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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04. 2021

수제비의 50가지 그림자

모두에게 수제비와 이야기가

"2천원입니다."


 어렵쇼. 진짜 싸네. 나는 달랑달랑 밀가루 봉다리를 들고 걸어나오며 생각했다. 밀가루를 오랜만에 사니 가격도 까먹었다. 나름 고급 밀가루인데도 2천원 밖에 하지 않으니. 옛날에 분식 장려가 헛일이 아니었구나 싶다. 이 밀가루라면 부침개도 할 일이고 수제비도 할 일이고 빵도 만들 일인데 말이다. 


 바깥양반이 수제비가 먹고 싶다고 대뜸 말을 꺼냈고, 나는 냉장고를 뒤져본 결과 한창 스콘을 만들 때 사둔 박력분과 튀김가루, 부침가루 밖에 없음을 알았다. 부침가루 정도면 어떻게 써먹어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드는 수제비니. 대강 옷을 입고 집 앞에 나와서 밀가루를 사서 들어간다.

"한 30분 걸릴거야. 기다려."

"응."


 주말 내내 거실에 누워서 TV를 보는 경이로운 생활습관의 바깥양반을 뒤로 하고 포트에 물을 끓여 볼에 붓고 밀가루를 적당~히 부었다. 익반죽이 맞겠지?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양 손에 위생장갑을 끼고 치대다가 대강 뭉쳐지는 정도를 추량해서 이제 양 손으로 마구 쥐어뜯기 시작한다. 빨리 빨리 뭉쳐서 쫀득한 맛이 나라 이거야. 한참을 서서 반죽을 쥐어 뜯다가 거실로 들고가 바깥양반의 이름을 부르며 반죽을 마구 쥐어뜯는 퍼포먼스까지 하다가, 마침내 충분히 반죽이 되었음을 알고 주방으로 돌아왔다. 반죽이 숙성될 동안 육수를 내기 위해 냄비에 물을 담았다. 큰 국물멸치에 육수 팩. 멸치가 비린 내음이 없다. 


 그래 다시 자리로 돌아와 반죽이 숙성되길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노라니, 어떤 숙성된 반죽이 머릿속을 스친다. 25년도 더 된, 어린 시절의 기억.


"엄마."

"어, 왜 왔어?"

"누나가 나가래."


 왼팔에 깁스를 한 나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부모님의 서점에 들어갔다. 열 두살의 나는, 집에서 누나와 한바탕 싸움을 하고 토라져서 그만 집을 나와버린 것이다. 걸어서 10분 남짓의 거리에 있던, 내가 어린시절 태반을 보낸 우리 서점에서 엄마는 한켠에 버너를 놓고 냄비에 멸치국물을 끓이고 있었다. 아빠는 땀을 흘리며 책을 이리 저리 옮기고 있었다. 


"지금 가게에 오면 어떻게 해 엄마 아빠 정신 없는데. 에구."


 그렇게 말하며 엄마는 냉장고에서 랩에 쌓여있던 밀가루를 꺼내왔다. 보나마나 정신없이 점심시간을 보내고 나서 늦은 점심을 오후 서너시 무렵에 드시는 참일 게다. 거기에 철부지인 내가 가게에 툭 튀어들어왔고, 엄마는 난처한 기색을 하면서도 서둘러 밀가루를 펴 수제비를 떠냈다. 그 말에 나는 그만 속이 팍 상해 무어라 투덜투덜 투정을 부리며 가게 소파에 풀썩 앉았다. 급하게 수제비를 끓여 끼니를 떼우려던 엄마는 내가 울먹이기 시작하자 당황하며 낯빛을 바꾸고 부드럽게 말을 하셨다.


"아이고 내가 잘못했네. 이거 같이 먹고 여기서 있다가 가 아들."


 부모님의 서점은 그로부터 한달도 안되어 폐업을 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엄마는 한창 집도 팔고 가게도 넘어가고 하는데 내가 팔까지 부러지자 너무 무서웠다고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지칠대로 지친 엄마와 아버지의 공간인 서점 한켠에서 끓여드시려던 수제비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말을 걸어본 적은 없지만 수제비를 생각하면 늘 그 장면이 떠오른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이고, 그때의 엄마보단 내가 더 솜씨있게 수제비를 찢어서 띄우고 있지 않을까. 나는 30분이 지나, 감자도 푸욱 익어갈 때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밀가루 반죽을 풀었다. 충분히 숙성이 되어서 무슨 녹말덩어린지 뭐시긴지가 생겨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더 바깥양반을 기다리게 할 수도 없고, 대강 만져보니 쫀득쫀득한 것이 기대감이 생겨난다. 간장종지에 물을 담아, 양 손에 물을 바르고 천천히 수제비를 띄우기 시작한다. 최대한 얇게, 최대한 얇게. 마치 먹어본 적은 없지만 복어회가 접시 문양이 비치듯이. 


 대학교 3학년 때 농활을 가 수제비를 끓인 기억이 있다. 긴 장마가 우릴 마을회관에 가두던 어느 날이었다. 계획에도 없던 수제비를 하자고 말을 꺼내, 나는 한솥 가득 멸치육수를 우려내고 거기에 고추장을 풀었다. 해 본 적은 없지만 얼큰 수제비. 후배들이 그 냄새를 보고 잔뜩 기대하는 얼굴을 했다. 날씨도 우중충하고 하루 종일 마을회관에서 핸드폰도 쓰고 있지 못해 심심한데 이런 재미라도 있으니 얼마나 좋아.


 그런데 후배 정서가 사고를 터트렸다. 신입생인 남자아이였는데, 내가 반죽을 하는 것을 옆에서 거들더니 자기가 수제비를 띄우겠다는 것이다. 나는 선선히 그러라고 말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하게, 스무살 정서는 그만, 수제비를 떡처럼 떼어내 푹푹 냄비에 던져넣었다. 


 그걸 보는 나는 낭패감에 휩쌓였지만 제가 하겠다고 나선 후배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순식간에 6인분 가량의 수제비가 만들어졌다. 깻잎과 고추, 파 등을 썰어 국물을 잡고서, 나는 떡진 수제비를 보고 잔뜩 불안감에 몸을 떨면서도 정서를 거실로 돌려보내 상을 차리라 했다. 어쩌지. 수제비가 아니라 떡반죽을 먹게 생겼다. 어쩌지. 


 수제비는 원래부터 다 함께 먹는 음식이다. 손쉬운 요리이지만 혼자 먹을 일은 없다. 그래서 반드시 여럿이서 먹게 되고, 반드시 역할은 분담된다. 지금 아이 둘을 두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인 여자사람친구는 어린 시절, 자기네 가족은 수제비를 먹을 때 아버지가 수제비를 띄운다며, 얇게 피는 게 기술이라는 말을 했다. 


 바로 그게 정답이지. 수제비를 띄우는 일이 대단한 요령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얇게 펴는 일은 요령만 알려주면 열살박이도 한다. 남편이 국물을 냈으면 아내가 수제비를 띄우면 되고, 엄마가 국물을 냈고 아빠가 반죽을 했다면, 아이가 수제비를 띄워도 된다. 누군가의 반죽, 누군가의 국물, 누군가의 수제비. 한 사람이 모두 다 해치우게 되는 김밥과는 다른 색깔의, 어쩌면 가장 가족다운 가족의 음식. 


 그런데 그날 나의 얼큰한육수는 그만, 정서의 그 떡반죽으로 인해 완전히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끝났다. 후배와 동기는 장맛날의 하늘처럼 우울한 얼굴로 뜨끈한 국물을 마시며, 국물은 맛있는데...국물은 맛있는데...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렇게 나의 오늘의 수제비는 완성이 되었다. 육수가 비리지 않고 담백하니 좋아서, 감자와 수제비 본연의 맛으로 먹자고 엄마의 옛날간장만 두스푼을 넣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짜지 않고 담백한 편안한 국물이 편안하니 좋다. 마늘조차 들어가지 않고, 구색으로 올린 김가루도 필요치 않을만큼. 


 쫄깃쫄깃한 수제비는 잘 숙성이 되었던 것인지, 내가 펴서 띄운 그대로 탱글탱글하게 혓바닥에 감긴다. 바깥양반도 맛있게 그릇을 싹싹 비운다. 나는 내 그릇에 있던 감자를 몇개 옮겨주고서, 그릇을 다 비운 바깥양반에게서 넘겨받아 국물 멸치를 살살 떠먹었다. 비록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긴 했지만,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우리가 가족이고, 수제비가 여전히 가족의 음식이라는 의미이겠지. 


 50명의 사람이 있다면 50명의 수제비, 50명의 수제비에 얽힌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바깥양반이 해달라던 수제비 덕에 나는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며 배부른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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