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주부인 나와 바깥양반의 일상 겨울 특별편
- 예약 완료. 1.21~2.5일. 보증금까지 65 입금했어.
- 전액 다 냈다고?
- 응 그러래.
- 응 그럼 그 뒤엔 상황 보고 결정하자.
- 응 광주랑 남해는 다 결정했어?
- 아직 광주 남았어.
- 아쉽구만 2월 10일에 출근만 아니면ㅋㅋ
- 그러게ㅠㅠ
긴 한해였다. 나에게도 바깥양반에게도, 남은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꿀, 그리고 오늘 하루 하루를 이미 완전히 바꾸어낸 일들이 벌어진. 코로나로 온 국민이 맞아야 했던 변화는 문제조차 되지 않을만큼, 그런데, 그런 일이 코로나 격변과 함께 닥쳤기에 더욱 힘들고 어려웠던. 겨울방학은 그래서 우리에겐 오랜 갈망과도 같았다. 9월, 10월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가장 힘든 고비를 넘기며 우린 바람이 차가워질 날만을 말 그대로 손가락으로 한주 한주를 꼽으며 버텨냈다. 엄살 같다고 누군가에겐 들릴 그런 이야기.
- 좀 더 일찍 출발할까? 나 1월 14일 근무니까 15일에 바로 출발해도 되고.
- 너무 빨리 출발하진 말자. 오빠 장거리 운전해야하니까 15일 하루는 푹 쉬어. 16일에 출발해.
- 응.
그러나 제주도에서 한달살이를, 그것도 겨울에 시작하는 것이 처음이라 우리 모두에게 여러가지 고민거리들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숙소가 문제였다. 바깥양반은 까다롭게도 여러가지 숙소를 따지고 고민하더니, 오션뷰 숙소 사진을 몇가지 보고는 그 뒤로는 오션뷰가 아닌 숙소를 거의 배제하는 모양새였다. 오션뷰 숙소에서 한달살이야, 당연히 좋지. 그런데 예산이 문제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은 1월 16일부터 2월 9일까지의 25일간인데 일단 한달에서 조금 모자라다. 명절 전에는 그래도 올라가야 하고, 게다가 2월 10일은 바깥양반의 근무일이다. 경쟁이 치열한 오션뷰 숙소들은 25일이어도 한달 제값을 당연히 받으려 했다. 그런데 그 가격도 가볍게 200만원을 찍었다.
일주일 가까이 여러 숙소를 둘러보다가 간신히 하루에 3만원 내외의 금액의 오션뷰 숙소를 골랐다. 그러나 이번엔 기간이 문제다. 1월 21일부터 2월 3일까지, 2주만의 기간이 가능했다.(여기선 위와 다르게 2월 3일이라고 표기되어있다. 나중에 사건이 터진다.) 가격과 주거조건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일정이 안맞으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진작에 숙소를 골라놓을걸. 그러나 숙소를 알아보던 12월 중순까지도 우리의 생활은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겨우 상황이 나아져 제주도 한달살이를 시도해볼 수 있게 된 참이다.
한 두 군데 숙소를 더 고르다가 마침내는 오션뷰에 대한 미련으로 대정의 숙소에서 2주간 묵기로 했다. 1월 21일까지 약 일주일, 그리고 2월 5일(다시 여기선 2월 5일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나중에 사건이 터진다.) 이후의 몇일간 숙소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우린 다시 각자의 업무에 한동안 집중했다.
한달살이는 떠나기 위한 준비보다도, 떠나기 전의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 연말의 나는 생활기록부 담당자로서 그야말로 막중한 업무강도를 소화하고 있었다. 연말인 12월 31일까지 생기부 마감, 그리고 종업식인 1월 13일까지 모든 생기부 업무가 종료되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말고사의 채첨이 남아있었다. 완벽한 휴식을 위해 완벽하게 일을 해둬야 한다. 강박적 생각마저 끌어안고 분주히 일을 했다. 물론, 그마저 부족해 나는 나중에 중간에 한번 학교에 출근하는 소동을 겪는다.
- 양말 속옷은 여섯개씩이면 되나?
- 세탁기 있대. 여섯개면 되고...너 외투 너무 챙기지마.
- 아 왜. 뒷좌석 손잡이에 걸면 되지. 오빠 책이나 좀 볼래?
- 야야 건들지마.
그 와중에,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이 영상으로 대체되었다. 교부무장은 그 영상 제작을 내게 맡겼다. 이런. 생기부 업무를 대강 수습하고 졸업식 영상을 만들기 위해 삼각대에 캠코더를 붙여 학교를 누비다가 방학 전 마지막 주말을 영상제작으로 지새웠다. 덕분에,, 그 일을 마무리하고 나서야 여수에서 제주로 가는 배를 예약했다. 다행히도 배는 넉넉히 자리가 있다. 여름이라면 달랐을 테고,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더욱 달랐을게다. 뭐 배가 없으면 하루 늦게 가는 거고.
그래도 생기부며 영상졸업식까지 무사히 마감하고 하루 전날 분주히 짐을 꾸렸다. 그 사이 바깥양반은 꼼꼼하게 광주, 남해, 여수의 숙박과 대강의 일정을 짜는 일을 마무리했다. 큰 밑그림은 내가 세세한 일정은 바깥양반이 짜는 배분으로 그래도 이런 일에 손발이 맞다. 짐을 싸는 김에 밀린 쓰레기를 모조리 분리수거하고, 땀을 씻고 나오니 바깥양반이 캐리어에 내 짐까지 대강 챙겨둔 뒤였다. 캐리어엔 한달살이를 위한 칼라링북이며 타블렛까지 수북히 담겨있다.
- 야야. 칼라링 할 거면 이거 챙겨야지.
나는 캐리어를 슥 보다가 빠트린 것을 발견하고, 연필깎이를 가져와 봉투에 담아, 그를 다시 캐리어에 담았다. 연필깎이 없이 어떻게 칼라링을 하시려구.
- 더 빠진 건 없겠지?
- 어차피 다이소는 한번 가야지. 그리고 장도 보고 해야지.
- 음 그래.
준비가 모두 끝났다. 제주도에 가서 원격으로 하게 될 업무는 조금 남아있을 테지만, 우린 떠나기 위한 준비에 이어 떠나기 전 마무리까지 깔끔히, 집안의 음식물쓰레기까지 완전히 치워두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냉장고에 쌓여있는 빵들까지 챙겨가기로 마음먹었다.
따듯한 이불의 온기 속에서 나는 이내 잠에 빠졌고, 토요일인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에 맞춰 정확히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시작은 반달살이로, 처음 떠나는 제주도 겨울살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