은 사람이지. 평일에 집에서 쉰다고 너의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지. 바깥양반이 아닌건 아니잖아?"
"음..."
"자 보세요 선생님. 여기가 어디죠? 지난주에 나 분명히 여기 지났는데? 완도에서부터."
그것은 사실이었다. 부운명히. 내애가. 완도에서. 여섯시간을. 운전해서. 올라오며. 지나친. 익산분기점이. 이내. 나타났고. 나는. 다시. 빡침이 차오르며. 바깥양반에게. 다시 말했다.
"야...여길 내가 일주일만에 또 오네? 야 고맙다. 고맙다 수달이."
"어허허허허허허."
"그치 보통은? 보통은 제주도 때문에 5000km를 탔는데? 또 남편에게 완도를 가자곤 않겠지?"
"어허허허허 대전 안갔잖아허허허허허허."
"아 그거야 코로나 때문이고."
물론 일상의 생활에서야 바깥양반이라고 부르는 일은 없다. 일반적인 호칭은 수달이다. 실제로 얼굴이 수달상이기 때문이다. 고양이상 얼굴을 보고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고양이를 떠올리게 되듯, 수달이를 보면 직관적으로 누구나 수달을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상생활의 이야기고, 일상의 기록물로서 나와 수달의 객관적인 관계형성의 맥락에서, 외적으로 수달상이냐 곰상이냐 하는 문제보단, 인격적인 측면, 역할배분의 문제에서 주부의 역할을 떠안은 나와 바깥생활을 주도하는 수달이와의 관계규정은 무척 중요한 문제다. 그리고 분명히, 이번 완주 1박 여행을 통해 나는, 또다시 수달이에게 내재된 바깥양반이라는 속성의 불가피성을 재인식하고 있다. 수달이가 수달이일 수는 있으되, 바깥양반의 성격과 특성이 부정될 수는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오늘 날씨 좋을때까지 기다렸어 안기다렸어?"
"기다렸어."
"그거때문에 내가 지금 야간 운전 해 안해?"
"해."
"그래. 이제 받아들이자. 수달은 수달이고 바깥양반은 바깥양반이니까."
"그래."
"당장 원래대로 돌아가거나 하란 건 아냐. 천천히 해. 아니 원래대로 돌아갈 필요도 없지만."
"응."
그렇게. 긴 여행을 마치고 다시 며칠 뒤. 수달이는, 본래의 바깥양반의 본성을 부정하지 않고 다시 받아들였다. 나는 긴 대화를 마치고 운전에 집중했다. 5월엔 영월 북스테이에 간다. 그리고 4월엔 하동의 최참판댁 옆 한옥스테이를 잡아두셨다. 아니 이러고도 바깥양반이 아니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