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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07. 2021

비와 우리의 이야기

#Story 05. 영월 일주일 살기의 마지막 일정

 영월에서의 6일째 날이다. 펜션 사장님의 극진한 환송을 받으며 짐을 또 다시 바리바리 차에 실어 길을 나섰다. 여름인데도 짐이 꽤나 많아서 수고스럽다. 숙소에서 아침은 또 내가 커피는 마셔야 하니 따로 용품들을 챙겨다니고, 생수나 과자 거 얼마나 한다고 바리바리 싸들고 내려온 상태. 그래도 일주일 사이 꽤나 짐은 줄였다.


 아침에 감자를 한개씩 노나먹고  뒤에 11시쯤에 짐을 챙겨 나온 거라 배가 많이 출출하다. 고씨굴  식당가 중에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집을 찾았다. 칡국수 전문점인데 바깥양반이 주문한  칡칼국수, 나는 콩국수. 보통 칡국수나 칡냉면 식당에서 먹어보지 못할 메뉴들이다. 게다가 영월에서 먹는 콩국수라 기대가 되었는데, 호오 신기한 . 흔히 쓰는 노랑이  백태가 아니라 서리태를 듬뿍 갈아 넣어서 얼핏 밍밍하면서 풋내가 나는데 소금이랑 설탕을 짭쪼름하게 쳐서 먹기 시작하니 중독성이 강한 맛이다. 추천을 받긴 했지만, 흔히 가보지 못할 식당에서 흔히 먹어보지 못할 음식을 시켰는데 만족감이 크다. 게다가 감자전도 영월 답게 꽤나 수준이 있었다.


 오늘은 마지막 날이기도 하니 동선을 길게 잡았다. 영월 북쪽의 탄광문화촌과, 탄광문화촌에서 평창으로 약 40분 가량 차를 몰고 들어가는 산속 카페다. 영월의 특징이 영월 중심부인 읍내를 벗어나면 곳곳으로 꽤 멀리 멀리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묵은 펜션도 읍내에서 25분, 30분은 들어가야 하는 곳들. 젊은달 와이파크는 50분 가량. 이런 식이라 대중교통으로 이동을 해야 할 경우엔 불편함이 클 것이지만, 오고 가며 관광을 하기 보다는 한군데 오래 머물기 좋은 곳이 영월이다. 머물기 좋은 곳을 이리 저리 쏘다닌 우리는 어디까지나 뽕을 뽑아야 할 관광객들.

 탄광문화촌은 전시관과 탄광체험관까지 길어야 1시간이면 다 볼 수 있는 작은 규모다. 한창 날은 쨍쨍 덥지, 그런데 주차장에서 긴 계단을 타고 올라야 하고, 또 전시관과 탄광체험관 사이에 긴 거리를 걸어야 하니 영월의 아이덴티티 외엔 딱히 매력 있는 전시관은 아니다. 가격도 딱 2천원이니 규모에 얼추 들어맞는다. 그러나 짧은 체험시간에 비해 배우는 것은 적지 않다. 이 계단이 사실 석탄을 산 넘어로 운반하기 위해 건너편 케이블탑으로 탄을 보내던 자리였고, 전시관과 탄광 사이의 긴 길은 사실 탄광에서 중간기착지까지 레일이 연결되었던 곳. 우리가 걷고 있는 길들을 광부들은 레일을 타고 들어갔다.


 어린 시절 엄마가 부엌에서 기침을 하며 연탄불을 피우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세대에게 탄광이란, <국제시장>을 보고 느끼는 그런 애잔한 감정을 전달한다. 두 손에 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젊은 세대들이 살아가기 위해, 사랑을 하고 자식을 먹이기 위해 목숨을 걸고 탄광에 들어가던 곳이니까. 그리고 그런 아버지들과 함께 살겠다며 단칸방에 어린 아이들이 몸을 누이던 곳이니까. 어느새 나도 오래 살았다. 아무런 편의 없이 골목놀이로 저녁시간을 보내고 하나뿐인 TV로 채널 다툼을 하던 세상의 결핍을 인식하고 있는 내가, 이제 태어날 아기를 물질적 풍족함 속에서 기르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내게 줄까.

 평창으로 넘어오는 길이 재미졌다. 좁은 산길을 굽이굽이 타며 운전하는 것이 제법 즐거운 코스다. 카페 이화에 월백하고의 독특한 분위기나 사장님들과의 대화도 좋았다. 그리고 한창 그곳에서 차를 마시고 있을무렵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너도 하나 그려봐."

"나도?"


  스케치북에 바깥양반 얼굴을 대강 그려준 뒤에 잠깐 다른 것을 하다가, 바깥양반에게 스케치북을 쥐어줬다. 나는 가는 곳마다 수달을 그려대기 때문에 바깥양반이 그걸 찍어서 많이 간직하고 있지만, 바깥양반은 그림을 그릴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늘 구경만 한다. 그런데 그림이란 게 잘 그리고 말고가 있나. 낙서를 하든, 글씨연습을 하든, 공간을 채우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 아닐까. 누가 평가를 하고 혼을 내고 할 일도 아닌데 말이지.


 바깥양반은 내가 추천해준 다른 커플의 그림을 보더니 이내 하나를 완성했다. 곧잘 그린다. 그런데 바깥양반의 경우, 이런 취미 자체를 잘 모르는 편이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종이만 있으면 그림을 그려대던 미술 꿈나무라서 그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에 매우 능하다. 그런 취향이 공부를 할 때도 유용했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하다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연습장에 그림 몇장 그리면 이내 몸도 마음도 가뿐해졌으니까. 굳이 나가서 공놀이를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그런 취향의 장점을 누리는 편이다. 그러나 바깥양반에겐 앉아서 할 수 있는 취미가 잘 없다. 나를 끌고서 나가야 취미생활이 된다. 이런 바깥양반과 내가 공존을 할 방법이란, 그런 시간 속에서 내가 혼자 놀기의 차원을 되살리는 것이겠지.

 결혼에 관한 에세이는 그런 구실을 한다. 이것이 바깥양반과의 만만치 않은 생활 속에서 내가 그림을 그리며 스트레스를 풀듯, 고민과 기억의 시간을 함께 녹여내는 공간이다. 부부의 삶 자체만으로는 숨쉴 공간이 열리지 않는다. 부부에겐 각자의 공간, 각자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바깥양반과 함께 하는 시간은 대개 내가 양보하는 구성을 취한다. 타율적인 시간에서 내가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 내가 가치롭게 그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을 기록하는 것. 물론, 기록을 위해 별도의 시간을 내야 한다는 단점은 있지만,


 그 단점이 바깥양반과의 소통으로 보상된다. 결혼생활 2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부터, 다시 말해 "신혼조정기간"이 끝나 부부싸움의 빈도와 강도가 현격히 줄었을 무렵부터 에세이로 남기기 시작한 바깥양반과 나의 생활에 대해서 바깥양반은 꽤나 정을 붙이고 있다. 별로 꼬치꼬치 참견을 하거나 내 글투에 대해서 트집을 잡지는 않지만, 이따금 의견을 주거나, 여행 에세이처럼 그날 그날 쓸 건수가 있는데 안쓰면 조용히 내게 묻거나 한다. 다른 글을 쓰느라 품이 달린다. 글을 쓰는 건 어디까지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내 역량에도 한계는 있는 법. 그러다가도, 여행을 와서는 다른 글감들은 미루고 되도록 꼼꼼히 부부의 기록을 남기려 하는 편이라, 그럴 땐 나름 만족감을 표하시기도. 어쨌든, 이렇게 균형점을 끝없이 맞추어가며 둘의 시간은 흘러간다. 빗속의 주행, 저녁을 먹기 위해 잠깐 들른 평창읍내의 식당, 영월로 돌아와서의 마지막 숙소. 그날 먹은 옥수수들.


영월의 마지막 밤이 되어 그날까지의 글과 남은 글들을 대강 추려보니, 넉넉하게 돌아보았고 넉넉하게 썼으며, 넉넉하게 쓸 것이 남았다. 우리는 영월이라는 흰 도화지를 펼쳤고, 각자가 스케치를 하거나 채색을 했고, 하나의 그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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