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량: 너무 맑은 날의 공허

완벽한 맑음이 불편한 순간

by Hsun


운량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는 정도를 말한다.

0은 구름 한 점 없는 맑음, 10은 온 하늘이 구름으로 뒤덮인 흐림을 뜻한다.


가을 하늘은 유난히 맑다.

햇살은 깊어지고, 공기는 투명해져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하늘은 너무 깨끗해서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랗고, 모든 선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무겁다.


세상이 이렇게 맑은데, 나는 왜 이토록 흐린가.


사람들이 환하게 웃는 거리를 걷다 보면 나만 느리게 걸음을 옮기는 듯하다. 특별한 일도, 의미 있는 하루도 아니었는데 괜히 죄책감이 밀려온다.


몸의 건강이라면 이런 ‘맑음’이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유명한 광고 카피처럼 깨끗하고, 투명하고, 자신 있게!

하지만 마음의 건강은 조금 다른 듯하다.

가끔은 이렇게 완벽히 맑은 날이,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에서 나는 어쩐지 어둡고, 조금은 무거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높고 맑은 날이면 세상이 평소보다 더 환하게 웃는 것 같다.

그 속에서 혼자 공허해지는 감정을 느낀다.

주변의 밝음이 내 어둠을 비추는 듯해서, 괜히 움츠러든다.


이 좋은 날에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을까.

모두가 기분 좋은 산책을 즐기고, 운동을 하고, 어디론가 향하는데 나는 그저 창가에 앉아 하늘만 본다.

맑은 날의 외로움은 흐린 날보다 훨씬 투명하게 스며든다.



몸은 깨끗할수록, 수치가 ‘정상’일수록 안심이 된다.

건강검진 결과표에 적힌 숫자들은 오차범위가 0에 수렴할수록 좋다.

하지만 마음의 건강은 그렇게 수치화하기 어렵다.

언제나 맑고, 밝고, 자신 있게만 살 수는 없다.

가끔은 뿌연 마음도 필요하다.


몸은 맑고 깨끗해야 건강하지만, 마음은 불투명해야 견딜 수 있는 날도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나를 돌보게 된다.



하늘이 늘 맑을 수 없듯, 사람의 마음도 매일 같을 수는 없다.

운량이 바뀌어야 대기가 순환하듯, 감정의 흐림은 우리를 숨 쉬게 한다.


가끔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괜찮고, 특별하지 않은 하루여도 충분하다.

햇살이 너무 선명한 날에는 나를 보호할 작은 구름이 필요하다. 그 구름이 마음을 덮고 있을 때, 나는 비로소 나를 잃지 않는다.


운량 0의 세상 속에서도 내 마음엔 조금의 구름이 머물기를.

그 적당한 흐림이 나를 지켜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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