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는 조개의 고통이고, 비단은 누에의 고독이다.

by Henry

조개는 고통을 삼켜 진주를 만들고

누에는 고독 속에서 명주실을 뱉고

우리 삶도 고통과 고독을 즐기며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진주조개와 진주

조개는 점액질로 상처를 감싼다.

"이크 뭔가 끼었나 보다. 너무 아프다?"


조개는 물을 삼킨다. 삼키는 물속에는 모래와 이물질이 섞여 있다. 조개는 이물질을 밖으로 내뱉는다. 미처 내뱉지 못한 이물질이 몸에 남는다. 손으로 빼낼 수도 없고, 집게로 집어낼 수도 없다. 그냥 견디는 수밖에 없다. 손도 발도 없는 조개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고통을 참는 일이다.


까칠한 모래는 조개의 부드러운 속살로 파고든다. 모래가 스칠 때마다 자꾸 속이 아리고 아프다. 그냥 두면 상처는 덧나고 염증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모래는 조개의 고통이요 상처가 됐다. 속살을 파고드는 고통을 견디려 점액질을 분비한다. 그걸로 모래를 겹겹이 감싼다.


조개는 밖으로 토해내지 못한 이물질을 안으로 감싼다. 최소 2~4년의 세월을 견뎌 영롱한 진주를 만든다. 조개의 분비물은 수만 혹은 수십만 번 이물질을 감싸고 또 감싼다. 마침내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진주를 사랑하는 이유도 조개의 고통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도 영혼의 점액질로 상처를 감쌀 수 있을까

사람이 받는 영혼의 상처나 고통은 진주가 될 수 있을까? 사람도 조개처럼 참아야 한다.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긴 시간을 오롯이 견뎌야 한다. 조개가 모래를 품어 진주를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이 4년 가까이 된다고 하니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이빨을 앙다물고 참아내야 한다. 영혼이 탈탈 털리는 가혹하고 힘든 시간이 될 것이다.


상처가 마음속에서 푹푹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영혼의 점액질이 나와야 한다. 고통이 영혼을 후벼 파 성한 곳이 하나도 없을 때 점액질은 상처를 단단히 감싼다. 고통은 영혼의 자양분이 되어 정신을 키우고 마음을 강하게 만든다. 끝내 우리 영혼은 밝고 아름다운 진주를 만들어 낸다. "나를 죽이지 않는 역경은 나를 성장시킨다"라고 말한 니체의 말이 생각난다.


말은 이렇게 해도 실제 고통을 당한 사람은 참 힘들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를 떠나지 않고 곁에서 위로해야 한다. 누군가 고통을 온전히 이해해 준다면 덜 외롭다. 상처의 원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아도 아픔은 누그러진다. 그 위안과 위로가 상처를 감싸는 마음의 점액질이 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위로가 되어야 한다. 내미는 손이 약손이 아니고 그 말이 치유제가 아니면 어떤가. 진심으로 상대의 고통을 안아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시간의 몫으로 돌리자. 시간은 무디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데 최고의 특효약이다.


고독으로 지은 누에의 명주실

누에고치.jpg 누에고치


"하얀 집을 지어 그 속에서 혼자 조용히 있고 싶다."


누에의 애벌레는 열심히 뽕잎을 먹는다. 먹고 잠을 자고 또 먹고 잠을 잔다. 어느 정도 자란 애벌레는 뽕 먹기를 멈추고 입으로 하얀 실을 토해낸다. 누에는 자기가 토해낸 실로 몸을 칭칭 감는다. 그렇게 하얀 실이 뭉쳐지면 둥글고 길쭉한 모양의 누에고치가 된다. 누에의 몸이 하얀 누에고치 집으로 둘러싸인다. 누에는 바깥세상과 절연하고 스스로 고독에 묻힌다.


누에고치를 한 올 한 올 풀면 명주실이 나온다. 명주실로 짠 옷감을 비단(緋緞) 혹은 실크(Silk)라고 한다. 비단은 양모(羊毛)와 함께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한 천연섬유이다. 광택이 나는 비단은 부드럽고, 촉감이 시원하다. 옷을 만들어 입으면 따뜻해 옛날부터 귀족들의 큰 인기를 끌었다. 단은 한때 금보다 더 귀한 대접을 받았고, 지금도 천연섬유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누에가 고독을 저어 만든 옷감이 아름다운 비단이다.


과거 유럽인들은 비단을 손에 넣지 못해 안달이 났다. 유럽인들은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이 신기한 섬유를 사기에 바빴다. 상인들이 말이나 낙타 등에 비단을 싣고 중국에서 출발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상인들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고 쿤룬산맥, 파미르고원, 톈산산맥 등을 험난한 산을 넘어야 했다. 그들은 비단길 혹은 실크로드(silk road)를 건너가서 비단을 포함한 각종 물건을 싣고 목숨 건 여행길에 나섰다.




비단 가게.jpg 비단 가게


우리도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기 위해 가끔은 고독과 함께해야 한다. 혼자 생각하고 명상하며 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게 좋다. 도시의 소음과 사람의 소란함을 뒤로한 채 침잠하면 영혼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이렇듯 고독은 내가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현대인은 수많은 사람과 관계 맺고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함께한다. 가끔 스스로 고독해 보는 여유를 갖지 않기 때문에 외로운 것은 아닐까?


진주가 상처를 진주로 만들고, 누에가 고독을 명주시를 뿜듯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상처를 부여 안고, 고독과 벗하며 사노라면 내 영혼도 영롱한 진주와 매끄러운 비단이 되지 않을까. 삶은 늘 나를 배신하고, 고독하게 만들지만 원망할 수 없다. 그게 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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