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빠는 오늘도 투닥투닥
아기 자신이 있는 곳이 엄마의 뱃속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해 더 오래 깨어 있고 주변을 살피게 돼요. 또한 반사행동에 의해 온몸을 버둥거리고, 그 움직임에 놀라 울기도 합니다.
출처ㅣ http://www.wonderweeks.kr/
"아 우리 침대 안돼. 아기 침대에 놔."
"얘 지금 옮기자마자 깰 텐데."
"그래도 버릇 나빠져. 옮겨."
"나 책임 못져. 깨면 네가 달래."
나는 동백이를 조심스럽게 들어 우리 침대 옆 아기침대로 옮긴다. 한시간 가량 겨우 늦은 낮잠을 자는데 우는 아이를 달래던 바깥양반도 지치고 영 힘들어 해, 내 배 위에 엎어서 재운 뒤다. 설거지를 위해 일어나야 했고, 그러자면 배 위에 자는 동백이를 치워야 하고, 그래서 나는 아이가 체온 변화를 인지 못하도록 나와 동백이를 덮고 있던 이불에 아이를 칭칭감아 침대에 엎어놓았다. 그리고 침대를 일어나자마자 바깥양반과 의견충돌이 생긴 것이다.
바깥양반은 평균에서 벗어난 수준으로 네거티브하게 사고를 하고, 나는 평균에서 벗어난 수준으로 낙관적으로 사고를 한다. 둘 다 장단점이 있지만 아이라는 하나의 대상에 대한 엇갈리는 사고와 태도에 중립기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기에, 아이를 옮기냐 마느냐 하나로 이렇게 다툰다.
아이 침대로 옮기면 안전하고, 습관형성에 도움이 된다. 우리 침대에 두면 우리 몸이 조금 더 편하다. 그러나 돌연사 등의 걱정거리들, 그리고 습관형성의 문제들. 그리고 이 판단을 어렵게 하는 두가지 이슈가 아이의 성장통과 함께 왔다. 바로 영아산통, 다시 말해 배앓이와 첫 원더위크.
첫 원더위크 2주가 지났다. 고약시리, 그때가 내 출산휴가가 끝나서 바깥양반이 집에서 혼자 아이를 보아야 할 때다. 4주차까진 단지 부지런히 분유 먹이고, 기저귀 갈고, 트림 시키고, 재우면 되던 아이가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의 의사표현을 시작한다. 반복되는 신음, 길고 짧은 기합소리로 자신의 불편함, 불만족으로 표현하는데, 아이가 또 잘 먹긴 워낙 잘먹는 편이라 배앓이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산후도우미 없이, 시엄마 친정엄마 없이, 남편없이, 하루종일 바깥양반은 윈더위크와 배앓이를 함께 앓는 아이를 돌봐야 하고, 나는 퇴근하고 나선 새벽돌봄까지, 아직 회복중인 산모를 위해 해야하는 상황이었다는 것.
밤새 앓던 아이가 하룻밤을 잘 자면, 아이는 천사로 보인다. 그래서 세상 효녀라고 글을 썼더니 바깥양반이 감당할 수 있는 소리를 하라며 피식 웃는다. 난 진심인데, 너무하잖아.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 꼬박꼬박 이틀마다 배변을 하는데 아직 한번도 묽은 똥 된똥이 없다. 이쯤하면 효녀지. 아이가 당연히 겪는 통과의례를 나는, 부모의 고통의 카테고리에는 넣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용 쓰는 소리는 성장판이 찌릿찌릿 당겨지고 펴지는 소리, 아이가 우는 소리는 폐와 심장이 튼튼하게 울리는 소리. 그렇게 제 "울음운동"을 마친 아이는, 새벽 네시든 다섯시든 결국엔 아빠를 재워주긴 한다. 그렇게 첫 원더위크가 끝났다. 끝나간다. 이유 없는 투정은 끝나고, 드디어 밤에 네시간식 통잠을 주무시기 시작했다.
7주차에 접어든 아이는 이제 아빠 엄마와 눈을 맞춘다. 빤-히 보면서 이 사람들이 날 봐주고 있나를 감시하는듯, 혹은 아직 희끄무레하기만한 형상을 어떻게든 촛점을 잡아보겠다고 쏘아보기라도 하는 것이냐. 그러나 자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정체감의 위기는, 나와 바깥양반으로 하여금 동백아 동백아 누워서 자거라, 옛 동시를 되뇌이도록 한다. 동백이는, 누워서 잠을 자는 것을 싫어한다. 엄마와 아빠에게 각각 자기가 원하는 포즈가 있다. 엄마에겐 자궁포즈를, 아빠에겐 뱃살 포즈를.
동백아 동백아 누워서 자거라. 나는 동백이라는 뜨뜻한 생체난로를 배 위에 올려두고 11월의 촉촉한 가습기 속 새벽 공기를 코로 킁킁 맡는다. 네시반에 깬 아이가 배앓이로 제법 보챈다. 아빠의 배 위에 올려두면, 그나마 잔다. 그러나 수면교육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아빠가 우선 아기침대에 올려두면, 아무리 깊이 잠들어도 5분 안에 고립감을 느끼고 깨서 울음을 터트린다. 그래서 두시간쯤 아이를 달래고 엎어서 재우고 눕히고 하다가는, 마침내 아이를 또다시 부둥켜 안고 잠에 든다. 설핏 잠에서 깨, 내게 깔리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을 늘 품고.
그리고 바깥양반의 경우도, 동백이는 엄마에게선 자궁포즈를 요구한다. 엄마가 침대 위에서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으면 아이가 스르르 자세를 무너트리다가 엄마 허벅지 위에 잠이 드는데, 옹크린 자세가 영락 없는 자궁 속 그 모습이다. 본능처럼, 향수병처럼, 아이는 아프고 지친 몸과 마음을 자신의 가장 편했던 시공간으로 되돌아감으로써 회복하고자 하는 모양. 문제는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를 보는 바깥양반에게 그 자세가 한없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나는 어차피 누워서 잠을 자는 시간이기라도 하지. 배 위에 엎어서 뜨끈하게 잠이라도 자지. 바깥양반은 허벅지 위에 웅크린 아이로 화장실도 쉽게 가지 못한다.
그렇게, 원더위크가 끝이 났다.
육아를 한다는 것은 그저 버티어 가는 것인 모양인데 그렇게 성장통을 한번 지나온 아이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아빠 엄마는 매일매일 심쿵이다. 배앓이를 풀어주고자 다리 마사지를 매일 해주고 있는데, 그럴 때는 좋아하는 티를 제법 낸다. 머리를 가누기 시작해서, 아빠 배 위에 엎어두면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날 응시하다가 푹 고개를 숙인다. 표정이 풍성해져서 배부르게 맘마를 먹은 뒤에는 얼굴에 만족감이 드러난다. 그중 가장 재미있는 변화는, 나와 바깥양반 모두 눈썹이 짙어 동백이도 눈썹이 짙은데 얼굴이 정돈되어가며 말끔해지는 가운데 그 짙은 눈썹이 점점 뚜렷해져서, 한밤중에 아이가 우는 얼굴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눈썹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다만, 코가 낮아지고 있는듯도 한데.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우리 아이.
오늘도 그렇게 나는 새벽에 깨어나 두시간반의 육아시간을 가졌고, 덕분에 직장엔 한결같이 지각을 했다. 다음주엔 드디어 육아시간으로 탄력근무를 시작한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낼 수 있게 될 것이고, 짧은 휴식 뒤에 다시 아이는 두번째 원더위크를 맞이할 것이다. 2차 원더위크 땐 밤과 낮을 구분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때도 아마 나는 밤이면 밤마다 읇조리겠지. 동백아 동백아 누워서 자거라.
그렇게 아이를 부둥켜안고 하루하루 보내다보면, 이도 나고, 귓바퀴와 어깨잔등에 난 털도 빠지고...바깥양반과 나의 살도 좀 빠지겠지.
문제는 그거다.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살이 안빠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