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여덟째 날, 사자로 변신하는 아내

by 이태화

“마지막 밤이다.”


아내가 말했다. 6월 예식과 7월의 파티를 모두 마치고 온 신혼여행이었다. 첫 신혼여행은 6월에 전주와 합천으로 갔고, 두 번째 신혼여행은 광주로 갔다. 치앙마이는 정말 신혼여행 기분이 잔뜩 드는 나름 세 번째 장소다. 신혼이 언제까지인지는 우리가 정하기 나름이니 오늘은 신혼여행 마지막 밤이 아니라 세 번째 신혼여행 마지막 밤이다. 게다가 네 번째 신혼여행은 호주로 계획했다. 음하하!


오늘은 리조트에서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기로 한 날이다. 나름 여유롭게 일어나 조식을 먹으러 나갔다. 그런데….. 아내가 빗물에 젖은 길에 미끄러져 발을 다쳤다. 지금도 그때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하고 아프다. 아내 발에서 피가 나는 걸 보고 내 얼굴과 함께 온 마음이 구겨지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아플까…… 그냥 차를 불러서 내려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잠이 덜 깨서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내가 좀 더 일찍 깨웠으면 다치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나도 모르게 아내가 발을 다친 것이 내 탓인 것 같은 괴로움도 더해졌다. 하지만 그 순간에 아내를 먼저 챙겨야 한다. 나의 괴로움, 나의 후회는 덮어두고 아내가 괜찮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잘 되지는 않았지만 생각이라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응급처치를 하고 식당에 들어섰는데 아내가 애써 웃었다. 많이 아플 텐데 괜찮아하려는 게 느껴졌다. 고맙기까지 했다.


아침을 먹고 로비의 전망 좋은 소파에 드러누웠다. 소파가 넓어서 침대 같았다. 잠시 여유를 즐기며 수영장 쪽을 바라보기도 하고, 잠깐 졸기도 하고, 아내가 내 수염을 뽑으며 놀기도 했다. 그러기로 한 것처럼 여유로웠다.

에프터눈 티를 마실까 말까 고민하다가 방으로 갔다. 아내는 오모리 참치김치 사발면을 먹었고, 나는 미니 파인애플을 먹었다. 내가 수영장에 가고 싶어 하는 걸 안 아내는 수영장에 가자고 했다. 발을 다쳐서 물에도 못 들어가고, 더 놀고 싶은 마음이 들 텐데 나를 위해 수영장에 가자고 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천사다.


그런 천사가 아픈데 수영을 하고 들어와서 아내를 힘들게 했다. 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닐 때 염려가 되긴 했는데 다친 곳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아내를 도우려다 되려 아내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호텔 로비에서 응급 약 박스를 빌려 걸어 올라오며 내 안에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을 거친 숨으로 쏟아냈다. 소독을 하고도 저녁을 먹을 때까지 아내는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미안하다고도 하고, 화해하자고도 했는데 아내는 싸늘했다. 순간순간 올라오는 짜증과 답답함을 혼자 잘 추슬러야 했다. 저녁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고, 다시 방으로 들어와 더 얘기를 나누고 나서야 괜찮아졌다. 돌아보니 여유로웠지만 답답한 순간들이 많았던 하루다. 하.........................................................................................................................................................

치앙마이 마지막 밤을 냉랭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갈 때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생각했다. 내일까지 냉랭하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아찔하고 토할 것 같았다. 결국 그런 내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오늘을 잘 살아야 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금, 아내가 괜찮아져서 다행이다. 오늘 마음 편하게 아내를 껴안고 잘 수 있는 것이 축복이다. 발도 아프고 마음도 아팠을 텐데 함께 노력해준 아내에게 감사하다.


괜찮아진 아내가 계속 뭐가 땡긴다며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내는 참 귀엽다. 내 가슴에 털을 뽑고, 수염도 뽑고, 우리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책을 찾아주고, 동영상을 보며 얻은 통찰을 나누며 아내는 무서운 사자가 아닌 귀여운 아기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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