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비가 왔다. 조식을 먹을 때부터 새로 옮긴 리조트 산책 때까지. 그런데 날씨가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던 걸 보면 역시나 아내와 함께 한 하루가 좋았던 게다.
방금 전 아내와 함께 욕조에 몸을 담갔다. 아내가 발뒤꿈치 굳은 살도 밀어주고, 스크럽 세안제로 얼굴도 닦아주었다. 뜨거운 물이 따뜻해졌다. 참 편안한 밤이다.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고, 헹궈줬다. 아내가 시원해하는 걸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아내의 기분이 좋아지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자존감을 엄청나게 높여 준다.
저녁은 치앙마이의 TESCO 마트에서 사 온 KFC 치킨과 맥주, 망고, 호텔에서 깜짝 선물로 준 허니문 축하 케이크이었다. 혹시 몰라 TV에 외장하드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지만 우리는 뭘 보는 대신 대화를 하며 저녁을 먹었다.
아내는 서로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지금은 질문하고 대답하고, 서로를 더 잘 알아가는 것에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는 게 너무 재밌다. 특히 치킨을 뜯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아내가 너무 귀엽다. 오늘은 ‘서로가 죽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와 ‘꼭 하고 싶은 것’과 ‘삶에서 소중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내는 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느껴진다. 참 고맙다. 얼른 20억을 벌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더 큰 꿈을 꾸고, 보다 더 명확한 비전을 갖고, 하루하루 차근차근 노력하고 싶어 진다. 그래야겠다. 그럴 거다.
편안하게 산책을 하기 전까지 한바탕 어려움도 있었다. 처음 안내받은 방이 너무 구렸다. 어두침침했고, 느낌도 좋지 않았고, 뷰도 답답했다. 아내가 애써 예약한 방인데 혹시 아내를 나무라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조심스러웠다. 아내를 위로하고 잘 묵었다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적극적으로 방을 바꾸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추가로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하고 결국 방을 옮겼다. 잘한 것 같다.
새 리조트로 옮기기 전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장을 보러 가기 전에는 마음에 쏙 들었던 숙소를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고, 숙소를 떠나기 전엔 열심히 짐을 쌌으며, 짐을 싸기 전엔 조식을 든든하게 먹었다. 지금은 침대에 누워 하루를 스캔하고 있다. 이 리조트로 옮기면서 조금은 조급함이 사라졌다. 지난주 일요일에 처음 치앙마이에 왔으니 일주일 만이다. 일주일 동안 시간을 알차게 쓰려다 보니 내일 걱정을 하며 잠들기도 했다. 그래도 돌아보면 잘한 것이란 생각이 들고 후회되지는 않지만 이제 남은 일정 동안에는 다른 여유로움을 즐기고 싶다.
이곳은 산속이다. 침대에 누워있는 동안 벌써 발코니에 새가 세 번이나 다녀갔다. 까궁 까꿍 하는 소리를 낼 때마다 우리는 어떤 새인가 궁금해서 커튼을 몰래 열어봤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발코니에 새가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자연과 함께 하는 리조트다.
내일은 비가 좀 덜 오면 좋겠다. 예쁜 풀장도 즐기고, 햇살이 섞인 풍경도 보고 싶다. 이제 오늘 밤, 내일 밤이 지나면 한국의 밤을 맞이하러 떠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게 되니 아쉽기도 하고, 이제 또 내 자리에서 내 역할을 할 생각에 두근거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