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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Oct 20. 2021

그리고 돌아온 엄마의 밥상

세상 효녀를 낳았다.

 세상 효녀를 낳았다. 


 잠을 잘 잔다. 태어난지 3주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배고프다고 앙앙 울지도 않고 밤에 잠들면 세시간 네시간도 잔다. 두시간마다 맘마는 먹여야 하니 밤에는 억지로 깨워서 밥을 주기도 하는데, 그럴 때도 먹이고 트름시키면 이내 또 잠을 잔다. 덕분에 첫 아이를 갓 집으로 들인 엄마와 아빠가 수월하게 견디고 있다. 


 덕분에 아빠는 종종 외출을 할 기회도 얻는다. 엄마를 집에 홀로 두고 어제는 장을 보느라 한시간, 오늘은 학교에 들러서 몇가지 업무를 처리하느라 두시간을 집을 비워도 되었다. 아침에 아이가 낑낑대는 소리에(배 고픈 것으론 잘 울지 않는다) 눈을 뜨자마자 맘마를 먹인 것이 9시. 그때 나는 재빠르게 세안을 하고, 모자를 걸친 뒤, 직장에 나가 후다닥 업무를 보고 온 것이다.


 그렇게 둘이 힘을 합쳐 짬짬히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아이도 아이지만 같이 고생하는 바깥양반의 생각이 아니 날 수가. 다른 것보다도 밥이, 바깥양반의 욕구불만을 낳았다. 수유에 지장이 생기는 자극적인 음식들은 먹지도 못하고, 특히나 그 좋아하는 떡볶이를 또 끊었으니 조리원에서부터 얼마나 우울해하던지. 바깥양반은 내가 몰래 몰래(조리원에 대놓고 간식을 넣어주면 막는다고.) 넣어준 간식으로도 그 먹지 못하는 스트레스와 욕구불만을 해소하지 못했다. 병원에서 조리원으로 이어진 담백하고 싱건싱건한 음식의 퍼레이드는, 프로먹방러 바깥양반에겐 도무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인 것이다. 

 그리하여 어제, 


"다녀올게."

"응. 나 근데 냉삼도 먹고 싶어."

"냉삼? 응 알았어...그리고 내일 아침!"

"응?"

"특식이야."

"와."


 장을 보러 간 김에 몇가지 "불필요한" 것들을 샀다. 원래 의도는 늘어난 가전제품을 위한 선업는 멀티탭, 산모용 위생용품, 우유, 그리고 바깥양반이 요청한 냉삼 및 쌈야채 딱 여기까지였는데, 조리원에서부터 밥이 맛 없어서 서럽다는 투정을 많이 듣고 있던 차에 모처럼, 마트에 나왔으니 바깥양반이 좋아하는 걸 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고 난 다시 꼬치전을 하고야 말게 된 것이다. 


 꼬치전이 시간은 더럽게 오래 걸리지만 한번 해보니 쉽고 단촐한 요리다. 이번엔 마트 마감시간이 다 되어 장을 본 것이기에 돼지 안심으로. 꽤나 저렴한 가격에 작은 당근 크기로 세 덩이를 샀다. 돼지 안심은 길게 산적 사이즈로 만들어 가장 먼저 조물조물 허브솔트에 버무려뒀다. 남은 다른 식재료를 손볼동안, 대강이라도 재워지겠지. 그리고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본 것은 새송이가 다였으므로, 쪽파 없이 버섯, 돼지등심, 맛살 세가지로만 만들어진 산적꼬치가 되겠다. 


 근데 정말 만들면 만들수록 쉽고 지루한 요리다. 어릴 때부터 난 꼬치전을(그때 대전에선 산적이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그냥 고기산적이라고 소고기를 길게 상에 올린 것을 산적이라고 했던 것도 같고.)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그때부터였나보다 나의 오양맛살 비선호의 성향은. 

"오 맛살이네요."

"특식."

"요."


 내가 재료를 손질하는 사이 동백이 맘마 먹을 시간이다. 두시간마다 맘마를 먹어야 하니, 근무조인 사람은 두시간 간격으로 30분 가량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이다. 나는 트름시키는 일에 재미가 붙어서 길게 시켜주곤 하는데, 그러다가도 아이가 너무 잠잠해서 괜히 성급하게 눕혔다가 코로 게우는 일도 바로 오늘 새벽에 겪었다. 


 어쨌든, 바깥양반이 아이를 보는 사이에 나는 앞뒷베란다까지 활짝 열고 전을 굽기 시작한다. 부침가루옷에 계란옷, 그리고 후라이팬에. 참 쉽고 번거로운 요리다. 그러나 바깥양반이 이보다 좋아할 요리가 많지 않으니, 조리원에서 퇴소한 날로부터 3,4일 안에는 한번 만들어드리려던 참이다. 


 그렇게 팬에 꼬치를 두개씩 올려서 구워내는데, 새송이버섯이 조금 남아버렸다. 이럴줄 알았다면 전에 더 넣을 걸 그랬나. 어쨌든, 꼬치에 넣으려던 버섯이 남았다. 버섯이 남았고...어쩔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나는 대파를 꺼내 채썰었다. 그리고 맛살도 한 두줄 꺼내 좍좍 찢어넣었다. 그리고 마지막 꼬치가 팬에 올라가길 기다렸다가 꼬치 튀김옷 묻히는 데 쓴 부침개가루를 방금 손질한 채썬 야채들에 추가. 그리고 꼬치전을 만들던 계란 푼 것까지 합침. 그러니까 이건, 참으로 클래식하고 평범한, 그러나 바깥양반에겐 밥도둑이라는 맛살 야채전이 나온 것 아닌가.

 

 사실 또 야채전이라는 정체성을 위해서라면 양파도 넣고 이것저것 더 챙겨넣어야 할 것 같지만 지금은 남아있는 계란, 부침가루, 새송이버섯에만 집중할 때다. 다만 버무리고 나니 부족한 느낌이라 계란만 추가.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놓은 참, 맛이 괜찮아보인단말이지. 여전히 내 취향은 좀 아니긴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조리원에서 갓 돌아온, 바깥양반을 위한 첫 특식이 완성. 

"와 사진 찍어야지."

"있잖아, 근데 왜 굳이 꼬치전이 좋아? 꿰는것에 의미가 있는 조리법이 아닌데."


 -또 이렇게 나는 쓸데없는 질문을 바깥양반에게 던지고 말았는데, 내 입장에선 별것 없는 요리가 바깥양반에겐 특식으로 불릴만한, 정말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는 것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 가깝다. 조금~도~ 심통을 부리는 건 아니고. 


그러나 바깥양반은, "꼬치니까." 라는 싱거운 대답만을 했는데, 하기사 꿰어야 보배지. 닭꼬치나 양꼬치처럼, 단지 꿰어서 맛있고 즐거운 요리도 있는 법이긴 하다. 


 단지, 꿰어냄으로써만. 


 가족처럼, 부모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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