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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미수 Mar 22. 2024

한 달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

미역국

 결혼하고 10년쯤 됐을 무렵 내 생일이었다. 생일을 앞두고 미역을 불리던 중 문득 언짢은 마음이 들었다.

'내 생일까지 내가 미역국을 끓여야 하나?'

늘 끓여 오던 미역국이었지만 그날따라 내 생일엔 내가 끓인 미역국이 먹기 싫었다. 그동안 엄마는 본인의 생일 때마다 손수 미역국을 끓이셨는데. 엄마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내년부턴 내 생일엔 자기가 미역국 끓여줘. 내 생일에 내가 끓여 먹기 싫어졌어."

"나 한 번도 안 끓여봤는데."

"레시피 검색해서 하면 되지. 처음엔 내가 도와줄 수도 있고."

"자신 없는데."

"자기가 끓여주면 먹고 안 끓여주면 내 생일에 난 미역국을 못 먹는 거 거지."

"그래도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어야지."

협박 아닌 협박이 되고 말았다.


그다음 해 내 생일이 되자 남편은 레시피를 찾아 미역국을 끓였다. 예상보다 맛있었다. 소금과 간장을 얼마나 넣었는지 짭조름하긴 했지만 고기와 미역을 푹 끓여 깊은 맛이 났다.

아빠의 미역국을 처음 맛본 아이들의 반응은 성공적이었다. 맛있다며 자기 생일에도 아빠가 끓여달라고 했다.

나는 소리 없는 환호성을 외쳤다.

나는 음식을 할 때 간을 세게 하는 편이 아니다. 남편의 짭조름한 미역국이 아이들의 입맛에 적중한 거다.

"그럼 이제부터 아빠 생일에만 엄마가 끓이고 엄마랑 너희들 생일엔 아빠가 미역국 끓이는 걸로 하면 되겠다."

남편은 곤란해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분위기상 어쩔 수 없이 우리 집 미역국 담당으로 임명되었다.


 미역국이 맛있는 음식이라고 느낀 건 첫 아이 산후조리를 할 때였다. 아이를 낳기 전 산후조리하는 동안 한 달 동안은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한 달 동안 질려서 미역국을 어떻게 먹냐며 난색을 표했다.

산후조리를 시작하며 엄마는 곰국 끓이는 냄비에 미역국을 한 통 가득 끓이셨다. 그러곤 정말 한 달 동안 미역국을 매일 한 끼 이상 먹게 하셨다. 하지만 희한하게 질리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 미역국이 건강에도 좋지만 맛있는 음식이라는 걸. 한 달 동안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대단한 음식이라는 걸.


 미역에는 칼슘과 아이오딘이 많아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등 건강에 도움이 된다. 미역국에 넣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미역국을 즐길 수 있다. 쇠고기부터 전복, 조개, 굴, 황태를 넣기도 하고 참치캔을 넣는 이색적인 레시피도 있다. 미역국 라면이 시판이 될 정도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듯하다.

부가적인 재료가 없이도 참기름과 간장만으로도 맛난 미역국을 완성할 수도 있다. 미역국은 맛과 영양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재미까지 선사한다.


 남편의 미역국은 언제나 성공적이었다. 이젠 미역국이 먹고 싶으면 나보다 아빠를 찾는다.

"아빠, 나 미역국 먹고 싶은데."

남편은 말로는 귀찮다고 하면서 몸은 이미 미역을 불리고 있다.

"자기가 끓인 미역국이 제일 맛있어."

나도 옆에서 거든다.


 미역국은 끓일수록 맛있다. 먹을 때마다 데워먹게 되다 보니 마지막에 먹는 미역국이 제일 맛있다. 미역에서 우려낼 수 있는 최대치가 나와서인지 깊은 맛이 살아있다. 오늘은 제일 맛있는 미역국을 먹으려고 한다. 며칠 전 남편 생일 끓인 미역국을 데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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