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오기 전 스며드는 냉기
서리는 대기 중의 수증기가 차가워진 지상의 물체 표면에 얼어붙어 생긴 얼음 결정이다.
밤사이 땅과 차창, 난간 같은 표면이 복사 냉각으로 먼저 식고, 그 위에서 공기 중 수증기가 물방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승화해 맺힌 얼음막을 우리는 서리라고 부른다.
눈처럼 쏟아지지도, 우박처럼 소리를 내지도 않는다.
대신 아무 말 없이 다음 계절로 넘어간다는 신호를 보낸다.
나는 이맘때 느낄 수 있는 차가운 공기를 좋아한다.
이제는 후덥지근하지도, 아직은 칼날 같지도 않은,
적당히 서늘한 공기 속의 코끝 시림을 좋아한다.
밤새 주차돼 있던 차 유리창의 하얀 얼음막,
화단 잎사귀 끝에 반짝이는 서리,
숨을 길게 내쉴 때마다 공기 중에 잠깐 머무르다 사라지는 하얀 입김.
올해도 그 시기가 오고 있다.
서리는 지표면이 복사 냉각으로 서서히 식고, 공기 속 수증기가 포화에 가까워질 때 물방울이 되기보다 곧바로 얼음 결정이 되어 세상 위에 흰 결을 남긴다.
몸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확 무너지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천천히 체력이 떨어진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업무 메일, 뒤로 밀리는 연차, 늘어나는 야근과 줄어드는 잠.
그러는 사이 내 안의 열기는 조용히 빠져나가고, 기쁨과 여유, 호기심 같은 것들 위로 얇은 얼음막이 생긴다.
삶이 멈추지는 않지만, 어느 날 아침 문득 아무것도 하기 싫은 마음으로 눈을 뜨게 된다.
감기처럼 몸의 이상 신호는 대개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며칠 전부터 변화를 보여준다.
목이 살짝 칼칼했고, 코가 조금씩 막혔고, 하루면 풀리던 피로가 이상하게 오래갔다.
번아웃도 다르지 않다.
몸이든 마음이든 단번에 고장 나지 않는다.
한계선 아래로 내려간 채 방치된 시간이 길어지면,
결국 티가 나게 된다.
서리는 그 한계선을 눈으로 확인하게 해 준다.
어쩌면 서리는 시야를 일부러 가로막는 방식으로 잠시 멈췄다 다시 시작하라고 말해 주는 것 같다.
햇빛이 비추면 금세 사라지지만, 사라졌다고 해서 밤의 냉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삶도 항상 따뜻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영하로 내려가는 계절도 있다.
마감이 몰린 달, 가족이 아픈 시기,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달아 겹쳐 오는 해.
그 모든 것을 피할 수 없다 해도, 내 몸의 서리를 한 번쯤 살펴보는 순간만큼은 놓치면 안 된다.
눈이 내리기 전에,
한파주의보가 발효되기 전에,
조용히 내려앉은 작은 얼음 결정들을 한 번쯤 제대로 바라봐 주어야 한다.
나를 좀 더 오래, 그리고 따뜻하게 지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