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雨期)에는 애틋함이 빗물처럼 흐른다

by Henry



며칠째 내리는 비 탓에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해를 보지 못한 탓일까

우기에는 애틋함이 빗물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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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듯 말 듯 잔뜩 찌푸린 먹구름이

그예 눈물을 왈칵 쏟아낸다.

어찌 저리 설움이 많을까

한 번 울음을 터뜨리면 사나흘 내리 운다.

꺼이꺼이 숨이 막힐까 두려우면

잠시 쉬었다가 또 눈물을 쏟는다.


물기 젖은 공기는 무겁고

비 맞은 시간은 더디다.

젖은 빨래 가득한 거실에

커피 향이 무거운 몸으로 널브러진다.


빗물에 얼굴을 닦은 나뭇잎은

한층 짙은 초록을 뽐내고

여름은 더워야 제맛이지만

폭염을 식혀주는 비가 고맙기는 하다.


작은 우산 하나 받쳐 들고 빗속을 거닐다

길모퉁이 찻집에서 따듯한 커피를 마시던

그리운 이의 기억은 비에 쓸려가고

아득한 추억도 빗물에 흘러내린다.


이들이 씻겨나간 자리에

남는 건 메마른 앙가슴뿐이라

그런 나보다 더 슬프지 않을 텐데

하늘은 오늘도 울음 운다.


도시는 팽팽한 긴장을 잠시 내려놓고

채도 높은 회색 침묵에 싸이고

우산을 받쳐 든 사람의 어깨가 젖는다.


열어둔 창문 사이로

비스듬히 들이치는 빗소리에

화들짝 일어나 창문을 닫는다.

언젠가 프랑스 여행 때 사 온

고풍스러운 거실 벽시계의 짧은 팔이

숫자 Ⅵ에 걸쳐 있다.


연신 창을 두드리는 후드득 빗소리는

야속하게 잠 못 들게 하니

오늘 아침은 유난히 일찍 시작하나 보다.


에라 기왕 잠 못 들 바에는

나도 가슴속 울음이나 토해내려

모니터 흰 공간에 토닥토닥 글자를 쏟아낸다.

그렇게 모인 검은 빗방울은

추억의 강을 이룬다.


애꿎은 비를 탓하지만

쉬 잠들지 못한 까닭은

가슴 깊이 남은 사연들이

아련한 추억을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타던 얼굴마저 잊히게 한

세월이 참 무심하다.

언제쯤이면 마음이 무뎌져

비 오는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고

긴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우기(雨期)에는

기쁨보다 애틋함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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