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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toria Nov 01. 2021

간섭은 싫지만 남들처럼 살고 싶은 마흔 살 어른이들

Miika Nousiainen, Facelift(2020)

내가 '페이스 리프팅'이란 표현을 처음 접한 건 자동차 부품회사에 근무할 때였는데, 신모델이 나오기 전에 기존 모델의 (내부는 크게 바꾸지 않고) 외형에 변화를 줘서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만족도를 높이는 것이 페이스 리프팅이라고 한다나. 이 소설의 원제인 'Pintaremontti'도 이를테면 오래된 집의 벽이나 바닥, 타일 등을 바꿔 달라 보이게 하는 인테리어를 의미한다. 배관이나 안 보이는 내부의 상태는 어떨지 몰라도 외양만 본다면 새 집에 사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사미, 넌 너무 피상적이야.


이야기는 사미의 아버지 장례식에서 시작해 누군가(스포 방지)의 결혼식으로 끝난다. 사미는 잘 나가는 정유회사의 물류 엔지니어로, 외모도 성격도 나쁘지 않은데 함께 아이를 낳을 반쪽을 찾는 일만은 번번이 실패하는 40살 남자다. 아버지가 되기 위한 생물학적 시계는 똑딱거리고. 결혼한 여동생에게 피상적인 인간이라고 욕을 먹는다.

사실 여동생 헨나도 사정이 좋지는 않은데,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그녀지만 남편이 불임 치료에 영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움은 1도 안되면서 결혼은 언제 하냐, 자식은 언제 낳냐 눈치주는 친척들 때문에 장례식장은 엉망이 되고, 헨나는 볼 때마다 손자 손녀 타령을 해대는 어머니 세이야와도 의절한다.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외줄타기를 하는 현대인들

우리나라라면 설이나 추석이 친척들 모여 말로 천냥 빚을 지는 시기인데, 외국은 그나마 드문드문 보니 누군가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그런 때인가 보다. 다 의절하면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나 싶은데, 사미에게는 어릴 적부터의 절친이 둘이나 있다. 마르쿠스는 산후우울증에 걸린 아내를 대신해 세 아이를 키우고, 페소넨은 암 투병 중인 아버지와 치매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혼자 돌본다. 상황은 다르지만 다들 들어하는 문제가 한둘씩은 있다.

핀란드 국립극장 공연무대/사진 Stefan Bremer

여동생과 어머니의 반목에도 불구하고 사미는 운명의 반쪽을 찾는 노력을 이어나간다. 올림픽 금메달이 꿈인 요트 국가대표, 지적인 변호사, 환경보호 운동가 등과 교제하는 동안 그는 폭주족들의 협박을 받다 한패로 오인받기도 하고, 옷도 제대로 못 입고 경찰에 끌려가기도 한다. (사미가 고초를 당하는 장면들이 독자들에겐 큰 재미다.) 미의 어머니 세이야도 남의 이목을 신경쓰는 대신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낸다.

작가 미카 노우시아이넨의 첫 작품 "Raspberry boat refugee"에 비하면 순한 맛 블랙유머지만, 그래서 마지막 장을 덮을 땐 마음이 한결 가볍다.


Facelift는 저마다의 고민을 가진 주인공들이 우연히 접하게 되는 블로그다. 카트만두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만난 '완벽한 남편'과 '완벽한 가정'을 이룬(것이라고 주장하는) 시니라는 블로거의 글은 사람들을 혹하게 하지만, 그녀의 인생에는 반전이 숨어 있다. 연극에서는 인형의 집, 혹은 인스타그램 피드처럼 보이는 무대 중앙에서 그녀는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달고 구름 모양 치마를 입은 채로 존재하지 않기에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이상적인 삶을 설파한다. 그리고 이상과 현실이 만나 환상이 깨어지는 순간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페소의 의외의 여자친구도 마찬가지...(나는 212쪽까지 읽고 연극을 봤는데 스포일러를 당한 느낌이라 좀 슬펐다.)


 헬싱키에 위치한 핀란드 국립극장은 2021년 10월에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1년의 날 수와 동일한 365페이지의 긴 호흡으로 마흔 즈음 어른이들의 고민을 그린 Facelift는 독일, 노르웨이, 러시아, 체코, 크로아티아, 에스토니아, 세르비아 등에 판권이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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