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출-검토-보완 사이
소강상태란
비나 바람 같은 기상 현상이 완전히 그치지 않았지만, 일정 시간 뚜렷이 약해지는 때를 말한다.
비가 완전히 그친 건 아니지만 한동안 세력이 주춤할 때가 있다.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를 지나 약해진 빗방울 같은 고요가 머문다.
오늘의 마음이 딱 그렇다.
목요일, 제출 버튼을 눌렀다.
수많은 검토 끝에 드디어 한 달 만에 보고서를 제출했다.
모니터의 푸른빛이 덜 날카롭게 보였다.
의자 등받이에 등을 붙이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자, 몸에서 피어오르던 열기가 가라앉듯 긴장감이 약해진다.
쓰는 동안 나는 사람에게 지쳤고,
문장 사이에서 수시로 길을 잃었다.
수십 번의 문장 교정과 수치 검증을 통과하면서 나를 지치게 한 건 두서없는 글보다 글을 쓰는 사람과 업무 분장 사이의 마찰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쪽에서는 잘 마무리해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작은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이 모순을 그대로 껴안은 채,
잠깐의 평온을 등받이에 기대 본다.
완결은 아니어도,
지금은 내 안의 소음이 눈에 띄게 잦아들었다.
기록을 오래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안다.
주춤하는 구간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다.
그 시간 동안 대기는 에너지를 재배치하고, 수많은 미세 입자들이 새로운 자리로 움직인다.
보고서도 제출과 검토, 질의와 보완의 사이에서 흐름을 재정렬한다. 문단과 문단을 모아 글을 만들고, 조각난 기록을 표로 묶던 시간, 나는 한 문장의 주어를 세 번쯤 바꿨다. 책임의 방향을 확실히 하고, 공들인 팀들의 노력을 문장 구조 안에 정확히 배치하기 위해서였다.
문장이 주춤하는 사이, 말의 무게 중심이 맞춰졌다.
어느 회의에서 누군가의 한마디가 마음을 긁고 지나갔을 때, 나는 반사적으로 방어하려 했다.
그러나 곧 숨을 고르고 자료의 문장과 숫자를 앞에 놓았다. 표현을 다듬고, 근거를 묶고, 핵심을 다시 담았다.
감정은 한 박자 물러섰고, 근거는 반 박자 앞으로 나왔다.
속도는 조금 느려졌지만 방향을 얻었다.
느려지는 동안 진짜 논점이 드러났다.
점심시간에 바람이 평소보다 덜 매서웠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채 15분을 걸었다. 주춤한 바람 사이로 햇빛이 번지고, 눈앞은 잠시 눈부심에 흐려졌다.
카페에서 기다리던 진동벨은 한동안 울리지 않았고, 그 틈에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얻었다.
사람에 지쳐 있었지만,
결국 사람과 함께 건너야 하는 강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과업은 설계와 운영, 검증과 수정으로 나뉜다.
그 리듬은 강우의 리듬과 닮았다.
한 차례 강하게 지나간 뒤 약해지는 구간이 있어야 지면에도 물이 스며든다. 스며듦 없이 쏟아부은 물은 금세 흘러가 버린다.
업무도 그렇다.
끝없이 몰아치면 기록은 남아도 흡수가 없다.
그래서 스쳐 지나간 것들을 잠깐 붙잡아 보았다.
숫자 옆에 붙은 메모의 표정, 동료가 밤늦게 남긴 이모지 하나, 굵은 폰트로 표시한 성과의 의미.
평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한쪽으로는 환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과 부족했다는 지적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서로 기대어 있다. 이상하게도 둘은 서로를 약화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같이 있을 때 더 선명해지는 듯하다.
그래서 오늘은 뭔가를 벌이기보다 회복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동안 마시지 못한 물을 한 컵 더 마셔 몸의 가용수분을 채우고, 저녁에는 걸으며 마음을 회복할 생각이다.
이런 작은 설계가 내일의 속도를 다시 붙여 준다.
우리는 안다.
오늘의 평온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오늘의 평온이 있어야 내일의 속도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도.
또다시 비가 세질 수 있다.
추가 자료 요청이 쏟아질 수도 있다.
일정이 당겨지고, 문장들이 또 다른 규격으로 갈아입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오늘의 주춤을 떠올릴 것이다.
속도가 늦춰지는 동안 가라앉은 것들,
분리된 것들,
스며든 것들.
그 사이에서 찾아낸 자신만의 리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