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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an 16. 2021

투게더 사랑

7천원이면 생각해보니 비싼 것도 아니야.

"7000원입니다."

"히엑."


 투게더가 많이 비싸졌구나. 나는 생각하며 카드를 내밀었다. 방학 셋째날 아침이고 시간은 일곱시 반. 아침에 일찍 눈을 뜬 바깥양반에게 오늘의 메뉴를 만들어주기 위해 잠바 하나 달랑 걸치고 나온 참이다. 통 아이스크림을 사려면 이 시간에 문을 여는 건 편의점 정도다. 슬쩍 저 앞에 마트가 열었나 둘러본 뒤에 발걸음을 돌려 편의점에 들어갔다. 7천원.


 한 손은 패딩 호주머니에 찌르고, 다른 손으로 홀홀 투게더 통을 들고 오면서 곰곰, 생각해본다. 투게더가 천원이었던 시절이 몇살 때지. 1988년에도 투게더는 천원이었다. 여러가지 물가가 인생되고 있다고 어린 아이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1994년에서 95년 무렵이었다. 그즈음부터 비싼 과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과 동네슈퍼가 아니라, 점점 더 큰 대형슈퍼 중심으로 동네경제가 재편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거꾸로 말하면 지금보다 비교도 못할만큼 물가가 낮을 때도 투게더는 천원이었다.


 어릴 때 투게더는 주로 밤에 먹는 음식이었다. 그 당시에도 짜장면 한그릇보다 비쌌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쉽게 낼 지출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누나와 나는 낮에는 50원짜리 쭈쭈바를 빨고 다니다가 운 좋게 부모님 친지가 집에 방문하시거나 하셔서 천원짜리 하나를 쥐어주면 그것으로 과자를 잔뜩 먹기도 하고, 가끔은 저 투게더, 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어린 시절, 그러나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여전히 깊은 밤인데 투게더 한 통을 끌어안고 엄마, 누나와 셋이서 먹던 그 순간의 기쁨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련하다. 


 역시 투게더가 가정용 대형아이스크림의 절대적 지위에서 내리막길을 탄 것도 95년 정도를 전후했을 때인데, 그때 엑설런트 콘이라거나 쿠앤크라거나, 과자와 마찬가지로 아이스크림도 다양히 출시되기 시작했다. 특히 쿠앤크는 여전히 투게더가 천원이었던 시절, 3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되어 지금 느낌으로는 만원을 훌쩍 넘는 시세였다. 그러나 어느덧 머리가 굵어져버린 누나와 나는 종종 아버지를 졸라서 3천원을 받아내거나, 시장에 굳이 따라가서는 엄마 옷자락을 부여잡고 쿠앤크를 끼워넣곤 했다. 그런 작은 지출이 부모님으로 하여금 허리를 졸라매지 못하도록 했단 것을, 그 당시엔 알지 못하고.


 그래, 그때도 여전히 투게더는 천원이었지. 하고 나는 이 칠천원의 가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집에 와 와플 기계에 전원을 넣었다. 오븐엔, 한 50개 분량을 단돈 18000원에 구입한 크루아상 생지가 적당히 부풀어 오르고 있다.

 당시에 소득이 퍽 넉넉했으나, 그 천원 속에 부모님의 땀과 눈물이 섞여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우리는 밤이면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 들린 투게더를 꿈꾸며 먼저 자리에 들었다. 도매서점은 고된 육체노동이었다. 부모님은 낮에는 차로 책을 돌리고, 밤에는 책을 납품받아 서점 안에 쌓아올렸다. 아버지는 육체노동의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것을 좋아하셨다. 우리는 곤히 잠들어있다가 아버지의 서늘하고 축축한 뽀뽀에 잠에서 깬다. 술냄새 담배냄새가 뒤섞인 지저분한 촉감에 짜증을 내며 잠에서 깨었다가 이내 아버지 손에 들린 투게더에 반색하며 숟가락을 받아들던 우리. 그리고, 


 시간의 반대편에는 아침 댓바람에 투게더를 사오는 내가 있다. 와플 기계가 오랜만에 열일을 할 차례다. 크루아상을 좋아하는 바깥양반이 "요즘 이게 유행이야. 크로플." 이라며 내게 맛을 보여줬다. 한조각 잘라서 입에 넣어보니 반숙한 크루아상을 와플기계에 구운 모양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크루아상 생지를 나는 구매했고, 어젯밤 스티로폼 박스에 꽝꽝 냉각된 생지가 도착했다. 바깥양반이 무슨 택배냐 묻길래 비밀이라고 눙쳤다. 그러나 이내 바깥양반이 택배 배송장을 보고 반색하며 크로플 크로플 노래를 부른다. 나는 박스를 뜯어서 접시에 두개를 꺼내 해동시켰다. 아침 때쯤이면 녹아 부풀어있을 테지.


 그렇게 나는 아침을 기다렸다. 아침에 크루아상은 무척이나 부드럽게 부풀어 있었고, 와플 기계는 집안을 버터로 가득 메웠다. 투게더는 제 몫을 다 했다. 쿠앤크나 호두마루, 체리마루에 비하면 여전히 심심한 맛이지만은, 역시 와플엔 투게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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