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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Mar 15. 2024

수능까지 11개월의 대장정

샤부샤부

 토요일은 샤부샤부 먹는 날.

샤부샤부는 몇 년 전 고3이었던 첫째 아이를 위한 스페셜 메뉴였다. 아이가 수능을 보는 11월까지, 11개월 간의 샤부샤부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외식을 꺼려하던 시기였다. 집밥도 지겹고 배달 음식도 매번 같은 메뉴를 먹다 보니 질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음식을 해 먹기 위해 재료 하나하나를 사다 보니 재료 낭비도 무시할 수 없었다. 1인 가구를 위한 메뉴라고 생각했던 밀키트에 관심이 갔다. 생각보다 밀키트 메뉴다양했다. 다듬어진 재료들과 양념장으로 구성된 밀키트는 재료 낭비 없이 편리하게 요리다운 요리가 가능해 보였다.


고추잡채꽃빵, 찹스테이크, 밀푀유나베 밀키트를 주문했다. 재료가 다듬어져 와서 물에 한 번 헹구기만 하면 재료 준비는 끝이 났다. 주말에 세 가지 음식을 해 먹으며 가족들은 요리과정과 맛에 만족했다. 첫째 아이는 특히 밀푀유나베가 맛있다며 다음에 또 해달라고 했다.


 수험생인 아이에게 아이의 건강과 취향을 고려한 음식을 찾고 있었다. 면킬러인 아이에게 고기, 야채에 후식으로 칼국수 사리까지 나와 아이 모두가 만족할만한 메뉴였다. 하지만 매번 밀키트를 사 먹을 수도 없고, 밀푀유나베는 야채와 고기를 켜켜이 쌓아서 보기 좋게 냄비에 담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번거롭지 않아야 자주 해 먹을 수 있기에 모양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영양과 맛에는 차이가 없는 샤부샤부를 해 먹기로 결정했다.


 샤부샤부는 얇게 저민 소고기와 갖가지 채소를 끓는 육수에 즉석에서 데쳐서 양념장에 찍어 먹는 요리다.

샤부샤부용 고기와 청경채, 숙주, 배추, 버섯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칼국수 사리를 준비했다. 육수는 다시마, 멸치, 무, 대파 등을 이용하고 동전 육수까지 넣으면 완성이었다.


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주말이면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준비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 저녁이면 식탁 중앙에 휴대용 버너가 놓이면서 수험생 아이의 만찬 준비가 시작되었다. 고기와 야채를 먹고 그 육수에 칼국수를 끓여 먹고 3차로 죽까지 끓여 먹고 난 아이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며 흐뭇했다. 그렇게 시작된 샤부샤부는 아이가 수능을 보는 11월까지 계속되었다.


 '토요일엔 짜파게티 먹는 날'이라는 광고처럼 우리 집에선 '토요일엔 샤부샤부 먹는 날'이 되어 있었다. 야채를 즐겨하지 가족들에게 야채를 골고루 먹을 수 있는 기회라며 주말이면 샤부샤부를 준비했다.


주말마다 샤부샤부를 먹은 지 서너 달이 지나자 둘째 아이는 이제 샤부샤부 그만 먹으면 안 되냐고 했다. 질릴 만도 한데 그동안 협조를 잘해주고 있었다. 수험생인 아이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샤부샤부에 질려갔다. 다른 식구들을 고려해 수험생인 아이에게 1인 샤부샤부를 해줬다. 가족과 함께 먹는 샤부샤부는 한 달에 한두 번만 함께 하는 걸로 하고.


 대학생이 된 아이는 그때를 추억하며 이렇게 말한다.

"고3 때  좋았던 건 매주 엄마가 내가 좋아하는 샤부샤부 해주고 딸기를 매일 먹을 수 있게 해 준 거야."

다행이다. 힘든 고3 시긴에 좋은 기억도 있어서. 하지만 둘째는 그 해 이후로 샤부샤부를 멀리 하게 됐다.


 집에서 샤부샤부를 해먹은지가 언젠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오랜만에 야채를 골고루 먹을 수 있는 샤부샤부를 준비해볼까 한다. 고기와 야채 그리고 칼국수와 죽까지 코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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