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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Aug 01. 2021

아는만큼 다가가게 되고

#Story 04. 영월 4일차, 두번째 살롱드림과 두번째 선돌

 평소처럼 아침에 혼자 커피를 내려마신다. 펜션에서 아침마다 차를 주신다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혼자 삐쭉 나와서 자리를 잡은 참이다. 영월계속  펜션의 아침은 덥지 않았다. 커피를 한잔  마실 떄까지도 더위를 느끼진 않았다. 이반 일리히의 <학교 없는 사회> 해설 부분을  읽었다. 이번에도 책은 바리바리 싸들고 왔는데 써야  글도 많고 독서 템포가 느리다. 그러나, 오늘은 쓰려던 글을 마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고 마지막 한모금에 마지막 장을 마쳤다. 해설을 먼저 읽은 거라 본문이제 읽을 차례.


 중학생 때 고전소설류에는 해설이 함께 실려있어 어려운 본문을 읽은 뒤 해설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근래에는 공부를 위해서 해설이 필수다. 대부분의 학자의 입장들은 그것을 읽기 위해서 맥락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이반 일리히의 경우, 바로 그 맥락을 형성하는 책이다. 맥락을 알기 위해 또 맥락을 추적하고, 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또 맥락을 추적하고. 하흠. 아침이나 먹어야겠다.


 여행을 떠나오며 라면을 제법 긁어왔다. 바깥양반은 대개 주방을 갖춘 숙소를 잡아두기 때문에 사놓고 먹지 않아 쌓여만 가는 라면들을 소진하기 딱이다. 그러면 대개 체크아웃 시간이 되고, 오전을 여유있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오늘은 비빔면에 전날 고기와 먹고 남은 깻잎을 두둑히 손으로 뜯어서 넣었다. 영월에서 난 깻잎이겠지. 향이 강렬해 비빔면과 어울린다. 내일 아침은 뭘 해먹나. 둥지국물냉면이 집히길래 냉장고에 넣어뒀다.


 또 그건 그거고, 엉망으로 볶인 줄 알았던 커피들이 며칠 숙성이 조금 되니 훨씬 조화를 이루며 먹을만해졌다. 가스가 더 빠지고 잡내가 날아가게 되면, 더 좋아지겠지. 여행이 끝날 때쯤엔 더 좋은 향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시간이라는 약은 만병통치약은 안되더라도, 언제나 맞춤하다.

"여기가 그러니까 영월의 성심당 쯤 되나."

"어 의외로 웨이팅이 금방 안빠지네."


 볶음요리니, 볶음밥까지 먹으려면 엉덩이가 금방 떨어지진 않겠지. 영월분들께 추천을 받아 사랑방식당을 찾았다. 그런데 주민들이 많이 찾는 집인지 점심시간에 주차장이  차있고 웨이팅이  팀이나 있다. 토요일이긴 해도 오징어볶음 요리가 어디 드문 것도 아닌데  유명새라니. 그런데, 맛이  있다. 새송이가 넉넉히 들어간 1인분에 11000원의 오징어볶음 2인분이 반찬도 깔끔하고, 밥도 기본으로 제공된다. 철판이 끓기 시작한지 2,3분만에 오징어는 익어서 먼저 홀홀 집어먹고 있노라면 어느새 자작하게 볶아진 오징어볶음이 완성. 어지간하 오징어를  먹은 뒤에는 밥을 볶아먹을  있다. 철판에 눌은 양념이 은은한 불향을 내어주며, 누룽지가 만들어져 식감과 풍미를 함께 전한다.

 

 비가   알았는데 쨍쨍하다. 새벽에만 조금  모양. 행선지를 바꾸어 한반도지형 전망대를 가기로 했다. ~ 더운 날이라 바깥양반원래 계획엔 없었는데, 오늘이 지나면  맑은 하늘이 다시 보기는 어려워질거라는 일기예보다. 그러나 그것이 좋은 아이디어였는지는,

"야 너 그만해. 이제부터 입 다물고 가."

"아 남편한테 투정도 못하면 누구한테 해!"


 너무 더운 날씨에, 전망대 주차장에서 왕복 30분 가량은 걸리는 산책로는 지치고 힘들었다. 바깥양반은 5분 정도 걷고 나서는 "어디까지 가"와 "너무 더워"를 반복했다. 나는 몇번쯤 들어주다가 합죽이가 됩시다를 던졌다. 임신한 와이프에게 말이다.


 내 경우 불가항력적인 문제에 대하여 감정을 소모하는 것은 굉장히 허무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에, 특히나 날씨가 더우면 더운 거지, 추우면 추운거지 불평하는 것을 잘 하지 않는다. 더우면 덥다고 웃고, 추우면 춥다고 웃는 편인데, 물론 바깥양반의 경우엔 체중도 10kg나 불어있지, 그게 배에 물풍선 여러개는 달려있는 느낌이지, 기초체온은 올라가있지, 투정을 부릴만한데도, 나는 그런 걸 보기 싫어하는 성미다. 그래서 조금 다투다가 그만,


"야 나는 지금 팬티까지 다 젖었어!"


 라는 말로 다툼을 끝냈다.

 그렇게 가서 보니...나중에 또 오면 좋겠다는 생각은 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시시각각 풍경이 다른 곳이라 굳이 이렇게 찌는 더운 날씨에 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고. 가보면 다 아는 풍경이라서 순천만 습지처럼 신비로운 풍광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한반도 지형 말고도 저 뒤에 풍광이 두루두루 멀고 좋아서 단풍질 때 오면 딱이겠구만.


 경치를 보고 동강사진전을 찾았다. 땀이 비오듯해, 한반도지형에서 다시 영월 읍내의 사진박물관에 오는 사이에도 몸이  식지 않았다. 그래도 에어컨이 싱싱 나오는 곳에서 1시간 남짓, 느긋하게 보내기 좋다. 영월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 외에도 다양한 주제로 전시를 계속하고 있는듯. 기본적으로 영월의 자연풍경이  멋진 곳이 많아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게 되는 욕구도 커지고, 그런 욕구와 함께 발길 닿는 곳이다.

가는 곳마다 토퍼와 함께
코로나 사진전
널찍하기 평온하다
한옥 내부에서 바라본 천장. 대들보의 모먕이 특이하다.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내일의 흐린 날씨를 예고하듯 구름이 한층 두꺼워져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풍경을 바라보다가 군청 앞에 오면 또 이렇게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어 마음이 후련해진다. 별로 대단한 게 아니어도 그냥 커피 한잔씩 손에 들고 군청과 사진박물관 주변만 돌아다녀도 한적하고 좋을 것 같다. 군청 계단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정말 좋다. 나중에 또 영월을 찾아온다면, 밤공기를 맞으며 홀홀 걸어걸어 밥을 맞아도 좋으리.

 오늘은 토요일. 일요일에 휴업하는 가게가 많아,  가고 싶은 곳들을 마지막으로 한번씩 방문했다. 그러고나면 월요일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한다. 살롱드림이 스테이크도 잘한다 하니 저녁에 방문했는데 역시나 성공. 200그램에 31000원이다. 그런데 트러플을 한스푼 가득 올려주셔서 기쁘게,  맛있게 먹었다. 로제 시푸드 파스타도 과연 이틀 전의 륭한 기억을 배반하지 않는다. 버거 메뉴도 있어서 시키려고 했는데 런치 메뉴라고 해서 트라이는 실패. 그러나 스테이크도, 하우스와인도 만족스러웠다. 살롱드림에서 와인을 마시고 나니 전날 예밀리에서 와인족욕을 하며 테이스팅한 와인들이 개성이  강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는 만큼 느끼게 된다. 아는 만큼 다가가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아는만큼, 저녁을 만족스럽게 먹고 노을을 볼 시간까지 좀 여유가 있어 중부내륙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찾았다. 이번여행에서 두번째, 5월의 첫 방문까지 합치면 세번째다. 이번엔 사장님이 우리 얼굴도 알아보셨다. 마감 시간에 근접한 방문이어서 우리 말고 다른 커플까지 두 팀이 손님이었는데, 다른 팀도 커피에 대한 관심이 많아 사장님과 진득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깥양반이 원래 카페를 좋아해 투어를 하느라 마음에 드는 카페가 있어도 두번 세번 가는 일이 정말로 드문데, 이렇게 단골 카페를 하나 찍어두고 자주 가게 되니, 난 한량없이 기뻤다. 다만, 중부내륙은 정말로 커피가 맛있는 집이라, 역시나 아이스를 먹어선 안된다는 결론. 그날 하루 종일 더워서 아이스 라떼를 먹었는데...실수다. 맛이 없진 않은데 중부내륙의 핫커피 라인이 워낙 출중해 그 맛을 느낄 수 없다. 쩌죽핫의 존심을 지키지 못한 나의 실수.

 아 그런데 사장님이 누룽지로 만든 수제초콜렛을 파신다. 바깥양반이 다른 손님들의 대화를 엿듣고는 달려가서 그것도 하나 사왔다. 누룽지가 크런치볼 역할을 한다. 손이 많이 가 많이 만들지는 않으신다는데, 이런 잔재미가.

 선돌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방문했다. 이틀 전의 노을을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영월에서 맑은 저녁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마지막일 것이라 놓치기 아깝다. 중부내륙에서 빠져나와 차를 달릴 때 이미 하늘엔 두꺼운 구름이 자리하고 있다. 한시간 가량 앉아 무지개도 보고, 해가 넘어간 뒤의 노을도 끝까지, 끝까지 감상한다.


 이틀 전의 그 노을을 선돌에서 맞았다면, 강에 비친 노을 사진을 찍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선택의 문제. 그날 끝까지 선돌에서 노을을 바라봤다면 다른 사진을 얻을 수 있었겠지. 그렇다고 오늘 찾아온 것에 후회는 없었다. 어떤 하늘이든 그 나름의 인상으로, 게다가 오늘은 선돌 옆쪽에 무지개가 걸린 것도 볼 수 있었으니.


 내가 원하던 것은 아니되, 그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닌 하늘을 길게, 길게 바라보며, 7월 31일의 밤을 맞는다. 오늘로, 아기가 태어나기 70일 전이다. 오늘이 7월의 마지막 날. 여름의 한 고비. 어느것도 아름답지 않은 날은 없고, 어느 날도 의미 없이 지나가진 않는다. 오늘의 하늘에, 오늘의 의미를 담아보내고 우린 다시 밤의 길을 달려 숙소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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