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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pr 01. 2021

명이의 운명이 쫄면이라니

생각보다 명이는 튼튼해

"김밥 어디서 사올 거야?"


 내 이럴줄 알았다. "어디서"라는 단어를 질문에 포함시켰다는 것은, "어디선가" 파는 것을 먹고 싶다는 얘기겠지. 분명히 내가 퇴근할 때쯤엔 "쫄면이랑 같이 먹게 김밥 사와요."라는 주문이었는데 말이지.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꿈의 김밥 사가?"

"응 그럼 좋고."

"알았다."


 5분이면 집에 가는 길이 20분은 걸리게 생겼다. 점심을 대충 과자로 떼워 배가 고프다. 9년만에 급식을 먹고 있는데 그날 그날 같이 먹는 사람이 있으면 먹고, 없을 땐 간단히 과자로 먹거나 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급식의 탄수화물은 과하다. 내가 안먹으면 내가 안먹는대로 남겨져서 버려질 음식이긴 하다만. 아니 오늘은 또 그 시간이 한창 오랜만에 글을 쓰고 있는 와중이었기도 하고.


 그래서 나는 20분 뒤. 김밥을 손에 들고 후다닥 올라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또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쫄면이다. 지난주에 바깥양반과 가서 세가지 쫄면 밀키트를 사왔다. 그리고 채소도 이것저것 두루두루 냉장고에 차 있다. 상추며 깻잎이며 상하기 전에 빨리 먹어치워야지. 쫄면이 제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냉장고에 명이가 한가득 있다. 장아찌를 만들지 않은 생 명이. 생명이? 생 명이. 

 여느때처럼, 엄마의 명에 따라 집에 가서 고기며 밥에 넣어 지을 콩이며를 받아왔는데, 누나의 친구의 시댁에서 명이 농사를 짓고 있다나. 그것도 집에 있으니 가져가란다. 엄마가 장아찌를 자주 만드시는 편이라 또. 냉장고에...끓여서 붓기만 하면 되는 장아찌 국물들이 두어통 있다. 그러니까 나는 언제고 그냥 통에 명이를 간장과 함께 들이붓기만 하면 고깃집에서 굳이 돈을 받고 리필을 해주는 그 명이나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인데. 귀찮아서라기보단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니 그냥 아직은 내버려두고 있다. 큰 지퍼백 한가득이니 양도 꽤나 많은데 일단은 생으로 먹다가 일요일쯤에라도 해야지. 그 전에. 오늘이 목요일이니 주중에 한두번 생으로 고기와 함께 간단히 차려먹긴 했다. 아항. 이 특유의 질감, 여전하거니와, 생으로 먹으니 그 알싸한 맛이 상큼하긴 하네. 풋것은 풋것이란 말이지. 


 그러나 그건 고기를 쌈싸먹을 때의 이야기인 것이고 오늘은 나는 더는 볼 것도 없이 한 줌 집어서 우당탕 칼질은 한다. 잘 썰어놔야 면발에 고루 섞일 테지. 

 그러는 사이에 물을 끓인 냄비가 팔팔 끓어 일단 칼을 놓고 면발을 헹군다. 쫄면도 밀키트로 파는 세상이라니 참 게으르지 뭐야. 배나 사과를 갈아넣는 것이 아니더라도 대강 손재주를 발휘하면 쫄면 양념장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굳이 밀키트를 살 일이냐며 주저했지만 바깥양반은 턱턱 쫄면 밀키트를 카트에 넣었더랬다. 별 수 없지. 나는 이왕이면 여러가지 쫄면을 먹어보자며 세군데 다른 브랜드의 쫄면을 골랐다. 


 쫄면. 대학교 신입생 때 처음으로 선배에게 밥을 얻어먹었을 때 고른 메뉴다. 굳이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게 아니었어도 알아서 식단관리를 하고 그랬을 나이인데 지금은 내가 수고를 들여 만든 음식이 버려지는 게 아까워 굳이 과식을 하곤 하니.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사는 것인지. 


 뭐 어떻게 살긴. 열심히 살아야지.  

 그래서 쫄면이 다 완성되어간다. 칼질 솜씨가 좀 좋아진 것인지 오이를 채썰 때 꽤 기분좋게 속도를 냈다. 밀키트에 들어있던 콩나물까지 해서 채소만 다섯가지가 들어간 쫄면이니 풍성하기도 하지. 양배추도 있었지만 그것까지 넣었다간 정말로 면을 채소에 버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채소에 면을 묻혀서 먹을 수준인지라 빼버렸다. 그래서 양념장을 죽죽 짜서는.


 밀키트에 들어있는 양념장으론 저 많고 많은 채소를 다 버무리긴 무리일 것 같다. 하우스 레시피다. 초고추장을 약간 섞고, 쥬스를 두 스푼 정도 쫄쫄 따랐다. 양념장에 쥬스를 먹는 방법도 이번에 쫄면을 사기 전에, 바깥양반의 "쟁반막국수 먹고 싶어요."라는 주문에 응해서 떠올린 방법이다. 쟁반막국수면 비빔국수나 쫄면보단 국물이 넉넉해야지. 그래서 초고추장에 쥬스에 간장과 설탕, 그리고 쥬스를 버무려서 대강 양념장을 만들어냈었다. 오늘도. 이렇게 쥬스 약간으로 쫄면에 싱그러움을 더한다. 


 그리고 접시에 각각 쫄면을 담아내고는 김밥을 펼치면 끝. 떡볶이를 만들 때 넉넉하게 삶아둔 삶은 계란까지해서 후다닥, 후룩후룩 저녁을 해치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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