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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21. 2021

어머! 동백아빠!

동백꽃 필 무렵(7)


"이번에도 아니야."

"응. 천천히 하자."


 바깥양반이 욕실에서 나오며 말했다. 나는 한편으론 가슴 아파하며, 다른 한편으론 안도하며 그 말을 받았다. 두달 전에 처음 아이갖기를 시도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임신은 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인 건 알면서도 막상 실패를 하니 다시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7월의 지리한 장마 속에서 주저주저하며 다시 시도를 했는데 이번에도 꽝이로군. 내게 말도 없이 몰래 화장실에서 임신테스트기를 하고 나온 바깥양반은 풀이 죽어 침실로 돌아간다.


 안도를 한 이유는 그즈음 바깥양반의 건강 상태가 상당히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임신이 되도 문제다. 위로를 하고 싶지만 나는 그 말을 감히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렇게 임신은 고민이 되는 문제였다. 게다가 그 시기의 나는 한창 대학원 시험 준비에 시달려 바깥양반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바깥양반은 건강이 안좋으니 더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 한살을 더 먹으면 아이를 갖기 더 힘들어질 것이고, 몸이 완전히 나아지는 것이 언제일지도 모르는 판국에 마냥 미룰 수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나의 고민, 바깥양반의 절실함과는 무관하게 우우리 눈치없으시인 아버지께서는 종조옹 며느리가 있는 앞에서어어 소식이 없냐아 없냐아를 물으시고오 그나마 눈치가 더 있는 엄마는 애는 꼭 가질 필요 없다고 콕콕 찍어 말씀을 하곤 하셨다. "얘, 애 없어도 된다." 라며. 등에는 셋째 외손녀를 업고는.


 다행히 바깥양반의 건강은 겨울방학을 지나며 많이 나아졌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잘 먹고 매일 산책하며 조금씩 건강을 찾아갔다. 제주도 반달살이를 할 무렵에는 매일 만보씩 걸을 정도는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만보씩 걸어도 살이 빠지긴 커녕 그날 그날 먹은 칼로리의 절반도 소모하지 못했다는 점이지만. 어쨌든간에. 제주도에서 동백꽃이 필 무렵 아이는 생겼고, 내게 말 한마디 없이 바깥양반은 혼자서 태명을 동백이라고 지었다.  내게 태명에 대해서 상의를 했더라면, 나는 물론, 질풍이(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인상깊게 읽고 "질풍노도" 문학사조를 좋아함)라거나 해달이(바깥양반이 수달이므로)라거나 에일이(에일 맥주 좋아함)라거나 도무지 합의될 길이 없는 내 멋대로의 태명이 나올 것이므로 뭐 할말은 없다. 동백은 나에게도 각별한 추억이 있는 꽃이므로.

 

 그러나 대망의 마지막 테스트 날. 바깥양반은 또 실망하기 싫다며 임신테스트를 차일 피일 미뤘다. 월경일이 이주나 지났는데도 말이다. 나는 몇번이나 재촉을 했지만 바깥양반은 알았다 알았다 미루더니만, 산부인과 예약을 잡고는 혹시 이번에 안생기면 나도 클리닉 받아야 한다며. 아니 내 클리닉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테스터를 해야 하는 게 일반적인 순서가 아닐까나. 그렇게 차일, 피일, 미뤄지고 미뤄져서. 원래 하기로 한 금요일을 지나. 꼭 하기로 한 토요일을 지나. 더는 미루지 말자는 일요일을 또 지나. 정말로 더는 미룰 수가 없는 화요일의 산부인과 예약, 그 전날. 월요일 밤에.


"아니지? 아니지? 안보이지?"

"야 기다려."

"봐 아니잖아."

"임신테스터기 어딨어? 이거 잘 안되네."

 

 배란테스터기로도 된다더니만 잘 안보인다. 그래서 바깥양반이 8월달 이후에 어디다가 파묻어놓은 임신테스터기를 찾아서 다시 해봤다. 내가 화장실을 오가며 쿡 찍어본 뒤 2분을 기다리는 동안 바깥양반은 문 밖에서 쫑알쫑알 부정의 오오라를 뿜어내고 있다. 하긴. 미리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대감과 실망감 둘 다 견뎌내기 어렵겠지.


"야. 봐."

"안볼래 무서워."

"아 보라니까.


 내가 임신테스터기를 들이밀자 바깥양반은 방으로 들어간다. 나는 인내심을 또 발휘해 바깥양반에게 말했다.


"두 줄이라니까. 봐."

"뭐? 진짜? 어머, 동백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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