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감사 인사는 노 땡큐.
- 동백뉴스입니다.
- 맘마노총과 넨네코노총의 총파업이, 첫니 협정 체결이 원만히 이루어짐에 따라 종료되었습니다.
- 김동백 양은 파업 이전의 맘마 취식량을 회복하는 한편, 넨네코에 대한 참여 의지를 밝혔습니다.
- 한편 배냇머리연대가 새머리연합회에 자리를 내주게 되면서, 집단 이탈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나를 옆에 앉혀놓고 다른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는 자리에서, 내가 엄마 배에서 나오기 직전에 태변을 보고 나왔다는 말을 했다. 아이를 낳아놓고 보니 태변이라는 게 엄마 뱃속에 있는 내내 수십 수백번은 이루어지는 일상적인 일이란 것을 알았는데, 어릴 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엄마 뱃속에 똥을 싸고 나오는 그 장면을 상상하며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니, 딸을 낳아놓고 떠올리는 아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여러가지가 새록새록하다. 새까만 태변은 아닐지라도 새까만 배냇머리를 달고 태어난 구석이 나를 닮았다. 머리를 가득 채운 까만 머리가 눈썹까지 이어져 있더니, 이마를 덮은 털이 하나 둘 빠지고 나더니 이제는 배냇머리가 한 올 한 올 빠져나오고 있다. 이르게 첫니가 나고, 이제는 머리갈이를 시작하는 시기.
풍성한 배냇머리는 부모의 소상한 기쁨이다. 양수에 떡져있던 머리카락이 처음 씻겨져서 나오던 모습, 목욕을 시킬 때마다 머릿결을 쓰다듬는 기쁨, 고집 센 직모가 뾰죽뾰죽 까까머리가 되어가던 2개월차의 모습에 이어, 지금은 머리를 감기고 눕혀놓으면 위로 솟구치는 저 모습을 매일 본다. 아이의 미소, 아빠의 손가락을 부여잡는 고사리손에 곁들여 이 부드러운 머릿결을 일찌감치 만질 수 있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게다가, 그 배냇머리에서 나의 어린시절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면.
배냇머리가 빠지기 시작하기까지 140여일, 동백이는 두차례의 고비를 넘겼다. 100일 무렵 잠투정이 시작되었고, 나는 두시간 내내 아이를 안고 재우기 위해 노력한 적이 한두번쯤 있다. 노발락으로 분유를 바꾸고 나서는 배앓이가 사라져, 밤새 고생시키던 일은 거의 없었는데 평소에 늘 하던 팔베개도 거부하고 눕히기만 하면 앙앙 우는 그 모습이 보통 곤혹스럽지 않았다. 연말에 시작된 잠투정은 속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는 거의 없어졌다. 집으로 우린 돌아왔고, 아이는 다시 아빠의 팔베개에 안심을 하고 눈을 붙인다. 아니, 5개월을 채워가는 요즈음은 팔베개를 해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아이의 수면의 깊이가 확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수유파업도 갑작스레 찾아왔다가 한달여만에 사라졌다. 이르게 첫니가 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어느날 불현듯 아랫니가 쌀눈만큼 뾰죽 솟아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보고 첫니임을 알고 얼마나 기쁘고, 또 미안하던지. 수유파업을 시작할 무렵부터 분유통의 꼭지를 깨무는 습관이 생긴 것을 보고 알아차렸어야 하는데, 그래서 미리 미리 잇몸 맛사지를 해주고 간지럽고 아플 때 어루만져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공연히 우리는 아이에게 정체기가 찾아왔겠거니, 줄어든 수유량에 비싼 분유를 버리기가 여러번이었다.
다행한 점은 수면파업에도 수유파업에도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사실. 성격이 느긋하고 유순해, 배앓이에도 불구하고 갓난아기 때부터 수유만은 아주 꼬박꼬박 지키며 잘 먹던 아이다. 2.9kg으로 태어났는데 4개월차에 7.7kg을 찍었다. 평균보다 두달 가량 빠른 발달상황, 덩달아 평균보다 두달 가량 빠른 첫니에 아내의 고민도 갑자기 늘었다. 여자아이가 발달이 빠른 게 좋은 게 아니라며. 성조숙증 같은 문제라면 그것은 열살 무렵에나 고민해볼 문제라며 아내를 달래지만, 나 역시도 첫니며 체중과 신장이며 확확 갑자기 크고 늘어나고 있다는 것에 걱정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몸이 자라는 것과, 신체기관의 성숙은 또 다른 문제다.
배앓이까지 하며 자라놓고선, 그래서 엄마 아빠를 퍽 괴롭혀놓고선 아이는 지금 구르고 몸을 일으키기에 바쁘다. 너무 많이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해서인가, 아이는 틈만 나면 세워달라고 끙끙댄다. 그러면 하릴없이 나는 아이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넣고 아이를 올려세운다. 아이는 높아진 시점에서 방안을 두리번, 다시 눕혀놓으면 이내 낑낑대며 세워달란다.
그런 배경엔 배앓이가 역시 있다. 배앓이로 보이는 아이의 특징적인 모습은 두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버티는 것인데, 신생아 때 배앓이를 할 때 아이를 달래며 안아주노라니 자연히 아이의 두 발이 아빠 엄마의 허벅지에 박힌다. 아이는 그 때부터 서 있는 것을 체험해왔고, 그 뒤에도 외출과 여행을 통해, 늘상 걸어다니는 사람을 무시로 목격해 온 것이다. 얼마나 저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놀고 싶다는 것이냐. 너의 이 일어섬 선망은 말이지.
그래 어떤 날은, 외출을 하고 돌아와 아이의 자켓을 벗겨내다가 후드에, 아이의 얇은 머리카락이 여러 올 빠져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직감적으로 배냇머리 갈이를 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내를 불러와, 후드에 달라붙은 머리카락들을 보여주었다. 한 고비 한 고비 넘겨온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효녀 노릇을 톡톡히 해 온 이 배냇머리와 이별을 시작하고 있는 것. 나는, 그 기쁜 모습에 내 모습을 비추어 보이기도 한다. 아내가 "수십번은 본 사진이네."하며 지겨워하는 것을 알면서도 내 백일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저 삐죽 솟은 머리 봐. 영락없이 아빠 붕어빵이네, 하며.
빽빽한 머릿결을 물려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는, 노 땡큐, 마이 플레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