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존 Jul 29. 2021

영월은 오늘도 뚠뚠

#Story 02. 한국의 스위스가 있다고 해서 와봤습니다

 영월의 첫날을 보내고 난 아침, 시원한 물소리는 벌레와 더위를 차단하는 통유리에 막혀 들려오지 않았다.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글을 쓰고 있는데, 아침 밭일을 나오신 사장님이 방 앞을 지나가시다가 말 없이 베란다 문을 닫으신다. 다시, 물소리가 끊겼다. 방충망을 뚫고 들어오는 벌레들 때문에 베란다 창은 항상 닫아두라고, 어제 체크인할 때부터 신신당부하신 참이라 이해가 되는 일이다. 나는 글을 마치고, 다시 온몸에 치덕치덕 모기퇴치 미스트를 온몸에 도포하고 밖으로 나갔다.


 좋다. 베란다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영월에 대한 안내서를 한권 죽 훓었다. "떼꾼"의 이야기, 이후 북스테이 인터뷰 등, 영월의 목소리를 담은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서울에서 두시간 반이라는 접근성에 이 고즈넉함이, 영월이 소리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 배경일까. 책을 한권 다 읽고 나서는 바깥양반을 깨우 아침을 먹었다. 임신 초기에 당긴다고 이것저것 사더니, 한번씩 맛보고 입에 안맞다며 까먹어버린 둥지냉면과 다른 비빔면들을 여행에 챙겨왔다.


 우리로서도 슬로우여행이 될 것이었기 때문에, 아침을 몇번은 해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바깥양반은 둥지냉면을 베란다에 앉아 화창한 하늘을 바라보며 훌훌 드셨다. 다만 이것을 만드는데는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는데, 펜션에 국수면을 거르는 체가 있을리가 없지 않나? 라는 아주 기본적인 생각을 내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난리 났다. 비빔면만 예닐곱개를 챙겨왔는데. 다음 숙소에도, 또 그 다음 숙소에도, 체는 없을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짜파게티 물을 버리듯, 찬물을 연신 부어가며 간신히 물을 버린 뒤 면이 충분히 식자 그때서야 젓가락으로 건져냈다.

 자아 아침을 먹고 바깥양반은 다시 취침에 들어가시고, 이제는 오롯이 나의 시간이다. 펜션 앞 물가에 내려와 발을 담궜다. 바야흐로 이게 피서지. 아칙 9시를 조금 넘긴 계곡의 아침, 바람은 서늘하고 햇볕은 따갑지만, 참을만하다. 정오가 되면 이 햇볕이 정수리를 때리겠지. 그러나 지금은 마냥 호젓하고 좋다. 한참 동안 혼자 발을 담그며 멍때리기를 했다.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막상 이 물살을 보니 마냥 머릿속을 비울 수 있게 된다. 게임을 할 때 처럼 시간이 잘 간다.


 덤으로 송사리도 볼 수 있다. 촛불만한 크기의 물고기들이 맑은 물을 유영하며 이끼를 갉아먹고 있었을까. 생각해보니 이 맑은 물, 이 고요한 곳에 나 혼자다. 우리 펜션도 김삿갓면을 조금 더 지나 도로 한켠으로 숨어들듯 콕 박힌 자리다. 주변에 펜션 몇개 외에 집이 잘 없다. 서울에선 나름 가깝고, 그런데 이렇게 아무도 없이 이 공간을 독차지 할 수 있다니. 양평만 가도 차박을 하는 인파로 강은 붐빈다.

 등이 슬슬 따가워지기 시작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제는 알아보지 못했는데, 펜션이 영월이 조성한 산책로를 끼고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영월 곳곳에 걷기좋은길들이 많다고 하니, 또 나중을 기약하게 된다. 지금은 찌는듯한 폭염이다. 게다가 바깥양반은 임신 8개월째다. 그리고 일정은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7일에, 하루에 한군데씩은 숙소를 벗어나 체험일정을 넣어야 한다. 멍때리기는, 안되겠구나.


 그러나 영월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하고 쉬기 좋은 곳이다. "한국의 스위스"라고 불린다는데 정말로 스위스를 방불케하는 퐁경이 곳곳이다. 김삿갓면 중심부가 바로 이런 지형을 마주보고 있다. 스위스가 부럽지 않다. 폰을 들어 사진을 찍으면서도, 사진에 담기지 못할 것임을 아는 이 풍경에 마음을 흠뻑 빼앗긴다. 몸빼바지 같이 입고 모자 하나 걸쳐쓰고 아이스크림 쭉쭉 빨며, 이 풍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것만, 하루종일 바라봐도 좋겠다.

 다시 영월읍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려고 "살롱드림"을 찾았다. 그런데 살롱드림이 자리한 상가거리가 세상 동남아 감성이라 입에 웃음이 번진다. 아 덥긴 너무 더운데, 이렇게 허름한 낡은 건물들이 간판만 앞에 새로 붙이고 있는 모양이 얼마나 다정다감한지. 저 간판 아래 차양만 좀 길쭉하게 삐져나와 그늘을 크게 만들어주고, 그 아래 과일바구니만 몇개 있으면 완성이겠다.


 그런데 살롱드림을 들어가니 예약이 필수인 곳이라, 그런 고려 없이 무작정 찾아든 우리는 대기명부에 이름을 적고 잠시 인근 카페에 가서 대기를 해야했다. 다행히 4,50분여만에 연락이 왔다. 점심을 푸짐하게 맛나게 먹고, 온도감각에서 도자기도 만들고, 그리고 역시 잠깐의 휴식 뒤에 저녁거리를 사서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도자기 공방 수업 뒤에 찾은 곳은 단종의 장릉 바로 옆에 있는 보덕사의 "세심다원"이었다. 장릉도 청령포와 함께 영월의 필수코스라, 보리밥도 먹을겸 언제고 찾아오기로 했다. 그러나 오늘은 숙소에 조금 일찍 들어가보기로 한 참이라, 다원만 우선 들르기로.


 보덕사는 의상법사가 창건한 사찰이라는데 우선, 영월의 지형이 그렇다. 계곡 아래쪽이 메워져 만들어진 평야같은 곳에 민가가 많이 형성되어 있어, 평지가 가파른 산을 뒤로 끼고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보덕사에서도, 평지의 사찰을 거니는데 뒤로는 병풍처럼 산이 풍경을 감싸고, 그 뒤로는 높은 하늘이 티 없이 빛난다.


 작은 사찰을 잠깐 휘돌아보고, 웬일로 약숫물도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어 물맛만 잠깐 보고 다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발 아래 하얀 자갈돌이 예쁘게 길을 만들고 있다.

 세심다원은 보덕사 중문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고, 진입로를 끼고 주차자을 마주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호수에 연꽃이 가득한데, 8월에 만발할 풍경을 상상하니 더 없이 좋았다. 꽃봉오리가 올라온 연꽃이 몇개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다원 안으로 들어가서 에어컨을 겨우 쐬면서도, 꿋꿋하게 뜨거운 연잎차를 시켰다. 마음이 씻겨질까? 잘은 모르겠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온도감각에 대한 글을 마쳤다.


 생각을 해보면, 글을 쓰는 것이 곧 마음을 씻어내는 것과 같다. 내게는 그렇다. 예로 두보와 이백이 중국의 긴 역사에서도 가장 탁월한 시인들로 꼽힌다는데, 두보는 여러날 앓듯이 고민하고 시를 써냈고 이백은 벼슬을 하며 바쁜 와중에 저녁에 술 한잔 걸치고 단숨에 시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두보의 그 통절한 정서와 달리 이백의 총명함이 드러나는듯하지만, 내 생각엔, 이백이 붓을 잡고 빈 종이를 마주보고 있지 않은 때라고 머리에서 시가 떠나고 있을리가 있을까.


 그러니까...글을 씀으로써, 내 마음에 품고 있던 그 글감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되는 것. 그렇게 마음을 씻어내고, 다음 글감을 내 안터에 담는 것. 마음을 씻어낸 뒤엔 뭐든 채워질 터이니.  

 땀을 식히고 아직 해가 중천이지만 우리는 슬슬 다시 길에 오른다. 읍내에서 30분 걸리는 "산골초가" 민박이다. TV 프로그램 삼시세끼에도 방영된 유명 숙소라고 하는데 조금 차를 달리자 이제 굽이굽이 시골길이다. 도로를 벗어나 농로 사이를 달린다. 들어가는 길엔, 곳곳에 나무로 된 표지가 서 있다. 리뷰에서 평이 갈려, 예약을 한 바깥양반이나 나나 걱정이 적지는 않은데 나야 시골집은 익숙하다.


 그런데 또 도착을 하고 보니, 재미난 곳이다.

 이렇게 몇채의 건물 중 위쪽 "하늘채"가 우리가 머물 방이다. 두평 약간 안되는 크기에, 차에서 짐을 들고 들어가기가 고약한 자리다. 그러나 방 안에 에어컨도 잘 돌아가고 돌담엔 양쪽으로 통유리가 풍경을 환히 밝혀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마루를 앞으로 길게 평상까지 이어 빼서, 그곳에 수박을 담그거나, 발을 담그거나 하며 고기를 구워먹을 화로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하긴 또 옛날 한옥의 방이라는 게 이렇게 작기는 하지. 여기서 옛날엔 아이를 낳아 길렀고.


 짐을 모두 옮기자마자 땀이 비오듯, 당장 샤워부터 하고 땀이 완전히 식은 다음 노을이 질 무렵 숙소를 한바퀴 샅샅이 돌았다. 수백평 밭을 끼고 있어 머무는 재미가 있을듯했다. 다만 그게 벌레라면 질색하는 바깥양반으로 인하여, 우리의 것이 아닐뿐.  

 조금 쉬다가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 포장해 온 족발을 평상에 깔았다. 서울에선 사람들이 찾아가며 먹는다는 꽃무늬 상에, 읍내의 마트에서 사온 동강주조 막걸리까지. 밤이 되어가니 산촌의 바람은 솔솔 더위를 잊게 해주고, 민박을 찾은 저마다는 고기를 구우며 냄새를 피운다. 모기는 다행히 많지 않다.


 다만, 오랜만에 돌바닥에서 잠을 자게된 오늘 바깥양반은 적응이 되지 않아 큰 곤욕을 치렀다.


이전 03화 Check-in 영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