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있는그대로 Oct 07. 2023

미리 쓰는 유서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다고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히 생각되네.

오늘 하루를 기쁘게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지나고

어린이 청년 장년 노년을 다 지나고

이제 본래 자리 흙으로 돌아갈 시간이구나.


누군가는 봄에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흙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막 꽃을 피우는 여름에 흙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꽃이 지고 낙엽 떨어지는 가을에 흙으로 돌아가는데


자녀로 부부로 부모로 살며

그 모든 것을 경험해 본 것에 감사해.


이제 추운 겨울이고 그 겨울이 내게 얼마나 길지는 알 수 없지만

겨울을 준비한다. 감사로 사랑으로...


살면서 회복탄력성이 부족해 상처받은 희생자로 너무나 오랜 시간 살았지만

뒤늦게 글쓰기를 통해 내면의 힘을 키우며 희생자가 아닌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되어 기쁘고 감사해.


과거의 상처를 헤집으며 원인을 찾기보다

감사와 사랑으로 그 상처를 메우는 것이 더 큰 것임을 알아가며

이제 막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하나씩 사는 것을 다시 배운다.


엄마는 살면서 너희들을 만나 사랑하고 함께 해서 행복했어.

이제 엄마의 형체는 없어지지만 지금처럼 언제나 함께 있다는 걸 생각해 줘

흙, 바람, 물, 꽃, 나무, 엄마는 어디에나 있을 거야.


맛있는 식탁에 엄마를 초대하면 너희와 맛을 함께 나눌 거고

산에 가서 엄마를 초대하면 함께 정상을 오를 거야.

엄마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너희와 언제 어디서나 있게 되는 거지.


제사, 산소, 틀에 매이지 말고, 언젠가 연이가 얘기한 것처럼 엄마를 기억해도 좋을 거 같아. 엄마와 함께 갔던 곳에 가서 엄마를 추억하고, 엄마와 함께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엄마는 어떤 기분일까 얘기하고. 엄마는 감사와 사랑의 달인이었다 기억해 주면 좋겠다.


엄마 무덤이 없으니 묘비는 없겠지만 우리 가훈 일체유심조를 깊이깊이 생각하고 살았으면 좋겠어.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이 말이 얼마나 깊이 있는 말인지 알아가며, 체화하고, 온 우주의 법칙을 담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 좋겠어.


덕분에 살면서 경험한 그 모든 것이 감사며 행복이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