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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Jul 29. 2021

Check in : 영월 산골초가 민박

#Place 04. 머무름에 대하여

 어김없이 눈이 떠져 밖으로 나왔다. 모처럼이다. 시골집에서 민박을 하기로 한 것이니, 아침 산공기를 오랜만에 맡아볼 수 있겠다. 밤새 뒤척이다 겨우 잠들었을 바깥양반의 기색을 살피며 밖으로 나왔다. 서늘한 공기가 새삼 내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일깨웠다. 


 산골초가 민박은 강원도식 너와지붕으로 된 토담집이 다섯채 정도 있다. 그러므로 정확히는 "초가"가 아니다. 그러나 토담집보다는 더 확 와닿는 표현이긴 하다. 어쨌든, 그 다섯채의 너와를 아래의 사무실 겸 간이건물 겸 입구를 통과해 이동하게 되어 있고, 꽤 넓은 부지는 빼곡하게 꽃밭과 채소밭으로 가꿔져 있다. 그래서 맨 아래까지 내려오니...사무실에서 주로 기거하는 강아지들이 우르르 달려와 짖으며 내 다리를 핥는다. 이런. 녀석. 강아지가 핥는 것은 더러운 것일까 아닐까. 그런 일도 드물어져 잘 모르겠다. 어쨌든 열심히 짖으며 꼬릴 흔드는 시고르자브종들을 거느려 마저 걸었다. 민박 출입구를 지나 포도밭이 죽 이어진 진입로까지. 아침, 산책이란 말이지.


 산골초가의 아쉬운 점은 개울이 없다. 가물어서 마른 것인지 원래 유량이 적은 것인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숙박업을 하면서 지하수를 많이 끌어와서 지력이 쇠한 것인지도. 어느쪽이든, 아쉽긴 하다.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 그대로를 감상하는 호사는 누리지 못한다. 대신에 길게 걷기 좋다. 차로 어렵사리 들어온 진입로가 모두 산책로다. 옥수수, 포도 등 구경거리도 알차다. 

 민박 내에도 텃밭에 다양한 채소가 심어져 있고, 그들 중에 일부는 따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방값이 퍽 비싼 편인데 이런 것들이 가격에 다 반영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사무실 옆의 비닐하우스에는 방울토마토와 깨, 파가 심어져 있다. 민박에서 고기를 구워먹는 이들이 꽤 많다. 깻잎을 넉넉하게 따서 씻기만 하면 될 것이고, 김장용이라 따지 못하게 하는 고추도 일부는 딸 수 있게 심어져 있는 구석이 있는듯했다. 그런줄도 모르고 우리는 어제 마트에서 방울토마토를 사왔다. 게다가 고기는 구워먹지도 않았다. 너무 더웠고, 벌레 때문에 오래 밖에 나와있기 어려웠다. 영월 읍내의 영양족발에서 포장해온 마늘족발만 배부르게 먹었다. 


 어쨌든, 산골초가가 갖는 이런식의 장점이 꽤 있었다. 가뜩이나 비싼데 장작도 숯도 별도라고 하니 싫을 사람이 있겠지만, 여름날 불멍을 위해 얻어가는 장작이 아니라, 1년 전체를 잡고 구들장을 땔 장작까지 셈을 해보면 아무렇게나 장작을 내어주기는 어려울 것이고, 여름에 에어컨을 펑펑 쓰고 가는 객의 입장에서 에이 겨울 손님이라 생각하고 장작 좀 아끼지 말고 조금만 주쇼 하는 것도 조금 이상한 일. 그런 것에 비하면 숯과 철망을 합쳐 고작 5천원이니, 돈독이 오른 집은 아니지 싶다. 전체적으로 가격이 비싸게 형성되어 있는 것은 주변 시세도 그렇고 인기도 좋고 하니 가격을 낮출 요인이 딱히 없는 탓이 조금 있겠다. 

 그래서 이렇게 시골살이를 그대로 체험한다는 점에서는 산골초가가 꽤나 가치가 있다. 텃밭에서 몇가지 채소를 따 와서 바로 씻어서 된장에 푹 찍어먹을 수 있게도 해주고, 밥을 지을 쌀도 미리 방에 비치해주고 심지어 솥을 쓸 수 있게 세팅도 해놨다. 그런 수고로움에서 가치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는 재미가 찾아내지지 않는 부분들이다. 그러나 원래 이렇게들 살았다.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지 못하게 하니, 잎을 따서 고추잎 나물무침을 만들어 먹어도 되고, 가지가 잘 익어 달려있다. 허락을 내준다면 살짝 기름에 볶아서 가지나물을 만들어도 밥도둑이다. 마늘 정도는 조금 얻어 쓸 수 있을 테지.


 나에게 산골초가는 거쳐감이 아니라 머무름의 공간으로 느껴졌다. 그것도, 이왕이면 객실의 그 모든 불편함을 감내하고 왔으니 내 나름의 방식으로 "뽕을 뽑고 갈" 방법들을 찾아 머리를 짜내도록 하는 곳. 내 손으로 밥을 지어먹는 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에겐 꽤나 호사다. 

 어제 해저물녘의 첫 산책에는 또 다른 시고르자브종이 따라왔더랬다. 나는 노을을 기다려, 마당으로 나왔다. 주인내외와 아들 세 식구는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하고 있었다. 여주인께서는 잘 가꿔진 화단에 물을 주시고, 아드님과 남주인께서는 저 위에 텐트를 친다고 분주하다. 오늘 아침 산책 때는 각자 주방에서 그리고 텃밭에서 땀을 흘리고 계시던 그들의 삶. 그런 삶의 일부를 흉내내어 사진에 복제하고자 찾아들어온 젊은이들 사이에 낀 나도 그런 부류로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을까.


 개울은 없지만 곳곳에 물레바퀴가 있다. 그리고 어린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풀장도 있다. 그네도 있다. 알뜰살뜰 가꿔진 마당 겸 정원이다. 


 그러니까 산골초가에서 훌륭하게 하루를 보낸다면, 이런 것들이 가능하겠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겸 운동을 좀 하고 들어와 아침거리를 밭에서 조금 수확한다. 가지를 볶으면 좋겠네. 밥을 차려먹고 설거지까지 하면 10시 정도 가까워져있겠다. 마루에서 차를 마시며 조금 누워도 있어보고, 그러다 바람마저 뜨거워지면 방으로 들어와 한숨 낮잠도 잔다. 그러면 점심 때다. 옥수수를 따서 삶아두고 빨래를 해 넌다. 급할 것은 없지만 할 일이 없어, 심심해서 하는 손빨래일 것이다. 팬티 두어개, 양말 두어켤레를 널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에어컨을 쐰다. 그러면 옥수수는 다 삶아졌을 것이다. 점심 겸, 떼우며 여유를 즐긴다. 그럼 저녁이 될 것이고, 미리 사 둔 막걸리와 함께 밭에서 깻잎, 고추잎을 얻어와 부침개를 만든다. 이렇게 열심히 해먹고 치우고 쉬다 보면 하루가 간다. 심심하면 물레방아 구경을 하거나, 아이들이 풀에서 노는 것을 봐주거나 하면서 말이다. 

 이런 시골살이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토담집 객실이 나름 잘 갖춰진 공간이라는 것도 깨우치게 된다. 토담집 답지 않게 통유리를 옆으로 내놨다. 그리고 방안에 화장실 겸 욕실도 모두 따로 두었다. 게다가 주방도 완벽히 갖춰져 있다. 오히려, 이정도면 매우 산골 너와집 치고는 너무 빼어난 세팅이다. 


 욕실은 편의를 위한 배려라고 해도, 이다지 객들에게 밥을 해먹을 것을 권하고, 기대하는 곳이 아니라면 주방이 방마다 모두 따로 있을 필요는 없다. 구옥의 아이덴티티를 살려 공동주방을 적당히 만들어 주면 땡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냉장고에 된장과 고추장(만 있어도 사실 쌈에 고추만으로 훌륭한 한끼 반찬이다.)에, 여러가지 반찬이 꽉 차 있고, 게다가 싱크대 아래 찬장에는 참기름에 부침가루까지! 어지간한 밥은 정말로 다 만들 수 있는데다가, 심지어, 체까지 있다. 내가 어제 비빔면을 만들 때 펜션에 없어서 애를 먹었던 바로 그, 체. 


 이 정도면 알뜰살뜰 잘 갖춰진 구성. 성수기 가격 1박에 16만원이라는 가격이 크게 아쉽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편의"라는 가치에선 힘을 잃는다. 방이 좁다. 우리가 묵은 하늘채 방은 셋이 눕기 좁고 머리는 싱크대 바로 아래, 발은 문 바로 앞에 놓인다. 그리고 아무리 문을 칼같이 닫고 지내도 어디로 들어오는지 여러가지 벌레, 그중에서도 나방이 계속 출몰한다. 벌레를 극도로 무서워하는 우리 바깥양반은 나방이 보일 때마다 거의 자지러지셨다. 


 불편함도 벌레도 참겠는데, 결정적으로 잠자리에서 걸렸다. 원래 여름에는 시골에서 그렇게 지내는 것이기도 하다만, 얇디 얇은 요 하나 달랑, 그리고 기능성 홑이불 각자 하나가 침구의 전부다. 나는 참고 잘만한데, 평생 침대에서만 잠을 자 온 바깥양반의 경우 등이 배겼다. 게다가 임신 8개월, 옆으로 돌아서 자는데도 힘에 겨워했다. 결국 바깥양반은 밤을 꼴닥 새웠다고 한다. 나는 한시쯤부터 드릉드릉 자버렸고, 아침에 제법 등이 배김을 느끼긴 했다. 


 정리하자면, 산골초가는 도시 사람들이 잘 모르는 시골살이를 굉장히 쾌적하게 즐길 수 있게 잘 조성해둔 숙박이다. 방이 작아서 에어컨을 3분만 켜고 금새 냉골이 된다. 겨울엔 구들장에서 빵처럼 구워지는 체험도 가능할 것이다. 한여름에도 방에서 시원하게 에어컨을 켜며 모든 생활이 가능하고, 밭일이 싫다면 주인내외에게 음식을 청해서, 그 김에 채소 좀 부탁하면 될 터이다. 그러고나면 남은 시간을 어찌 보낼지는 각자의 몫으로 떨어진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잠자리가 불편해 바깥양반은 고달파하셨다. 도저히 극복하기 어려운 선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침대를 요구하기에도, 넌센스. 여름일지라도 현대인의 생활을 고려해 매트리스만이라도 두꺼운 걸 따로 요청할 수 있게 해줬다면 바깥양반의 불편함이 좀 덜했을까는 싶다. 


 그 밖의 소소한 문제로, 우리의 체험일정으로 인하여 반드시 민박에서는 나와야 했으므로, 위에서 묘사한 시골에서의 하루를 보내지 못하는 우리와 같은 여행자들의 경우에는 산골초가의 그 매력이 반감되는 측면이 있다. 거쳐만 가서는 제대로 지내지 못하는 곳이거늘.  

아침으로 주문한 수제비. 13000원.
시골생활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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