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우유와 졸음운전의 기묘한 관계

아빠는 이제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카페에서

by 공존

"딸기우유로 시켜 애 먹이게. 그게 돈 아끼고 좋잖아."


제주도에서 겨울 한달살이를 할 무렵 나는 바깥양반에게 말했다. 그 이유는 첫째, 내가 원두를 볶아 가져와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먹는다. 그리고 밤에 들어가서도 커피 한잔 마실 시간 정도는 어찌어찌 나온다. 하루 두잔 정도 내가 볶은 커피를 마시는데 굳이 바깥양반 취향의 카페에 끌려가 거기 커피를 먹는 고역을 치를 이유는 없다. 둘째, 아이가 15개월쯤 되어서 카페에 가서는 딸기우유를 자주 시키는데, 그게 퍽 비싸다. 바깥양반 꺼, 내 꺼에 아이까지 사서 먹이려니 제주도의 그 비싼 카페 가격 7,8천원에...바깥양반은, 하루에 정말 적게 잡아야 두군데 카페를 간다. 그리고 세번째는 좀 시시껄렁한 이유인데 나도 좀 나이를 먹었고. 커피를 자연스럽게 줄일 수 있으면 줄이는 것이 현명하니까. 바깥양반의 음료와 아기의 음료 두개를 뺏어먹거나 카페의 생수를 마시면 충분하다.


그런 이유가 겹쳐 실제로 제법 나는 커피를 줄이게 되었다. 예전엔 바깥양반에게 카페를 끌려다니며 하루에 네잔은 예사요 샷으로 따지면 5,6샷은 가볍게 먹곤 했지만, 요즘은 많아야 하루에 3샷. 잔으론 세잔. 때론, 하루에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는 경우도 쉽게 생겨난다. 아침에 커피 한잔 내리려 하면 아기가 식탁 위까지 기어올라온다. 그럼 아빠는 눈물을 머금고 커피머신을 얼른 꺼버린다. 커피를 좀 줄이다보니 밤에 커피를 마시는 일도 잘 없다. 그러니 이게 퍽 고역이다. 아직도 밤을 새울 일은 많은데 커피는 줄이고 있으니 눈을 감고 타이핑을 하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헛소리만 몇줄이 넘어가 있다. 그렇다고 커피를 먹자니 혈압이...심장쪽 혈관이...가슴 통증이...보통 일은 아니다. 운동만이 살 길인데 아직 그럴 여유는 없고.


원래 나는 커피를 마셔도 잠은 잘 자는데 대신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당연히 잠을 더 잘잔다. 그리고 나는 군대를 다녀온 뒤로는 거의 여섯시간 안쪽으로 밤잠을 자고 낮잠을 단 10분이라도 챙겨 자는 생활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단 얘기는,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꾸벅꾸벅 조는 일이 생긴다. 일을 하다가, 수업을 하다가, 운전을 하다가 말이다.


하니, 나의 커피 사용권을 아이의 딸기우유 사용권으로 양도하고 나서는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졸음운전을 하는 일도 정말로 자주 발생한다. 이런 식이다. 지난 일요일엔 전주에서, 아침에 캡슐커피 투샷을 마셨다. 그런 다음엔 밤이 되도록 커피를 조금도 마시지 못했다. 그러나 전날, 새벽 다섯시에 집에서 출발한 피로가 일요일까지 쌓여있는 상태에, 한옥 숙박에서의 잠은 침대와는 달라, 곯아떨어져 자긴 했지만 아침에 몸이 찌뿌둥했다. 이런 이유들이 겹쳐, 점심을 먹고 나서 올라오는데 한시간 정도 운전을 하니 사정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휴게소를 발견하자마자 차를 세우고 잠에 들었다. 유감스럽게도 한 3분은 잤을까. 아이가 깨었고, 우린 다시 차를 몰았다. 다행히도 우리는 무사히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아이가 생기고 이제 나의 커피생활을 아이를 위해, 아이의 미래를 위하여 건강을 챙기려 줄여나가는 것은 뭐랄까...나에게 발생한 적지 않은 상실의 문제이지만 어차피 기호품보다 포기가 쉬운 것도 없다. 하루에 한 두잔이면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를 힘내어 일하기엔 충분하고, 차를 몰다가 졸릴 땐 그냥 세우고 자면 된다. 다만 이 소동의 결말로 마시는 그 딸기우유가, 조금 문제라면 문제랄까. 19개월이 된 아기는 그 딸기우유를 얌전히 먹어주진 않는다. 그 빨대를 휘젓고 빨고 뱉고...이놈아, 아빠가 얼마나 큰 걸 희생한 줄 아니.


아빠의 커피 대신 아이를 위한 딸기우유를 택한 것이 졸음운전의 위험이라면 내가 적절한 거래를 택한 것인지 알 순 없지만 부모의 삶이란 게, 대부분은 이런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이를 가진 뒤의 우리의 선택은 거의 모든 게 리스크를 키운다. 사교육, 이사, 옷 여행 보다 나은 환경과 집 등등. 그것을 감당하려 발버둥을 치다보면, 아마 나의 머리에는 흰머리가 검은 머리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다. 또 그때까지 이 위태로운 주행이 끝나있을 것이란 보장도 없고 말이다.


그러나 아이에겐, 응당 딸기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 아빠에겐 응당, 커피를 줄이고, 아이에게 딸기우유를 양보할 의무가 있다. 쇠잔해가는 육체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해야한다. 아이를 태우고 졸음운전을 할 수 있는 그런 여유도, 훅 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말 테니 말이다. 내가 이 딸기우유에 꼽힌 빨대를 잡아주며 아이의 장난 놀이를 보살필 날은, 글쎄 얼마나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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