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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29. 2021

찾았다 영월 인생노을샷 스팟

#Story 03. 선돌에서 너무 일찍 떠나는 실수 덕에.


"선돌은 노을   진짜 좋아요."


라고 온도감각의 선생님이 알려주셨다. 마침 산골초가와 오가는 길목에 선돌이 있다. 오늘 날씨도 좋고, 도로 옆에 널찍한 주차장까지 모든 것이 갖춰진 곳이라 쉽게 선돌을 만나서  풍광을 느낄  있었다. 덥긴 했지만 바람이 싱싱 불고, 어제에 비해 구름이 낮고 옅게 깔려있어서 완벽한 풍경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좋다. 영월의 아이덴티티 같은 뷰를 보여준다. 노을이 아름다울  오면 더욱 좋겠지? 저녁시간을 기약하고 이내 발길을 떼었다. 잠깐 걸었을 뿐인데도 땀이 비오듯했다.


 그 길로 찾아간 곳은 영월역 바로 앞에 있는 오일장. 우리는 꼭 오일장은 찾아가보곤 한다. 막상 가보면 특별할 것도 없지만, 그리고 오일장이라는 것 자체도 아무리 시골이라도 예전처럼 번성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역의 색을 잘 보여주는 곳이 달리 더 없으니.


 주차를 해을 땐 어? 어디지? 했는데 저 위에 강변도로에 차양과 파라솔이 보인다. 길을 따라 장을 여는구나. 타는 듯한 태양빛을 뚫고 올라갔다. 그러니, 오히려 좋다. 탁 트인 산과 하늘, 그 아래 강물이 흐르는 풍경 위로 오일장이 펼쳐져 있다.

 바깥양반은 여기 가마솥 통닭이 유명하다고 하며 먹을까 조금 고민을 했다고 한다만은, 더워도 너무 덥다. 그리고 그래봐야 통닭이지. 통닭이라면 오일장이 아니어도 먹을 곳은 많겠다. 자리를 옮긴다. 과일은 정말 싸서 사고 싶은데, 이번엔 바깥양반이 말린다. 아! 딱딱복숭아 큼지막한 게 한박스 15000원인데! 차에 싣고 다니면서 밤에 숙소에서 하나씩만 까먹어도 돈 버는 일일 것 같다. 그러나 복숭아도 내가 깎아주지 않으면 꺼내먹을 줄 모르는 우리 바깥양반께서는 과도도 없지 않냐며...아니 딱복을 누가 과도로 먹어요...


 더운 날씨에 우리만 지치는 것은 아닌지, 오일장 끄트머리에, 박스에 담겨왔던 시고르자브종 두마리가 낑낑대며 사람들의 손길을 찾으며 여기 저기 배회하고 있었다. 한달도 안되어보이는 아기 강아지 들이다. 더워서인지 테이블 아래로 숨으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예쁘다고 야단이다. 젖 떼자마자 팔려고 데리고 나오신듯, 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고생이다. ㅋ

 지방에서 먹는다는 여주도 파는 것을 구경해보고, 저렴한 과실들을 두루 구경하고 난 뒤에 이달의 영월이라는 빵집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지난 어린이날 여행 때는 문을 닫아 못가본 곳이다. 평소에는 다른 곳에서 가게를 열고, 오일장에만 본점 격인 이곳을 연다는듯하다. 감자와 고구마빵, 그리고 한반도 모양의 스콘 느낌 쿠키를 두개 사서 점심을 겸해 먹었다.


 그런데 내 입맛에...감자빵이 딱이다. 아침에 산골초가 수제비를 넉넉히 먹어둬서 배가 이미 차버렸지만, 야 이거 정말 맛있다. 오늘 올라가는 날이라면 포장해가고 싶을 만큼. 밀가루와 감자의 비율이 오묘해서, 탱글탱글한 식감이 정말 맛있다. 땀을 식히며 가게에 앉아(왠지 가게보단 빵 파는 점빵 정도가 더 어울리는 표현 같은데.) 빵을 천천히 먹는 동안, 군인 한 사람이 와서 50인분의 빵 세트를 사갔다. 감자빵과 고구마빵은 맛 자체가 뛰어나지, 한반도 모양 갖가지 빵도 만들지, 인기가 없을 턱이 없는 가게인데 영월에선 오일장 날에만 여는 게 유감. 바깥양반은 특히 수수맛 한반도 쿠키를 맛나하셨다.

 땀이 겨우 식자 오늘의 체험프로그램을 위해 예밀리로 향한다. 첫날의 별마로, 둘째날의 온도감각, 오늘의 예밀와인체험까지가 여행 전에 예약을 해둔 체험프로그램들이다. 7번은 체험을 하거나 유료 관광지를 방문해야 하는데- 영월의 명물인 동굴이나 래프팅 등은 안전성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런 정적인 체험프로그램이 주류가 되고 있다. 남은 일정은 미술관 등을 중심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영월 곳곳에 스토로마톨라이트(5억년된 단층 관찰 장소), 한반도 지형 등등 볼거리 천지다.

 예밀리는 포도 집산지라고 한다. 간선도로를 벗어나 작잘 정돈된 길을 주욱 따라 올라가니 이내 포도밭이 죽 나온다. 영월까지 와서 와인마을이라니, 근데 이게 정말 맛이 있으면 다른 지방에도 알려질만한데 그정도는 아니려나. 그래도 체험을 마친 뒤에 테이스팅도 해보고 괜찮으면 한 병 사가기로 했다. 원래 바깥양반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고 난 뒤에는 그간의 노고를 위안하며 짠은 해야지. 맛난 안주도 깔아놓고.


 마을 초임에 힐링족욕체험센터가 있다. 기본 체험프로그램이 1인당 15000원으로 20분 가량의 족욕을 마치고 그 뒤엔 편히 쉬다 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우선 체험센터의 위치와 풍경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마을 초입의 저 위치는 흔히 주민들이 많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하는 공간이다. 여기서도 때때로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울까.

 피처럼 붉은 와인이라더니, 진짜로 와인이 피처럼 붉다. 드라이플라워와 꽃소금, 그리고 와인을 우수수 발을 담그는 욕조에 넣고 섭씨 41도에 맞춰 발을 담근다. 잠깐 뒤에 목 안마기까지 챙겨주셔, 발과 목근육을 함께 풀어줄 수 있었다.


 어제는 더운 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궜는데 오늘은 시원한 공간에서 발을 따끈한 물에 담근다. 그러니 몸에서 열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느낌. 두가지 시음 와인은, 와인 문외한인 내가 잘 알 순 없지만 포도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터프한 맛이었다. 떫은 맛은 안느껴지는데, 전체적으로 맛도 향도 강한 느낌. 잘 모르겠다! 다만 국내 주류대상을 받은 와인이 2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이라, 한병 사왔다.

"어제 말이지. 내가 살롱드림을 첫날 맛집으로 고른 게 잘한 거라고 했잖아.

"응."

"살롱드림이 그 존맛탱 파스타랑 리조또가 15000원이었단 말이지? 진짜 싸잖아?"

"응 그렇지."

"자. 여기 만선식당은 9500원에 생선구이와 돌솥밥. 괜찮은 걸까 나쁜걸까?"

"음- 어렵군."

"응 이게 그냥은 견적이 안나와. 그런데 살롱드림을 첫번째 맛집으로 골랐고, 가성비가 그보다 좋은 집은 있을 수 없다는 게 우리의 결론이야. 그럼 살롱드림이 1인분에 15000원인데, 그럼 9500원인 여긴, 나쁘지 않은 것 같지 않아?"

"응 괜찮아."


 저녁을 먹은 만선식당은 9500원에 돌솥밥과 된장찌개까지 제공하고 있다. 맛 자체에 대한 평가는 와인과 마찬가지로 어렵다. 그럼 가성비나 만족도를 생각해봐야하는데- 살롱드림의 15000원에 비해서 이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생선구이는 고등어와 이면수를 반쪽씩 내준다. 촉촉하니 잡내가 안나고 맛있다. 무난하지만, 돌솥밥에 찌개까지 구색을 잘 갖춘 곳. 바깥양반은 정말 배가 고팠는지 돌솥밥 하나를 다 비웠다. 나 역시 숭늉까지 아낌없이 다 먹었다.


 자 이제 선돌의 노을을 감상할 차례다. 산골초가에서 잠을 설치는 바람에, 그리고 오늘 땀을 둘 다 많이 흘려서 바로 숙소로 향하려다, 금요일과 토요일 모두 흐릴 것이라는 예보와 함께 일요일 밤을 보내고 나면 월요일 아침 일찍 영월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 그런 고로, 일요일 저녁으로 미루는 선택지보다는, 완벽한 노을은 아니더라도 오늘 일단 선돌을 방문해보는 것을 택했다. 오늘 가보고 노을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일요일의 행운을 기다려보기로.


 그리고 선돌 노을은 꽤나 괜찮았다. 도착한 시간이 7시를 갓 넘길 무렵이었는데 뉘엇뉘엇 하늘을 황금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우리와 비슷하게 주차장에서 내린 다른 여행자 두명과 우리, 딱 네사람만이 선돌을 찾고 있었다. 선돌이 유명은 한데, 막상 영월을 찾는 여행자의 입장에선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곳은 아니다. 고작 돌이잖나. 그리고 딱 봐도 산 꼭대기처럼 보인다. 이렇게 차에서 내려서 1분만 걸어도 되는 곳이라고는, 와보기까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 와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 현지인이 강추한 선돌의 노을을 사진에 담기 위해 나는 이리 저리 애를 쓰다가, 파노라마를 활용해서 찍어보기로 했다. 몇번의 연습 끝에 만족스러운 사진을 건졌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기다려, 사진에 나온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나자 그 자리에 바깥양반을 세우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야 괜찮네. 선돌 노을샷 대 성공이다.


 대 성공인줄 알았다. 해가 산을 넘어가는 것을 보고 자리를 뜰 때까지는.

"어어어 하늘 봐."

"헐...우리 너무 일찍 나왔나?"

"아...원래 강원도 노을이 저래. 근데 나 8시에 줌으로 세미나도 있어서...어쩔 수 없었긴 한데."


 이런 젠장. 선돌을 떠나 읍내를 지날 때쯤이 되자, 산 넘어로 가라앉은 해가 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층층이 구름이 여러겹의 색상 레이어를 만드는,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노을이다.


"아 아쉽네..."

"일요일에 또 가.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사진 건졌고."

 

 나나 바깥양반이나 피로함과 더위에 "쩔어" 있었기 때문에 에어컨과 샤워 생각 뿐이었다. 이제 와서 다시 선돌로 돌아가는 것은 무리다. 일요일을 기약하며 숙소로 향하는데...

 찾았다. 노을 스팟.


 인생 노을샷 스팟이 다른데 있지 않았다. 읍내를 벗어나자마자 10분도 가지 않아, 정말 환상적인 자리를 찾아냈다. 2차선 도로에 인도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구석에 차를 세우고 달려가, 구도를 잡아봤다.


- 바깥양반!!!!

- 당장 나와

- 일로와


 차에 남겨둔 바깥양반이 전화를 받지 않아서 나는 카톡을 보냈다. 그러자 바깥양반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온다.


"어때?"

"우와!"


  바깥양반이 오기 전까지 난 실컷 풍경사진을 찍어뒀다. 그러니까 이제 마음껏 바깥양반 인물사진을 찍어줄 수 있다. 오가는 차를 주의하며 풍경 안에 바깥양반을 담았다. 이보다 좋은 스팟이 있을까 싶은, 인생 최고의 노을사진의 하나를, 아니, 인생 최고의 사진으로 남을 한장이 아닐까.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 길, 반대쪽 하늘도 분홍색으로 부드럽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내일은 어떤 날씨가 될지, 어떤 날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리. 그렇게 하루 하루 걷듯이 여행하면 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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