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토박이 소녀, 공중파 아나운서 되다.
제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저는 어땠을 것 같으세요? 처음부터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을까요?
저는 아나운서를 오랫동안 했었고, 지금은 스피치를 가르치고 있으니까 '말을 처음부터 잘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던 고민들 대부분이 제가 했던 고민입니다. 지금도 신경을 쓰는 부분이고요.
진짜냐고요? 네, 진짜로요. 저는 타고나게 말 잘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었거든요.
어떤 아나운서 분들은 "네" 한 마디만 해도 누구나 돌아볼 만큼 예쁜 목소리를 가지셨더라고요. 타고난 성대, 너무 부럽습니다. 타고난 말솜씨도 너무 부럽고요.
저는 아니거든요. 목소리가 좋아서 아나운서 꿈을 꾼 게 아니고, 말이 청산유수라 옆에서 아나운서 감이라 손꼽아 줬던 게 아니에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서 노력해서 어울리는 목소리를 만들어냈고 잘 말하기 위한 연습을 했습니다.
일단 저는 표준어를 배우는 것에서부터 많이 힘들었어요. 경상도에서 태어나서 20년을 경상도에서만 살았거든요. 꿈이 아나운서라고 주변에 이야기하면 다들 걱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어요. 경상도 아이가.. 되겠냐고.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경상도 사투리가 고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숫자에서도 심지어는 영어를 말하는데도 경상도 사투리가 진하게 섞여 들어가요. 문장에서 억양이 많이 다른 건 아시겠지만 단어 안에서도 억양이 달라요. 표준어를 익힌다는 게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습니다.
또 약간의 비염이 있어서 콧소리도 많이 났습니다. 표준어는 경상도 사투리에 비해서 대체로 억양을 올리는 부분이 많아서 그 때문에도 콧소리가 많이 들렸습니다. 지금도 신경 쓰지 않고 톤을 높여 말하면 콧소리가 섞여 나요.
치과의사가 길이를 재어보고 공식 인증까지 한(?) 혀 짧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충치를 치료하러 간 것 같은데, 왜 그러셨는지 그 의사 선생님이 실제 자를 가지고 와서 제 혀 길이를 재어 보시더라고요. 그리고는 평균적인 길이보다 좀 짧다고 하시더군요. 설소대 자르는 수술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저희 모친의 결정으로 수술을 하지는 않았죠.
좋은 목소리는 폐활량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저는 폐활량도 크지 않았어요. 남들 한숨에 여유롭게 20m 수영할 때 저는 여러 숨 쉬면서도 죽을 뻔했어요. 대한항공 국제선 승무원 시험을 치른 적이 있는데, 그때 마지막 체력시험에서 20m 수영을 해야 했거든요. 20m가 별 건가 싶기도 하시겠지만, 저한테는 꽤나 힘든 거리였습니다. 시험을 치러야 했으니까 수영을 배우긴 했지만, 운동신경마저 없어서 남들 여유롭게 건널 때 저는 죽을힘을 다해서 헤엄쳤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저는 아나운서가 되기에 악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두 개가 아니죠? 하지만 결국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중파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물론 아나운서가 된 이후에도 말하기 공부를 꾸준히 했어요. 목소리라는 것도 계속 관리를 해줘야 하거든요. 선배님들을 꾸준히 귀찮게 해 드렸죠.
"선배님! 저, 이거 녹음 좀 들어봐 주세요."
"어제 녹음이랑 좀 달라지지 않았어요? 어떠세요 선배님?"
"어제 이 뉴스에서는 톤을 좀 높여봤는데, 듣기 괜찮으셨어요?"
톤을 높였다가 내렸다가, 말투를 심각한 느낌으로 바꿨다가 부드럽게 냈다가, 목소리를 크게 냈다가 작게 냈다가. 라디오 녹음 부스 하나는 아예 제 것인 양 하루 종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발성연습을 하다 지나가시던 다른 선배님들이랑 눈이 마주칠 땐 좀 쑥스럽기도 했지요.
그렇게 저를 가꿔가며 10년간 아나운서로 활동을 했는데요, 덕분에 좋은 평가도 많이 받았습니다. 프로그램의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와 함께 시청자위원장상도 받으면서 뉴스와 TV, 라디오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활동했지요.
프리랜서 아나운서, 스피치 강사로 활동하면서도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 많이 들어요. '오~ 저 아나운서 목소리 좋다~' 옆 사람에게 귓속말을 건네는 청중의 이야기를 제가 들은 적도 있습니다.
경상도 출신에, 비염 있고, 혀도 짧고, 숨도 짧았던 제가 공중파 아나운서가 되고,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도 듣고, 이렇게 스피치를 가르치기까지. 타고난 목소리가 아니라 제가 만들어온 저의 목소리, 그 안에 담긴 비결 아낌없이 공개하려고요.
'에이.. 그래도 뭐 아무리 못했다고 해도.. 아나운서가 될 만큼은 뭔가 괜찮았겠지? 조금만 연습해도 괜찮았겠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래도 믿지 않으실 분들을 위해 저 아닌 다른 분의 이야기를 덧붙여 볼게요.
스피치 강사로 첫 발을 내디딘 날 온라인 스피치 클래스를 열어서 첫 수업을 하고, 바로 그다음 날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하루 만에 남편한테 목소리가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던 거예요. 주식투자강의를 시작하신 분이셨어요. 전문강사님, 전문 방송인 아니었고요. 직장 다니시면서 주식을 조금씩 시작하셨는데, 그게 바탕이 되어서 주식 초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죠. 그런데 조금만 말해도 목이 너무 아파서 제 수업이 열리자마자 신청을 하셨었는데, 하루 만에 목소리가 달라지셨던 거예요.
일주일 동안 저랑 함께하시고서는 "2시간 동안 수업했는데 목이 하나도 안 아파요!"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좋은 조건에서 약간의 연습으로 목소리를 바꿨던 게 아니라 그 어떤 조건에서도 목소리는 누구나 바꿀 수 있습니다!
믿으시죠?
지금부터 같이 바꿔봐요!
메인 이미지 출처 : flatic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