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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 라 Jul 11. 2024

프랑스인이 보는 지옥같은 천국, 한국

프랑스인이 보는 한국;과 프랑스

 한국이 지옥같은 천국이라는 프랑스인


파리에는 전 세계 100여 개의 언어를 가르치는 국립 외국어 대학인 INALCO(Institut National des Langues et Civilisations Orientales, 국립 동양어 및 문명 연구소)가 있다. 그곳에서도 한국어학과는 역시 인기가 높다. 거기서 한국어학을 지도하시는 프랑스 교수님과 종종 한국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주로 교수님이 프랑스인의 관점에서 본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인들의 생각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시곤 했다. 특히 ‘’ 어떻게 한국이 5천 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가?’ 한국인들만이 갖고 있는 역사적 자부심에 대한 객관적 고찰이 부족하다는 주장을 하셨다.  


열띤 논쟁을 하며 한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마치신 교수님의 마지막 말은 나의 예상을 완전 빗나갔다.


‘’그럼에도 내가 살고 싶은 곳은 프랑스가 아니라 한국이다’’

아니 왜요 교수님?

‘’ 프랑스는 바캉스를 보내기에 좋은 곳이라면 한국은 살기에 좋은 곳,

바로 지옥 같은 천국이지’’


 지옥 같은 천국! 무엇을 의미할까?


그에 비하면 프랑스는 천국 같은 지옥이라는 의미가 숨겨있을까?


프랑스, 천국 같은 지옥?  


프랑스에선 사실 모든 것이 느려도 너무 느리다. 빨리!라는 압박이 비 인격적이라는 인식 때문일까. 각자의 스케줄대로 살아가고 각자의 시간을 피차 존중한다.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고 카드를 신청해도 3주는 걸리고, 아파서 당장 병원에 가야 해도 최소 3주 후에나 예약이 가능하고, 대부분의 민원 처리는 기본 3주에서 1달을 기다리는 게 정상이다.


전세 제도가 없으니 집세는 모두 월세로, 월급의 절반이 뚝 사라진다, 몇 달의 집세를 못 내면 집에서 쫓겨나 한 순간에 노숙자로 전락할 수 있다. 동거 중 관계가 깨져버리면 집을 구할 때까지 노숙자가 될 수도 있다.


세금은 많이 벌수록, 또 혼자 살수록 더 많이 내야 한다. 프랑스 우파 정당인 국민 연합을 창설한 장마리 르펜은 그의 연설에서 5명의 아이를 낳은 **** 이민자가 일을 전혀 하지 않고도 한 달에 8000유로 이상의 각 종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조사를 발표한 적이 있다.


결국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일을 안 하는 사람들은 그 세금으로 편하게 살아간다는, 그런데 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인이고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주로 이민자라는 점을 지적했다.


파리에선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가방을 움켜쥐고 있어도,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 놓고 갈취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사람들이 붐비는 지하철 안에서도, 저 뒷칸 구석 자리에서 칼로 협박을 당해도 아무도 쳐다보거나 나서지 않는다. 파리 외곽 지역으로 조금만 나가도 주차해 둔 차의 창문을 깨서 보잘것없는 것들을 훔쳐간다. 경찰에 신고해도 그런 일은 다 반사,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바캉스와 문화와 예술과 지성의 나라, 복지의 천국이지만 그 이면에는 지옥 같은 현실의 삶이 존재한다. 높은 인건비 때문에 모든 서비스 비용도 높다. 한국에서는 공짜로 받는 서비스들은 높은 비용을 지불하고 받아야 한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드라이를 받으려면 서비스 비용을 따로 내야 하고 샴푸도 비용이 추가된다.


볼펜 한 자루, 작은 물티슈 하나 어떤 것도 공짜는 없다. 길을 가다가 화장실을 사용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공원 화장실도 무료는 없다. 노숙자들은 난감하다. 거리와 지하철 통로에는 오물 냄새가 넘쳐날 수밖에 없다.  


 세탁기가 망가지면 차라리 세탁기를 버리고 새로 산다. 출장 수리 서비스를 받는 비용이 새것을 사는 비용과 비슷할 뿐 아니라 한 달을 기다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식당도 그렇다 같은 가격으로 우리나라에선 맛있고 푸짐한 음식에 각 종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면 프랑스 식당에선 서비스 없는 기본적인 식사 정도이다.


쇼핑도 그렇다. 이미 프랑스며 유럽 국가에선 인건비 문제로 공장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동유럽이나 중국 등에서 생산해서 물건들을 가져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물류비용 등 물건 값도 비싸지고 물건도 많지 않다. 이런 프랑스 시장 환경에서 최근에 테무나 알리 등의 중국 온라인 마켓들이 다양한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집까지 배달하는 서비스까지 제공하니 빠른 성장을 이룰 수밖에 없다.


한편 천국 같은 프랑스의 모습은 무엇일까?


프랑스, 누구의 천국?


프랑스는 사회주의 국가는 아니지만 모든 국민에게 기본적인 생활 수준을 보장하는 사회적 안전망이 잘 되어 있다. 적게 버는 사람도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부의 분배가 이루어진다. 비록 여기저기에 대 소변이 흩어져 있지만 매일 거리에 물청소를 한다. 도시 전체의 아름다운 미관은 자체가 쉼과 예술과 낭만이다. 특히 파리의 아름다움은 그저 그곳에서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움에 취할 만큼 황홀하다.


사적 서비스 비용은 높지만 반면 공공 교육, 공공 의료 시스템은 거의 무료고 국가가 비용을 부담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하는 법과 제도는 노동시간의 제한, 최저 입금 보장, 고용보호, 노동조합 활동 보장으로 노동자의 천국이다.


바게트, 감자, 커피, 사과, 당근, 샐러드 등과 같은 각종 필수 식량의 물가는 국가가 개입해 거의 최저 가격을 항상 유지한다. 아무리 가난해도 기초 식량 구입에는 어려움은 없다. 이런 면에선 가난한 사람들에겐 천국이다.


한편 부자의 천국이기도 하다. 부자들은 최고의 명품에 최상의 음식에 아름다운 별장들을 여기저기에 소유하고, 요트, 개인 비행기를 소유하며 자유롭게 여행한다. 꼭 큰 부자가 아니어도 평범한 친구들도 여러 채의 별장과 요트나, 경비행기를 소유한다.


별장은 부모님에게 물려받기도 하지만 많은 프랑스 남자들이 취미로 자신의 별장을 짓는다. 또 다른 취미로 요트나 경비행기를 친구들과 직접 만들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미니어처로 훈련한 다음 성인이 되면 그것을 똑같이 큰 크기로 만든다. 그런 취미들이 평범한 프랑스인들에게 가능한 곳, 이런 자유와 여유들은 가히 천국에 비할 만하다.


한국, 지옥 같은 천국
그렇다면 프랑스인이 보는 한국의 지옥 같은 천국의 모습은 무엇일까?


며칠 전, 부산대학교 통번역 동아리 주최의 컨퍼런스 강사로 초청을 받아 부산대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뜻밖에도 참석한 대 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이미 통번역가로 활동하며 한국에 이미 정착한 학생도 있었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외국어인 한국어를 배워 통번역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한국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 한국 학생들보다 더 큰 열정을 끌어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 담당자이신 프랑스어 교수님과 컨퍼런스를 마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교수님 말씀이 한국에 들어오는 프랑스인들의 동향을 오래전부터 읽고 있는데 최근 들어 달라진 것이 있다는 것이다.


본인 세대에서는 주로 프랑스 남성들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면 지금 세대는 프랑스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한국 남성과 결혼을 원하고 한국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프랑스 여자들만 해도 대부분이 한국에 계속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프랑스 현지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프랑스를 방문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프랑스인을 만난다. 주로 한국을 이미 방문해 보았거나 한국으로 여행, 또는 한국에서 살기를 꿈꾸며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K-pop, K-drama의 영향이 물론 크다. 더불어 K-food 인기도 절정이다.


한국에서 살기를 꿈꾸는 프랑스인들이 보는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한국, 지옥 같은 천국


그렇다면 프랑스인이 보는 한국의 지옥 같은 천국의 모습은 무엇일까?


며칠 전, 부산대학교 통번역 동아리 주최의 콘퍼런스 강사로 초청을 받아 부산대학교를 방문하게 되었다. 뜻밖에도 참석한 대 부분의 학생들은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다. 한국어를 열심히 배워 이미 통번역가로 활동하며 한국에 이미 정착한 학생도 있었다.


많은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인 학생들보다 더 열심히 외국어인 한국어를 배워 통번역가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한국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 한국 학생들보다 더 큰 열정을 끌어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아리 담당자이신 프랑스어 교수님과 콘퍼런스를 마치고 대화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교수님 말씀이 한국에 들어오는 프랑스인들의 동향을 오래전부터 읽고 있는데 최근 들어 달라진 것이 있다는 것이다.


본인 세대에서는 주로 프랑스 남성들이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다면 지금 세대는 프랑스 남성뿐 아니라 여성들도 한국 남성과 결혼을 원하고 한국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많은 프랑스 여자들만 해도 대부분이 한국에 계속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 뿐 아니라 프랑스 현지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다. 프랑스를 방문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라고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건네오는 프랑스인을 만난다. 주로 한국을 이미 방문해 보았거나 한국으로 여행, 또는 한국에서 살기를 꿈꾸며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K-pop, K-drama의 영향이 물론 크다. 더불어 K-food 인기도 절정이다.


한국에서 살기를 꿈꾸는 프랑스인들이 보는 한국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나를 알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두려움의 문을 통과할 때, ‘나’라는 세계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나를 보고 이해하고 발견하며 온전한 ‘나’를 다시 갖게 된다.''


프랑스인이 보는 한국 사회


무엇보다 한국인만의 공동체 의식이 개인주의 국가인 프랑스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프랑스인의 흥미를 끄는 것 중의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인들의 다 같이 노는 놀이 문화이다. 프랑스는 주로 1대 1의 게임을 즐긴다면 한국은 다 같이 어울려 노는 게임들이 많다. 하물며 밥도 커다란 하나의 냄비에서 다 같이 떠먹는다. 그들에겐 상상도 어려운 일이다. 길에서 누군가 곤경에 처하면 서슴없이 달려간다.


중국에서 망명온 한 조선족 분이 큰돈이 생겨 호주로 이민 가는 과정을 통역으로 함께 한 적이 있다. 이 분이 큰돈을 벌게 된 이유는, 파리 길거리에서 싸움이 나는 것을 보고 칼부림을 막다가 다친 때문이다. 그 용기를 크게 칭찬받으며 프랑스로부터 적지 않은 배상금을 받게 되었다.


부상으로 한쪽 팔의 사용이 불편해진 것에 대해, 남은 평생 노동을 해서 벌 수 있을 만큼의 액수를 추정해서 일시불로 보상받았다. 그 소송 과정에 동행하면서, 조선족 분도, 나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나 영웅 같은 행동인가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있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큰 매력이다. 한국인은 그것을 ‘정’이란 단어로 표현하지만 프랑스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빨리빨리! 의 문화도 한국인에게는 압박이지만 덕분에 우리는 하루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 프랑스에서는 하루에 한 가지 일을 처리하면 운 좋은 하루다. 한국에는 일손이 필요한 모든 곳, 모든 일에 세분화되고 구체화된 서비스 업무가 존재한다. 이런 각종 서비스 덕분에 한국인은 자신의 본업에 더 에너지를 집중하며 빠르게 업무를 성취한다.  


프랑스에서 평범한 싱글 직장인의 하루 일과는 대략 이런 모습이다. 아침 7시에 눈을 뜬다. 가까운 빵집에 바게트를 사러 나간다. 집에 와서 커피를 내리고 버터 바른 빵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출근한다. 또는 집 앞 카페에 들러 커피 한잔, 그와상, 오렌지 주스 한잔의 아침 메뉴를 먹고 출근한다. 출근은 지하철을 이용하거나 자전거, 버스 또는 걸어서 출근한다. 파리의 모든 집들은 거의 지하철 역이 10분 거리 안에 위치한다. 지옥철은 없다. 다만 아침 지하철에는 밤새 방뇨된 오물로 역겨운 냄새를 통과해야 한다.


점심시간 두 시간, 동료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가거나 또는 공원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책을 읽거나 일광욕 또는 산책을 한다. 집이 가까운 사람들은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나온다. 또는 쇼핑을 한다.


저녁 5시 또는 5시 반, 퇴근한다. 집에 가는 길에 동료들이나 지인들과 함께 가볍게 맥주나 칵테일 한잔을 기울인다. 카페들은 이때를 위해 5시부터 7시까지를 해피아워로 정해 두고 알코올 음료를 반 값에 제공한다.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그날 먹을 신선한 저녁거리를 산다. 동네 슈퍼마켓은 주로 8시 반까지 문을 여니 그전에 장을 본다. 집에 들어가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설거지를 하고 집안일을 정리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잠자리를 준비한다.


 거리는 9시면 깜깜하고 한산해진다. 대 부분의 가게들도 7시면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하루일과는 9시면 모두 끝난다  


이런 하루를 비교할 때 프랑스인의 하루가 천국 같다면 한국은 아침부터 지옥철을 통과해 치열하게 출근하고 가능한 빠른 시간에, 가능한 많은 업무를 해결해야 하는 압박 속에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른 채 지나간다. 퇴근 후엔 열심히 일한 만큼 열심히 놀아줌으로 하루를 보상한다. 늦은 시각에도 한국의 거리는 대낮처럼 환하고 사람들로 붐빈다.


낮에는 치열하게 일하고 밤에는 치열하게 노는 모습이 프랑스 인에겐 지옥 같은 모습이지만 그 안 담긴 열정과 사랑과 성장의 이야기가 부럽다. 주말조차도 우린 치열한 삶을 산다. 어디론가 맛집을 찾아 새로운 맛을 발견하거나, 좀 더 활동적인 취미나 스포츠를 하거나 외곽으로 캠핑을 떠난다. 차로 가득한 차도에서 다시 한번 지옥을 경험할지언정 의미 있는 주말 보내기를 포기할 수 없다.


카페 테이블에 핸드폰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한국인을 보고도 프랑스인은 깜짝 놀란다. 그 핸드폰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에는 더욱 놀란다. 프랑스에선 테이블이 아니라 손에 들고 통화를 하는 중에도 핸드폰을 낚아채어 달아나는 좀도둑들이 있다.


적지 않은 묻지 마 사고도 있지만 그래도 한국은 전반적으로 안전한 나라이다. 살기 좋은 나라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이다.  


10년 그리고 2년 그 이후


프랑스에 처음 갔던 첫 해는 한국이 너무 그리웠다. 한국의 흙냄새, 어디를 가든 나를 품어 주며 항상 자리를 지켜주는 한국의 산, 짜고 매워 싫어했던 한국 음식이 너무 그리웠다. 개똥이 널브러져 있고 오물 냄새가 나는 더러운 파리의 길은 충격적이었다. 아무에게나 추파를 던지는 프랑스 남자들이나 개똥 천국인 이 사회가 너무 품위 없다 생각되어 불어를 절대 말하지 않겠노라 다짐도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나 프랑스에 적응해 가면서 프랑스인의 친절과 배려, 파리의 아름다운 거리와 건물들, 황홀한 센 강의 석양, 미술관, 공원, 골동품 시장, 탁월한 아이들의 유치원 교육, 바캉스 등 프랑스의 좋은 점들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2년이 지나자 한국말에 프랑스어가 조금씩 섞여 나왔다. 두 문화가 내 안에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나자 한국을 잊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매 년 한국엘 들어왔다. 그러다가 결국 다시 1년을 한국에 들어와서 살았다.


한국에 들어왔지만 나는 한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중간 어디쯤 있는 듯했다. 결국 1년 후 다시 프랑스로 향했다. 프랑스에 오니 더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때에는 프랑스가 고향처럼 느껴졌다.  


 4년이 되니 프랑스 삶에 정착하고 꿈도 불어로 꾸기 시작했다. 불어에 심취해 가면서 점점 나의 생각 구조도 프랑스 사람처럼 되어갔다. 사실 한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 사람의 생각구조를 배워가는 과정이다.


그렇게 5년이 지나니 한국보다 프랑스에 사는 것이 더 편하고 좋아졌다. 그렇데 더 5년을 지나 10년이 되니 프랑스 삶의 장단점에 익숙해지고 이제 이 사회의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아무리 내가 이 사회에 익숙해졌어도 나의 조국이 아닌 곳에서, 나는 언제나 이방인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게 되니까 나의 조국, 한국이 무엇이 좋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더 분명하게 보였다. 결국 나의 호흡은 내가 태어난 곳, 한국의 공기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10년의 프랑스 생활을 모두 접고 귀국을 했다. 프랑스의 삶도 너무 좋았지만 한국에 오니 숨을 쉬어도 온전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항상 조용하고 평화롭고 여유롭던 파리 생활과 비교하면, 먼지도 너무 많고 어디를 가든 분주하고 정신이 빠질 것 같지만 훨씬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조차 내 안에 열정과 도전을 일으켜주는 영감의 샘이 되었다.  


이후 다시 2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또다시 너무 다른 환경이었다.  


아이들을 프랑스에 유학시키고 이제 한 아이는 결혼해서 살다 보니, 해마다 한 두 달은 프랑스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교수님이 말했던 것처럼,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프랑스에선 바캉스, 한국에선 일상을 보내는 삶이 되었다.


모르는 세계에 자신을 빠트리는 용기


프랑스에 처음 갔을 땐 나의 한국 가족, 친구들이 너무 그리워 슬프고 한국에 돌아오니 프랑스에 있는 나의 친구들이 그리워 슬피 울고, 이별을 거듭해야 하는 내 인생이 저주스럽다는 마음까지 있었다. 더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두려웠다.


이제는 나의 친구뿐 아니라 나의 이웃 모두가 친구라는 것을 깨닫는다. 멀리 있는 나의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여니, 오늘, 내 가까이에 있는 나의 모든 이웃이 보인다.  우리의 인생은 항상 이렇게 친구들로 둘러싸여 있음을 깨달으며 혼자라는 두려움에서 빠져나온다.


이제는 프랑스에 가면 프랑스에서 누릴 수 있는 좋은 것들을 누리고, 한국에 오면 한국의 좋은 것들을 누리고, 아프리카에 가면 아프리카만의 좋은 것들을 누리는 지혜가 생겼다. 굳이 프랑스에 가서 한국에서 누리던 것을 찾지 않고 한국에서 프랑스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찾지 않는다.


자녀 교육, 직업적 발전, 유학 등의 이유로 해외에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외국 생활에 대해 질문할 때가 종종 있다.


어느 인류학자의 말에서 답을 찾아본다.

 ‘’ 자기를 모르는 세계에 자신을 빠트려라. 그것이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 길이다’’


나를 알지 못하고 내가 알지 못하는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두려움의 문을 통과할 때, ‘나’라는 세계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나를 보고 이해하고 발견하며 온전한 ‘나’를 다시 갖게 된다.


내가 속하지 않았던 다른 사회에 들어가 그 사회의 눈으로 볼 때,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서도 다르게 보는 눈이 열린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어느 사회에도 속할 수 있게 된다. 그 사회에서, 그 시기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온전히 누리는 지혜가 생기며, 어느 사회에 있던지 항상 감사하며 즐겁게 살 수 있다.


 결국 모든 곳에 지옥과 천국이 같이 존재한다는 것, 그러나 우리는 천국을 누리고 지옥을 멀리할 수 있는 지혜 있는 존재들이라는 사실!! 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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