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동백꽃
"오빠! TV 아래 먼지 좀 봐 내가 어제 하루 종일 닦았어 집 좀 깔끔하게 쓰자."
오늘도 또 나는 우리 아내에게 막 쫓기었다. 내가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한 뒤에 과제를 하러 갈 양으로 주방에서 나올 때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려니까 등 뒤에서 달그락 달그락, 하고 아내의 잔소리가 야단이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르랴, 두 손에 물티슈가 또 얼리었다.
아내(원래는 바깥양반이었는데 최근에 아내로 개명하신 분)이 TV 장 위 먼지를 닦고서 내게 함부로 해내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해내는 것이 아니라 와르륵 소리를 하고 나를 쪼고 물러섰다가 좀 청소를 하고는 또 와르륵 하고 날 쪼았다. 이렇게 청소를 위해 솜씨를 부려가며 여지없이 나를 닦아놓는다. 그러면 이 못생긴(아니 아닌데 그건.) 것은 쪼일 적마다 머리로 땅을 받으며 그 변명이 킥, 킥 할 뿐이다.
이걸 가만히 내려보자니 내 손가락이 터져서 습진이 도지는 것 같이 두 눈에서 불이 번쩍 난다. 대뜸 게임기나 쥐고 달려들어 공부나 과제나 때려칠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헛손질로 게임기를 손에서 떼어만 놓았다.
이번에도 아내가 청소를 좀 했나보다. 바짝바짝 아기를 위해서 먼지를 치운다고 그랬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아내분께서 요새로 들어서 왜 나를 못 먹겠다고 고렇게 아르렁거리는지 모른다. 4년 내내 내가 혼자서 살림을 다 할때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
임시 주부께서 청소를 하면 했지, 남이 설거지하고 나오는데 청소로 잔소리를 하는 것은 다 뭐냐. 그것도 발소리를 쿵쿵 울리며 옆으로 살며시 와선,
"오빠 나 하루종일 애 보는데 청소까지 하느라 힘들어."
하고 긴치 않은 수작을 하는 것이다.
출산하고 최근까지도 아내와 나는 가사분담도 않고 서로 집안이 더러워도 본척 만척 하고 이렇게 나태하게 지내던 터이련만 최근들어 갑작스레 대견해졌음은 웬일인가. 황차 망아지만한 아내분께서 남 주방일 마친 사람 보구.
"내가 여태 4년을 혼자 집안일을 헀는데 뭔 소리야."
내가 이렇게 내배앝는 소리를 하니까,
"그 얘긴 왜 해 나는 지금 독박육아하는데."
또는,
"요리 잘하는 것도 좋은데 청소 좀 해 먼지가 너무 많잖아."
잔소리를 두루 늘어놓다가 동백이가 들을까봐 휙 돌아서서는 아기를 안고 둘이서 깔깔댄다. 별로 화나는 것은 아니지만 애 낳고 좀 여유가 생기더니 이분의 아내께서 미쳤나 하고 의심하였다. 게다가 조금 뒤에는 제 택배박스를 할금할금 돌아보더니, 먼지 닦은 물티슈를 집었던 바른손을 뽑아서 나의 턱밑으로 불쑥 내미는 것이다. 언제 구매했는지 아직도 빳빳한 김이 홱 끼치는 말금한 맨투맨 셔츠 한벌이 내 손에 뿌듯이 쥐였다.
"오빠 옷장에 새옷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모처럼 산 것을 사이즈가 안맞으면 큰일날 테니 여기서 얼른 입어보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이제 내가 옷 사 입혀야지."
“난 그냥 있는 옷 입으면 돼. 애기랑 너 옷 사.”
나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설거지를 하느라 젖은 손으로 그 옷을 한번 입고 걸어두었다.
어쩌다 내가,
"청소 좀 해 내가 아침마다 네 머리칼을 몸에서 떼는 게 하루 일과 시작이야."
하고 웃으면,
"다~ 때가 되면 하겠지 할 때 되면 어련히 할라구!"
이렇게 천연덕스레 받는 바깥양반이었다. 본시 깔끔을 떠는 사람도 아니려니와 또한 더럽다고 손에 물을 묻힐 부지런쟁이도도 아니다. 방이든 집이든 더러우면 차라리 나보고 청소기 좀 돌려달라고 하고 침대로 달아날지언정. 그런데 예쁜 딸랑구를 낳고 나더니 그 뒤로는 먼지만 보면 청소를 하려고 기를 복복 쓰는 것이다.
설혹 내가 먼지를 쌓아놓고 안치운 것이 실례라 하면, 청소하면 했지 "오빠 집 좀 깔끔하게 쓰자."는 다 뭐냐. 그러잖아도 아내는 상전이고 나는 아내와 아이를 먹이기 위하여 분주하므로 일상 굽실거린다. 우리가 이 집에처음 들어와 새간이 딱히 없어서 청소를 자주 안하고 게으르게 지낼 제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자고 제안을 하며 먼지 쌓일 구석을 늘린 것도 아내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내가 혼자 살림을 하는 것을 알고 계시니, 뭐라도 가르치라고 한번씩 나에게 일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네 팔자가 그것이니 열심으로 모시고 살으라고 말씀을 하신 것도 또 어머니였다. 왜냐하면 내가 아내하고 가정을 소홀히 했다가는 모두에게 해가 될 것인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분의 아내께서는 까닭 없이 기를 복복 쓰며 나를 다그치려고 드는 것이다.
바깥양반이 아내가 되었다. 정확히는 아내보단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뒤의 저간의 사정은 뒤의 글과 같다. 어젯밤 나는 아내와 함께 장을 보고 집에 들어와 저녁을 차리고 아침과 저녁 설거지까지 마치니 밤 8시 40분. 샤워를 하고 나오니 9시가 되어 있었다. 그간 아내는 아이를 또 보느라 열심이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보았고, 내가 퇴근을 한 뒤에도 또 과제에 골몰해야 하니, 아내는 부득이 육아 부담을 더욱 떠맡았다.
지난해, 동백이가 태어나고 갓난아기로서 살 때에는 나는 육아를 훨씬 많이 분담했다. 퇴근한 뒤에는 시종 내가 곁에 아이를 두고, 잘 때도 내가 아이를 끼고 잤다. 그런데 이번학기엔 도통 그것은 포기해야 할 상황으로 세개의 수업에서 매일같이 과제는 밀어닥친다. 다행히 장모님께서 열흘에 3,4일 정도는 집에 묵으시면서 아이를 봐주시기에 아내도 어찌어찌 버틸 순 있는 수준이다.
그 사이에, 아내는 우리 집을 마침내 자신이 가꿀 공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내가 도맡아 하기 마련이던 많은 일들을 이제 아내가 착착 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새삼 이 결혼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우친다. 사실 나는 평소에도 주변 사람에게 아내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그리고 살림에 서툰 것에 대해서도 두둔을 하곤 했다. 그냥, 지금은 내가 하고 있으려니 나중엔 하게 되겠지라며. 그리고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고, 연말정산 받은 돈과 그간 모아두었던 상품권을 닥닥 긁어 청소기를 다이슨으로 바꾸고 나서는, 아내는 정말로 열심히, 열심히 청소를 하고 산다. 내가 청소만큼은 신경은 쓰지 않아도 되는 양.
그리고 그것은 아내에게 있어서 이 집이, 머무르기에 탐탁한 곳은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신혼 초까지 집은 그저 거쳐가는 공간이었고, 그 탓은 나에게도 있을 터이다. 고래등 같은 큰 집에, 안락한 삶이 마련되어 있더라면, 집에서도 희희락락 지낼 수 있었을 터이고, 집이 좁으면 마음이 좁아질까, 집이 추레하면 마음마저 추레할까 아내는 바깥양반이 되어 훨훨 놀러 다녔던 것일 게다. 나를 끌고.
그런고로 지금 새삼 청소에 관심을 갖고, 아이를 위해선 뭐라도 하겠다는 것처럼 자정무렵까지 척척 젖병을 닦는, 남들 다 하는, 대단치 않지만 고되고 구차한 그런 집안일들을 육아를 통해 배우는 아내를 보며, 나는 한 사람이 성장하고 어른이 되는 일의 과정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아내는 다만 최선을 다해 행복하고자 했고, 그런 의도와 실천엔 나와의 결혼도, 아이의 탄생도, 아이를 건강하고 아리땁게 기르는 일도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바깥양반으로서의 삶도, 바지런 떠는 아내로서의 삶도 그녀 안에서는 모두 한 묶음인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밤 아홉시까지 바쁠 터이다. 그리고 내일 수업 발표를 위해 더더욱 바쁜 밤을 보낼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내일 1,2,3,4교시까지 마치고 대학원에 다녀와, 집에 도착해 늦은 저녁식사를 챙겨먹고 나면, 그때쯤부턴 나의 휴식도 시작될 것이고, 그때야 나는 아빠 구실을 하게 될 것이다.
괜찮다. 성실하고 깔끔한 아내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