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동의 오후, 미뤄진 추위
이상고온은
평년값을 뚜렷하게 웃도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온이 나타나는 상태다.
달력은 겨울로 넘어가는데, 낮은 아직도 가을이다.
마치 오늘처럼, 입동에 20도.
평년이라는 말에는 익숙한 위안이 들어 있다.
평년보다 따뜻한 날이 늘고, 초겨울의 반팔 사진이 타임라인에 떠다닌다.
11월의 공원에는 아직 초록색이 남아 있다.
종종 수치나 그래프뿐 아니라 체감온도과 주변의 리듬으로 그 변화를 느낀다.
붕어빵 노점이 늦게 나오기 시작한 해.
첫서리가 늦게 내린 해.
스케이트장의 개장일이 미뤄진 해.
사소한 생활의 달력이 먼저 변한다.
아침 뉴스를 보며 '입동'이라는 걸 알았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오늘,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단어가 주는 차가움이 어색해진다.
햇빛은 따스하고, 바람은 반갑다.
출근길, 목에 스카프를 둘렀다가 곧 가방 속에 넣었다.
지하철 승강장에는 두꺼운 패딩과 가디건이 나란히 서 있다.
겹쳐 입은 계절처럼, 도시의 시간도 겹쳐진다.
미세먼지 탓인지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오후,
햇빛과 정체된 대기 순환,
그리고 도시의 숨결이 서로 뒤엉켜 오늘의 날씨를 만들었나 보다.
달력은 겨울인데, 아직 가을이 떠나지 못했다.
계절의 열도, 마음의 열도 아직 식지 않았다.
온난한 공기가 보이지 않는 담요처럼 대기 상층을 덮으면
고기압의 맑은 하늘 아래 지면은 오래 데워진다.
포장도로와 통유리로 뒤덮인 건물들, 금속 난간은 낮 동안 흡수한 열을 품고 있다가 오후 내내 아주 천천히 돌려준다.
횡단보도 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 아직 가을의 풍요로운 기운이 느껴진다.
입동에 20도라는 사실이 주는 괴리감에 잠시 길을 잃었다.
장롱 깊숙이 넣어둔 스웨터를 꺼낼까 말까,
난방을 켤까 말까 손이 망설이게 된다.
유예는 때로 위로이고, 때로 불안이다.
아직 춥지 않다는 안도와
곧 몰려올 추위를 걱정하는 조급함이 함께 떠오른다.
내가 미루고 있는 것은 계절일까,
아니면 어떤 결정들일까.
미루어둔 추위처럼 미루어둔 말과 일들이 마음 한편에서 자꾸 두드린다.
유예된 겨울은 미루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미루기에는 책임이 있다.
언젠가 얼어붙을 시간을 위해 오늘을 정리한다.
창틀의 벌어진 실리콘을 채우고,
옷장의 계절을 바꾸는 것처럼
말의 순서를 다듬고, 마음의 방에 오늘의 온기를 담아 비워둔다.
유예는 준비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겨울은 잠시 미뤄졌을 뿐,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