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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Apr 29. 2021

라즈베리 보트를 탄 난민

Miika Nousiainen, Vadelmavenepakolainen

미코 비르타넨 핀란드 남자다. 유엔이 선정한 세계 행복지수 1위인 나라(2018~2020) 국민이면 행복해도 될 것 같은데, 그는 불행하다.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 지상낙원 스웨덴이 옆에 있기 때문에.


핀란드 남동부의 중소 도시 코우볼라에서 태어난 미코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유람선을 타고 방문한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아름다운 풍경들과 라즈베리 보트 모양의 캔디에 매료되었다.

스웨덴어도 잘하겠다, 어차피 같은 유럽이겠다, 그냥 취직해서 가서 살면 되지 않나 싶은데 미코의 생각은 다르다. 절반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민자가 아니라 스웨덴에 뿌리를 가진 진짜 스웨덴인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급기야 미코는 태국의 한 휴양지에서 여러 해 동안 스웨덴 가족들을 관찰하며 치밀하게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준비를 한다. (이 부분이 이 책의 도입부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예테보리 출신의 전직 교사 미카엘 엔더손에게 진짜배기 스웨덴인이 되기 위한 과외 수업을 받게 된다. 의 ㅇㅇ을 돕는다는 전제로.


소설은 2002년에서 2010년의 핀란드와 스웨덴을 배경으로 얀테의 법칙, 국민의 집 등 북유럽의 사상적 뿌리와 올로프 팔메, 페르 알빈 한손 등 사회민주주의 근현대사 주요 인물들,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 감독 잉마르 베리만과 가요 콘테스트 유로비전, 하키와 축구경기, 스웨덴 각 지방의 특징, 스톡홀름의 지리와 크리스마스 풍습, 핀란드와 스웨덴의 속담과 문화적 차이 등 스웨덴과 핀란드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키워드들을 위트 있게 서술한다. 말괄량이 삐삐와 펠레 스반스로스 같은 아동문학에서도 국민의 집을 찾을 때면 좀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싶지만 이런 미코의 광기와 블랙유머가 이 책의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북유럽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로 주변국인 스웨덴 및 러시아의 지배를 받다 독립한 지 한 세기 남짓한 핀란드의 과거와 현재, 뭔가 촌스럽고 뒤쳐진다고 느껴지는 고국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싶어 하는 미코의 모습에선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여주인공 계나가 떠오르기도 한다.


스스로를 뼛속 깊이 스웨덴인이라고 생각하는 미코가 스웨덴 국적을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은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으로 글로벌 시대에 화두가 된 이민과 개인의 정체성에 국적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소개

Miika Nousiainen (1973~)

핀란드 방송국 MTV3 기자 출신으로,  핀란드판 개그콘서트인 Putous를 비롯한 각종 방송대본 작가로도 활동했다. 2007년 출간한 첫 소설 『Vadelmavenepakolainen』 (Raspberry Boat Refugee)은 12쇄 이상 출판되어 핀란드와 스웨덴 양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독일에도 판권이 판매되었다. 2014년 영화화되어 노르웨이 국제 필름 페스티벌에서 최고의 북유럽영화상을 수상하였으며, 핀란드 각지에서 연극으로도 공연되었다. 2011년 출간한 세 번째 소설 『Metsäjätti』 (Forest Giant)도 2020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자식을 육상선수로 만들기 원하는 아버지와 그 딸의 이야기를 다룬 『Maninkavaara』(2009), 만성 치통을 앓는 중년 남자가 치과의사인 형제를 만나 어릴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Roots』(2016, 독일, 이탈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체코, 헝가리,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유명 블로거와 폭주족 등이 한데 얽힌 사건을 그린 『Facelift』(2020, 독일, 노르웨이, 에스토니아, 러시아, 세르비아) 등 그의 소설들은 현대 핀란드인들의 정신세계를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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