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전이 있는 아침

by Henry

집중하지 않으면

칼날에 베이고

몰입하지 않으면

튀어 오르는 식용유에 데고

초보자에게 요리는

집중이고, 몰입이야!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완연한 가을 아침이야


느긋하고 게으른 팔로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첫눈에 쏙 들어온 감자들

자기를 봐 달라는 양

울퉁불퉁 알이 배인 실한 녀석들이

냉장고 서랍 안에 옹기종기 모였어.


아내가 사두고는 잊어버렸는지

성질 급한 한 녀석이

싹 틔울 기미를 보이길래

그래 오늘은 바로 너로구나

하는 마음으로

성격 급한 세 녀석을 골라냈어.


감자전 레시피를 찾아보니

감자채를 쓸고

부침가루를 입혀 전을 부치면 된다고 하길래

재료를 손질하고 보니

부침가루가 없어 밀가루를 썼지.



레시피를 따라 단 한 번에 하려 했지만

밀가루 배합 비율이 문제였는지

겉이 바싹한 건 좋은데

속까지 바싹하게 됐어.

고소하게 씹히는 것이

내 입에는 나쁘진 않지만

비주얼도 시원찮고 해서

그리 탐탁지는 않아.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다음에는 제대로 부침가루 옷을 입혀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감자전을 부쳐 보겠노라고 다짐하지.


요리한다고 아이가 선물한 칼은

손끝에 살짝 닿아도 선뜻한 느낌을 주는

말 그대로 날이 시퍼렇게 들었어.

초보자인 나로서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감자채를 쓸어야 하니

몰입할 수밖에 없어.


식용유가 끓으면서 튀어 오르기도 하는 탓에

알량한 요리 한답시고 자칫 부상이라 당할까

몰입하다 보면 다른 생각이 떠오를 여지가 없어.


동작 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잡생각은 저 멀리 가고 없으니

이 또한 마음 챙김 명상과 다를 바가 없고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


요리 실력이야 따질 바가 못 되지만

어설프지만 동작 하나는 진중하고

진지하기로 따지면 그런대로 봐줄 만하니

첫출발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다고 나를 달래지.


무얼 하더라도 몰입하면 좋은 거고

짧은 순간이지만 잡생각을 멀리하니

종일 분주한 머릿속도 잠시 조용해지니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이라

가끔 하는 요리가 즐거운 까닭이야.


현자는 늘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잡생각을 버리고 하지만

잠시 마음을 비웠다가

어느새 머릿속은 온통 생각으로 가득한 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욕망

그 틈바구니를 비집고

짧은 순간 생각을 비우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위안하며


순간이 이어져 시간이 되고

시간이 모여 세월을 이루니

짧은 순간들을 모아 만든 시간이라면

그 또한 좋은 일이라고 스스로 설득하지.


지혜를 깨치기는커녕

지식도 한참 모자란 나로서야

찰나의 점을 모으는

시간의 점묘법이라도 배워야 할 판이야.


그러니

요리를 하든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아니면 사람과 만나 대화를 하든

몰입하자고 다짐하지.


바람이 좋은 어느 가을 아침

실패한 감자전을 만든 반성치고는

그런대로 들어줄 만하지 않을까

그런 시답잖은 자화자찬에 빠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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