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비빔밥으로 드세요."
첫아이를 임신하고 임신육아교실을 갔을 때였다. 임산부의 영양에 대한 강의였다. 강사님은 집밥을 권장하지만 외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메뉴는 비빔밥으로 권해드린다고 했다. 외식을 하면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기 쉽지 않은데 비빔밥은 영양소 섭취면에서 산모에게 바람직한 메뉴라고 하셨다. 워낙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 수제비, 칼국수, 짬뽕 등이 주외식 메뉴였다. 강의를 들은 이후엔 양심에 찔려 비빔밥을 먹으려고 노력했다.
집에선 식당에서 먹는 비빔밥처럼 해 먹긴 쉽진 않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나물을 5가지 이상은 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있다. 요즘은 반찬가게에 비빔밥용으로 나물반찬을 구성해 놓아 사다 비비기만 하면 되지만 그마저도 자주 안 먹게 된다.
내가 이유식을 잘못한 건지 아이들이 나물을 즐겨하지 않는다. 다듬고 데치고 무치고 손이 많은 가는 일에 비해 식구들이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도 나물 무치는 걸 멀리하게 됐다. 국을 끓이거나 고기를 볶는 요리가 보기에도 푸짐해 보이고 가족들이 더 선호하다 보니 주메뉴로 자리 잡았다.
삼색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을 우리 집에서 먹는 날은 명절 연휴다. 명절에 차례가 끝나고 나면 형님은 우리에게 줄 삼색 나물을 반찬통에 넣으신다. 형님이 나물을 담아갈 거냐고 물으셔 비빔밥 한 번 해먹을 정도만 가져간다고 한 것이 언젠가부터 명절 연휴에 비빔밥을 해 먹는 게 공식화되었다.
고이 담아 온 나물을 연휴 중에 양푼비빔밥을 해 먹는다. 김이 솔솔 나는 따뜻한 밥에 계란을 부쳐 넣고, 삼색나물을 넣고 고추장을 듬뿍 넣어 매콤하게 비벼 먹는다. 골고루 먹으라고 일부러 양푼에 한 번에 넣고 비비지만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골라먹는다.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 중 도라지의 인기가 가장 낮다. 남편마저 도라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몸에 좋은 음식이라며 서로 양보(?)하는 훈훈한 식사 시간이 된다.
비빔밥에 어떤 나물이 들어가야 하고, 몇 가지 이상의 나물이 있어야 하는 규칙은 없다. 사실상 조리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아 집에 있는 재료들을 아무거나 넣고 고추장 한술과 참기름을 둘러 비벼 먹으면 되는 매우 간편하고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메뉴다. 제대로 만들기 위해 비빔밥에 들어가는 재료들의 맛 조합을 고려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매일 아침이면 마트에서 메시지가 온다. 금일의 세일 행사를 알리는 메시지다. 금시금치였던 시금치가 오늘의 행사 품목이다. 시금치 1단 1,500원. 착한 가격이다. 1인 3단 한정으로 3단까지 구매 가능했지만 시금치 한 단만 샀다. 어제 구매한 상추를 다듬고 데치고 무칠 예정이다. 고기를 싸 먹고 남은 상추와 며칠 전에 무쳐 둔 콩나물을 넣고 비빔밥을 만들 거다. 계란 프라이는 필수, 맵기는 각자의 취향대로.
세계 항공업계 콘테스트인 기내식 어워드에서 1등 경력을 가진 비빔밥이 오늘의 저녁 메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